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편,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 50선, 죽기 전에 먹어봐야 할 음식 10가지, ‘죽기 전에’로 시작하는 제목을 가진 콘텐츠가 난무한 세상이다. 맞다.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이긴 하다.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이건 공포 마케팅이다.

death_01

 

포털 검색 창에 “죽기 전에”를 치면 자동완성 검색이 무수히 나온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런 ‘죽기 전에 해야 할 무엇 무엇’이라는 제목을 보면 어서 죽고 싶을 정도다.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것들 때문에 제 명에 살기 힘들다

death_02

인터넷에 떠도는 ‘죽기 전에’ 시리즈를 읽다 보면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 명제를 다 따르다 보면 제 명에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죽기 전에’ 시리즈는 마치 3분 후에 판매를 마감한다는 홈 쇼핑 문구같다. 이렇게 ‘죽기 전에 해야 할 것’이라는 수사는 우리에게 공포감을 조장해서 그 글과 책과 콘텐츠를 소비하게끔 강박을 만들어 낸다.
“죽기 전에 그걸 하지 않으면 넌 크게 후회하게 될거야!”라는 관용어는 ‘충격’, ‘경악’이라는 문구를 넣어서 네티즌을 낚는 인터넷 언론사들의 기사 제목의 확장판이나 다름없다.
사실 이런 시리즈는 한국만 나타나는 특정한 현상이 아니다. 영어권에서도 ‘죽기 전에 해야 할 것’들 시리즈가 꽤 있다. 그러나 한국사람들에게 이 제목은 훨씬 더 효과적이다. 이유가 뭘까? 아마도 한국 특유의 현세주의 때문이 아닐까? 철학자 탁석산은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에서 한국인의 특징을 크게 현세주의, 인생주의, 허무주의라고 말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말이 있듯 죽음 이후의 삶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 있을 때 모든 것을 이루고 즐기는 경향이 한국인에게 있다고 한다. 일례로 빨리빨리 문화가 발달한 이유가 바로 죽기 전에 많은 돈을 모으고, 먹고, 마시고, 가볼 곳을 가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의미다.

 

죽기 전에 해야 할 것들은 남의 보편적 취향일 뿐, 내 취향을 찾자

death_03

비슷한 예제가 또 있다. ’20대에 해야 할 10가지’, ’30대가 가기 전에 가봐야 할 곳’, ’40대가 되면 해야 할 10가지’.  이것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특성이나 위치, 능력과는 상관없다. 그냥 무조건 그 나이에 해야 한다는 강요만 있다. ‘죽기 전에 해야 할 것들’이라는 수사를 한 꺼풀 벗기면 ‘추천’으로 말로 바꿀 수 있다. 추천하는 여행지 10곳, 추천 음식 20가지 등등… 그러나 이런 제목으로는 충격과 경악에 단련된 네티즌을 낚을 수 없다.

‘죽기 전에 해야 해야 할 것’들을 찬찬히 읽어보면 그냥 평범한 추천 리스트다. 그것도 필자의 주관이 섞인 지극히 평범하면서 보편적인 취향에 불과하다. 이런 것들은 하나의 참고 사항일 뿐 꼭 해야 할 것들이 절대 아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죽기 전에 봐야 할 한국영화 1001’이라는 책이 있다. 단순히 계산해서 하루에 한 편을 봐도 3년을 봐야 한다. 일주일에 한 편을 본다면 20년을 봐야 한다. 시리즈인 ‘죽기 전에 봐야 할 외국영화 1001’도 있다. 둘 다 모두 보려면 40년이 걸린다. 과연 죽기 전에 다 볼 수 있을까? 특히 거기서 추천한 ‘늑대의 유혹’나 ‘디워’, ‘귀신이 산다.’가 굳이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인지도 의문이다.

남들이 맛있다고 하는 음식을 나는 싫어할 수도 있다. 취향은 내 기질과 성격에 맞는 것이어야 하는데 남들이 좋아하고 인기 있는 것을 내 취향이라고 착각을 한다. 그래서 ‘대세’라는 유행어가 난무한다. 그게 왜 좋은 지에 대한 설명은 없고 남들이 다 좋다고 하니까 당연히 나도 좋아해야 하는 강박을 생산한다.  우리는 인기 취향의 강요 시대에 살고 있다. 남들이 좋아하니까 나도 좋아하는 대세를 따라야 하고, 남들이 하라고 하니까 나도 해야 한다. ‘죽기 전에’ 시리즈는 남들이 죽기 전에 해봤으니까 나도 하라는 몰취향의 강요다.

 

죽기 전에 내 취향이나 제대로 파악하자

내 판단으로는 죽기 전에 해야 할 것은 결단코 없다. 그걸 할 시간에 내 취향인지 남의 취향인지 사회가 만든 취향인지 구분부터 하는 게 더 필요하다. 내 취향을 파악하고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안 후에 내가 보고 싶은 영화와 내가 가고 싶은 여행지. 내가 먹고 싶은 음식과 책 등을 버킷리스트에 적어보자. 그것만 해도 벅차다. 그 리스트를 다 지우고 죽을 수 있는 행복한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걸 후회할 필요는 없다. 삶은 계속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실천하는 과정의 연속이지 계획하고 끝내는 마침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별 문제도 없는 낚시성 이름짓기에 너무 오버한다고?
그래도 언어는 행동을 규정하고, 제한하는 법이다. 이런 몰취향에 대한 강요와 강박을 벗어날 때 비로소 주체적인 행동이 가능해 진다. 미디어와 사회와 이웃들이 좋다는 것은 참고만 하라.
그리고, 당신은 부디 ‘당신의 삶’을 살아라. 죽기 전에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