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책 읽기 – 홀로코스트 산업 ‘노르만 핀켈슈타인’

홀로코스트_산업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이 계속되고 있다. 이건 끔찍한 학살이다. 월드비전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으로 숨진 팔레스타인 사람은 697명이고, 그 중에 24%가 어린이라고 발표했다. (23일 기준)
그러나 이런 만행에도 미국의 메이저 언론이나 방송 등은 조용히 처리하고 있다. 그나마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그 참상이 널리 전파될 뿐이다. 항상 반복되왔던 일이다. 왜 우리는 이스라엘의 만행에 침묵하게 되는가?  그 작은 답이 이 책 안에 있다.  노르만 핀켈슈타인이 쓴 ‘홀로코스트 산업’이다.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는 원래 대량학살을 뜻하는 일반명사였다. 우리 상식과는 달리  2차 대전이 끝난 후, 유대인들은 나찌의 홀로코스트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전쟁과 관련이 없던 미국에 있던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유대인에 대해 거의 무관심했다고 한다.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를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1967년 일어난 6일 전쟁(제 3차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후다.
이스라엘이 압도적인 전력으로 6일만에 아랍권을 제압하며 이스라엘이 약자의 이미지에서 강자의 이미지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홀로코스트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다.  어째서 홀로코스트를 부각 시키는 것이 팔레스타인 학살의 정당화가 될 수 있었을까? 노르만 핀켈슈타인은 이 지점부터 얘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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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 영화 쉰들러의 리스트

 

유대인들은 1967년 이후, 세계 여론이 안 좋아지자 우선 자신들의 아픔을 과장하기 시작했다.  나찌의 홀로코스트를 그린 ‘색칠당한 새’ 같은 책이 나와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은 나중에 작가의 상상임이 밝혀진다. 그러나 유대인 소유의 ‘뉴욕타임즈’같은 매체들은 앞장서서 이 조작책을 선전했다. 메이저 언론들의 상당수를 유대인이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홀로코스트는 확대 재생산 되기 시작했다. 비슷한 영화나 책이 쉴 새 없이 만들어 졌다. 그러나 나중에 상당수의 책이 논픽션이 아닌 픽션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아무도 그들을 탓할 수 없었다.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를 일종의 ‘브랜드’로 만들었다. 이후,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는 ‘나찌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고유명사로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다른 곳에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를 금지시켰다. 마치 ‘상표권’처럼 말이다. 거짓말 같지만 유대인의 힘은 대단했다. 이스라엘 단체는 유대인 죽음 외에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를 쓰는 이들을 공개적으로 항의했고, 언론들도 맞장구 쳤다.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를 고유명사로 만든 이유는 분명하다. ‘홀로코스트는 최악의 학살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인류역사상 가장 박해 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어떤 시도도 고려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를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홀로코스트라는 단어가 살아 있는 한, 이스라엘은 어떤 짓을 해도 피해자다. 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처참하고 악명높게 박해를 당했기 때문이다. (실은 그렇게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거의 아무런 제재없이 핵무기를 개발했고,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지속적으로 공격했지만 거의 비난받지 않았다.  그들은 ‘홀로코스트’를 ‘예수의 십자가 못박힘’에 버금가는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희생으로 등극시켰다.

그러나 홀로코스트는 유일했던 것이 아니다. 나찌는 집시도 대량학살했고, 공산주의자도 대량학살했다. 양적으로 더 심한 학살도 있었다. 영국인들은 19세기 후반, 2천 만명의 인도 주민을 굶겨 죽였다. 스페인은 미국 대륙 원주민들을 90%나 학살했다. 물론 죽음의 양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홀로코스트는 ‘산업’이라는 말로 불리울 정도로 경제적 논리로 움직였고, 그 참상이 과장되어 왔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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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폭격을 관람하는 이스라엘인들 © allansorensen72 트위터

 

전쟁종결 후, 홀로코스트 생존자는 약 10만명(미국 홀로코스트 기념박물관 집계)정도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스라엘 총리부에서 조사한 ‘자신이 홀로코스트 생존자’라 밝힌 이는 100만 명에 이른다. 아마도 약 90만 명은 배상금을 타내기 위해 마구잡이 거짓증언을 했다는 게 정설이다. 그 이유는 독일이 1952년 협정한 유대인 희생자 배상 때문이다. 독일은 유대인 희생자나 생존자들에게 약 600억 달러(약 60조)의 배상금을 정했다. 더 많은 배상금을 타기 위해 희생자와 생존자를 마구 뻥튀기 했다는 의혹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유대인의 탐욕은 멈추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독일과 계속해서 배상협상을 하면서 스위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스위스 은행에 입금한 사망한 유대인의 미청구 계좌를 정부에 귀속했다는 이유다. 스위스가 귀속한 돈은 현 시세로 100만 달러 수준이었지만 유대인들은 스위스를 비도덕한 국가로 몰아세우고, 끊임없이 공격한 결과 1998년 12억 5천 만달러를 배상받게 된다.  10억 정도의 돈을  1조 3천억원으로 뻥튀기한 것이다.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로 자신들을 포장한 결과 엄청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었다.

스위스에게 승리한 유대인들은 다시 독일을 물고 늘어졌다.  50년간 ‘빈곤한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유대인 강제노동자들이 아직도 빈곤하게 살고 있다는 논리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1999년   청구한 ‘살아있는 홀로코스트’ 피해자는 약 25만 명이다. 10만 명으로 추산됐던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50년 동안  2.5배 오히려 늘어났다.
이렇게 숫자 장난을 치면서 유대인들은 자가당착에 빠지기 시작했다. 홀로코스트 연구로 유명한 ‘라울 힐버그’가 밝힌 유대인 사망자는 510만명이었지만 배상을 받을 대상자와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강제 노동자를 모두 헤아리면 510만 명의 사망자 수치에서 50만 명은 빠져야 한다. 즉, 실제 사망자는 460만명 정도이고 이는 유대인이 주장해 온 ‘희생자 600만명’이 허구가 된다. 물론 460만명도 작은 숫자는 아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역사 연구를 통해 실제 사망자는 그 보다 적을 수 있었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이 책을 지은 노르만 핀켈슈타인은 유대인이며, 그 부모는 실제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유대인 생존자다. 그러나 노르만 핀켈슈타인은 유대인에 대한 학살이 ‘정치적’으로 불리할 때, 나타나서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는 데 주로 쓰이고 있음을 개탄했다. 홀로코스트는 이제 처참한 역사의 기억이 아니라 그저 돈벌이를 위한 ‘홀로코스트 산업’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감동받고, 슬퍼했던 ‘피아니스트’, ‘쉰들러의 리스트’, ‘안네의 일기’ 등은 그들의 마케팅 캠페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홀로코스트라는 단어가 살아 있는 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난민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을 학살하면서도 여전히 그들은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불리할 때마다 자신들이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임을 증거하는 영화와 책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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