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면 길게 늘어서서 출근버스를 기다리는 직장인들을 볼 수 있다. 내가 사는 동네도 마찬가지다. 처음 그런 줄을 보는 건 보통 아침 여섯 시 반 정도다. 그 즈음이면 줄이 십 미터 가량 된다. 그들을 태우고 가는 버스 옆구리에는 이적료가 웬만한 기업 자본금을 훌쩍 넘는 축구선수들이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다. 그 위로는 이들의 ‘천문학적’ 이적료를 암시하듯 하는 글귀-은하수가 적혀있다. 어느 회사인지는 상상에 맡긴다. 여기서 질문 하나. 그들이 여섯 시 반 전에 집에 들어올까?

좀 고리타분한 말이긴 하지만, 요즘 세상처럼 기술집약적이고 노동절약적인 생산형태를 띤 때도 없었다. 기술집약적인 것에야 이견이 없을지 모르지만, 노동절약적인 건 좀 의심스럽다. 정말 노동절약적일까? 컴퓨터와 기술 덕분에 사람이 할 일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부지런하고 성실한 것이 최고’라는 식의 말을 자주 듣는다. 대체 뭐에 부지런하고 성실하란 말인가? 언뜻 단순하게 보이는 이 질문에 대답하는 건 이만저만 복잡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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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란드 러셀의 에세이집’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저 복잡한 질문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물길을 틔워준다. 이 책은 러셀이 1935년 이전에 쓴 에세이의 컴필레이션이다. 제목은 이 책에 든 에세이 중 하나이다.
한 세기 가까이 된 에세이집이지만 역시 지구인에게 알려질 정도로 똑똑한 사람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온통 글로벌해지고 복잡해진 요즘 세상에서 뭐가 잘못되었고 뭐가 잘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어디 좀 복잡하던가.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에서부터 가정과 교육, 좀 크게는 근로조건이나 사회적 분배와 정의,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획일화되어 가는 생활양식, 환경에 대한 것들까지,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해도 그런 걸 다 고민하다가는 자아가 분열될 지경이다. 러셀의 에세이는 이런 복잡다단한 현대의 문제들을 특유의 명료함과 간결함 가득한 문장으로 풀어낸다.

NPG x84663;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3rd Earl Russell by Bassano

러셀의 글은 참 재미있다. 호불호가 워낙 분명한 사람의 글이기 때문에 몰입되기가 쉽다. 특히 지루하고 난해하기 짝이 없는 서양철학사를 러셀처럼 재미있게 말하는 사람도 드물다. 서양철학사도 재밌게 쓰는 사람인데 에세이쯤이야 두 말 할 것도 없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역시 무척 재미있다.
80년 전에 쓴 글이지만 글의 초입에서 던진 질문 ‘사람 할 일을 잔뜩 줄여놓았는데 왜 우린 여전히 부지런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만약 ‘어쩔 수 없지 않은가?’라는 답변밖에 할 수 없었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우리가 부지런해야 하는 이유는 대단히 복잡한 풀이과정이긴 하지만, 한번 생각의 줄기만 틔우면 사실 대답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줄기를 틔우기 위해 복잡한 경제논리 따위를 굳이 익힐 필요도 없고(솔직히 공부는 좀 해야 한다), 유럽의 복지정책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공부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100년 가까이 지난 이 책을 읽으면 줄기가 틔워진다는 보장이 있느냐고?
있다. 러셀이 괜히 똑똑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사회는 러셀이 2차대전이 일어나기도 전에 쓴 글만큼도 현대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대에 대한 그의 진단 중 하나만 인용하며 마무리하자.

“모두가 ‘나는 좀 안다’고 생각하는 시대는 재앙의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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