몇 달 전, 아내가 텀블러를 사달라고 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그냥 사달란다. 아이들을 등교시킨 엄마들이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눌 때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스타벅스에 들렀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텀블러 하나가 몇 만원씩 했다. 촌스럽다는 얘기를 들을까봐 디자인 핑계를 내며 매장을 나와 가까운 탐앤탐스에 갔다. 만 원 정도가 쌌다. 그 날 당당하게 아내에게 텀블러를 내밀었는데 어째 반응이 시원찮았다. 이후 지금까지 아내가 그 텀블러를 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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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러가 요즘 전국적으로 인기다. 그런데, 인기 있는 텀블러 중에 좀 독특한 제품이 있다. 일반적인 텀블러와는 모양이 조금 다르다. 매우 정직하게 생긴 굴곡 없는 몸매에 심지어 투명하기까지 하다. 재질은 젖먹이들의 분유 병과 같다고 한다. 그래서 뜨거운 물이나 음료를 부어도 환경 호르몬이 유출되지 않는단다. 가격은 만 5천 원대, 일반 텀블러에 비하면 매우 착한 가격이다. 디자인은 마치 스티브 잡스가 주문해서 만든 것처럼 심플 그 자체다. 검은색 뚜껑에 속뚜껑이 하나 추가된 형태로 투명한 몸통에는 매직으로 휘갈겨 쓴 듯한 제품의 이름이 커다랗게 쓰여있다. 한 때,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마이보틀(My Bottle)’이다.

이 물병은 ‘투데이스 스페셜’이란 브랜드가 처음 만들었다. 온라인 판매 외에 이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은 일본 현지에서도 단 두 곳. 입소문을 통해 알려진 이후 한국 관광객들의 싹쓸이가 이어지자 한 번에 두 개 이상을 살 수 없도록 제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인은 문익점의 후예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옷을 바꿔 입으면서까지 대량 구매를 시도한 모양이다. 여전히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다. 자연히 가격이 올라 구매 대행 서비스를 이용해도 6, 7만 원 이상을 호가하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안정되어 2만원 정도면 구입이 가능하지만 한때, 사람들은 물보다도 이 제품에 목이 탔고, 이 물병에 목을 맸다. 눈치 빠른 한국의 ‘망고 식스’가 원 제품에 오마주를 보내며 ‘식스 보틀’이라고 이름 붙인 ‘같은’ 제품을 팔기 시작했다. 여기서 ‘같다’는 의미는 제조사(일본의 리버스사)가 같다는 말이다. 뒤이어 락앤락도 ‘비스프리 잇 보틀’을 만들었고 자체 주간 판매 1위의 영광을 만들어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도대체 이 물병의 어떤 매력이 이런 팬덤을 만들어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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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보틀의 창조적? 모방. 망고식스의 ‘식스보틀’과 락엔락의 ‘비스프리잇보틀’. (*사진출처: 연합뉴스)

우선 기능을 보자. 아이들 젖병에 쓰이는 소재라니 일단 안심이 된다. 섭씨 100도의 물을 부어도 환경 호르몬이 유출되지 않는다. 하지만 환경 호르몬보다 더 무서운 방사능에 대한 트라우마를 생각하면 이 제품의 인기를 백 퍼센트 이해할 순 없다. 사실 그냥 젖병에 불과한 제품 아닌가? 우리나라가 젖병 만드는 기술이 뒤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 그렇다면 이 텀블러의 인기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소비자들이 주장하는 가장 유력한 이유는 다름 아닌 이 물병이 ‘예쁘다’는 것이다. 그것도 투명할 때보다 무언가를 담았을 때 더 예쁘다는 소문이 있다. 라떼를 담았을 때, 방울 토마토를 담았을 때, 얼음물을 담았을 때 마이보틀은 어느 순간 예술 작품이 된다고 했다. 설마 하고 찾아봤더니 역시 그랬다. 인스타그램으로 은은한 노을 아래서 찍은 사진은 가히 환상적으로 보였다. 페이스북에 한 장의 사진과 올리기에 딱인 비주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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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보틀이 처음부터 이러한 인기를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이보틀의 작은 성공은 전혀 다른 카테고리의 마케터와 브랜더들에게도 한 가지 생각의 실마리를 던져주고 있다. 그것은 사용자가 그 제품을 쓰는 용도뿐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하게 만드는지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페이스북등의 SNS에서 성공하는 콘텐츠는 이러한 ‘공유’를 유도하기 쉽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제 입소문은 ‘입’에서 ‘눈’으로 확장되고 있다. 사람들은 마이보틀을 원래의 용도로만 구매하지 않았다. 자신의 트렌디한 라이프스타일을 과시하는 용도로 산다. 그리고 과시욕은 다름 아닌 트렌디한 얼리어답터들의 무리에 끼어들고 싶은 ‘소속감’에서 기인한다. 게다가 가방보다는 훨씬 저렴하다. 억지로 자랑하는 게 아니라, 음료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며 자연스럽게 자랑하기도 쉽다. 인스타그램의 필터로 스타일리쉬하게 바꿔주면 ‘끝’이다.

마이보틀의 인기가 얼마나 지속될지 장담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텀블러의 계절인 이번 여름에 마이 보틀이 다양한 모습으로 SNS를 장식할 것은 분명하다. 이 투명한 보틀에 담아 사진 찍을 것들이 어디 한두 개인가. 트렌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때로는 이성적인 구매로 감정적 만족을 얻기보다 감정적 만족을 위해 이성을 속일 때가 훨씬 더 많다. 마이보틀은 이러한 숨은 니즈가 희소성이라는 파도를 만나 얼리어답터들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글 : 박요철 / 편집 : 김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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