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어답터가 한국에 선보인 2001년은 새로운 세기의 첫 해였다.
세기말 지구 멸망의 공포에 휩쌓였었던 인류는 지구에 별 일이 안 생기자 안심하고 신제품을 마구 만들기 시작했다. 얼리어답터 오픈 이후, 13년간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꿨던 IT제품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2001년 : 애플컴퓨터 아이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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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팟은 뛰어난 디자인과 쉬운 인터페이스로 생소했던 MP3 플레이어 개념을 일반인에게 소개했다.
아이팟의 보급으로 인해 사람들은 CD구입과 카셋트 구입을 멈췄고, 대신 아이튠즈 스토어를 통해 100억곡의 음원을 구입했다.
아이폰에 의해 팀킬을 당하기 전까지 아이팟은 가장 위대한 IT기기였으며 가장 많이 팔렸던 디지털 뮤직 플레이어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2002년 : RIM 블렉베리 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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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열심히 휴대폰을 만들고 있을 때, 캐나다의 RIM사는 아주 이상한 물건을 내놓았다.
헤드셋을 통해서만 음성통화가 가능한  불편한 휴대폰 ‘블렉베리 5810’이었다.
그런데 이 휴대폰은 블렉베리라는 모바일 OS를 지원했고, 블렉베리용 애플리케이션의 설치가 가능했으며, 인터넷 브라우징과 야후 메신저, 게임 지원 등 오늘날 스마트폰의 모든 기능을 지원했다.
스마트폰의 아버지이자 쿼티키보드를 갖춘 모든 휴대폰의 정의를 내리다시피한 제품이다.
미국인들은 이 블렉베리에 너무 중독되어 “크랙베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2003년 : 모토로라 레이저 V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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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로라는 레이저를 발표했고, 이듬해 CDMA버전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간 약 1억대의 판매를 기록한다.
모토로라 레이저의 특징은 바로 두께다. 기존 휴대폰 두께에 절반에 불과한 13.9mm의 얇은 두께는 디지털 기기의 패션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덕분에 애플은 2005년 아이팟 나노를 발표했고, 삼성은 2006년 울트라슬림폰 SGH-X820을 발표했다.
우리는 인류의 바지주머니를 가볍게 해준 모토로라에게 항상 감사해야만 한다.

 

 

2004년 : 닌텐도 Nintendo 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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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지만 마땅히 쓸 곳이 없던 터치스크린 기술은 닌텐도 DS를 통해 완벽한 포터블 엔터테인먼트 솔루션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람들은 터치스크린이 따분하고 짜증나는 기술이 아니라 즐겁고 새로운 기술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2014년, 우리는 터치가 안되는 디스플레이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2005년 : 애플컴퓨터 아이팟 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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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7일 샌프란시스코 모스콘 센터에서 스티브잡스는 프리젠테이션 도중에 청바지에서 아이팟나노를 꺼냈다.
6.9mm에 불과한 아이팟 나노의 두께를 강조하기 위한 이 역사적 퍼포먼스는 그대로 전설이 되었다.
아이팟은 하드웨어 디자인의 결정체였고,  플래시 메모리의 시대가 열리는 것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 많은 HDD업체와 MP3 플레이어 업체들을 도산시킨 저주의 제품이었다.

 

 

2006년 : 삼성전자 보르도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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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세계 TV시장은 PDP와 LCD의 경쟁, 틈새 시장으로 프로젝션 TV와 소수의 브라운관 TV가 난립하던 춘추전국의 시대였다.
언제나 패스트팔로워였던 삼성전자는 강윤제 프로젝트 리더팀이 디자인한 독특한 디자인의 TV를 내놓고, TV의 역사는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모델명 LCD-TV LN40R71BD, 프로젝트명 보르도로 불리우던 이 TV는 PDP에 집중하던 일본 업체들을 후발주자로 만들었고, 프로젝션과 브라운관 TV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냈다.
이후, 삼성전자는 세계 TV시장의 선도업체가 됐고, 세계 TV업체들은 삼성전자  TV 디자인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가 세계 전자업계에서 최초의 퍼스트 무버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2007년 : 애플 아이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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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첫 10년간 가장 중요한 모바일 기기는 의심할 바 없이 아이폰이다.
PC를 발명했던 애플컴퓨터는 2007년 아이폰을 출시하며 사명을 ‘애플’로 바꾸었다.
애플이 그 동안 개발했던 매킨토시, 뉴튼(PDA), 맥북, 아이팟 등의 하드웨어와 맥 OS, 아이튠즈 스토어등의 소프트웨어는 아이폰을 위한 세례자였던 것이다.
아이폰은 이 세상 모든 휴대용 기기의 기술이 집약해서 완성시켜 버렸다. 그리고 모든 전자회사들은 아이폰이 나올 때마다 살리에르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2008년 : OL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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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PC는 네그로폰테 MIT 교수가 개발도상국 어린이를 위해 기획한 ‘100달러 노트북’ 프로젝트를 뜻한다.
초기에는 비웃음을 샀지만 3년만인 2008년 180달러의 가격으로 실제 양산되어 아프리카 등지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OLPC는 2008년에 이미 태블릿 PC를 디자인했고, 겨우 75달러에 개발할 것임을 선언했다.
빵 대신 컴퓨터를 보급한 그의 숭고한 정신도 존경해 마땅하지만 넷북과 태블릿 PC의 모티브도 제공했으니 IT 업계에 끼친 영향력도 결코 적지 않다.

 

 

2009년 : 올림푸스 PEN, 파나소닉 G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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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까지 디카는 불완전했다.
컴팩트 디카는 촬상면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편법을 써야만 했고, DSLR은 필카의 매카니즘을 그대로 옮겨 온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림푸스와 파나소닉은 미러를 없애고 촬상면을 최대한 키운 미러리스 카메라를 설계하면서 ‘진정한’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어 냈다.
앞으로 10년 후, 미러리스 대신 DSLR을 선택하는 사람을 찾기란 2014년에 필카를 구입하는 이만큼 찾기 힘들어질 것이다.

 

 

2010년 : 애플 아이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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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모바일 디바이스의 역사는 애플의 역사였다.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아이패드가 성공할 것이라고 본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태블릿 PC는 아주 작은 영역만 차지한 마이너리그였으니까.
그런데 애플은 또 다시 게임의 법칙을 바꾸며 태블릿 PC 열풍을 이끌어 냈다.
이제 태블릿 PC는 넷북 시장을 단숨히 뛰어 넘으며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 제국에 가장 큰 결정타를 날렸다. 넷북은 아주 짧았던 영광만 차지한 채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불행한 디바이스로 기억됐다.

 

 

2011 : 삼성전자 갤럭시 S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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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스페인에서 공개한 갤럭시S II는 듀얼 코어 프로세서와 4.3인치 슈퍼아몰레드, 800만 화소 카메라를 9mm의 두께에 꾸겨 넣는데 성공했다.
하드웨어를 삼성이 만들었다면 소프트웨어는 구글이 맡아 안드로이드 2.3과 안드로이드 마켓은 아이폰의 소프트웨어에 근접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5개월만에 1천만대 판매를 돌파했고 누적 4천만대를 판매한다.
안드로이드와 iOS라는 역사적인 대립 구도를 만들어 낸 일등공신이고  삼성의 갤럭시 시리즈가 국내를 벗어나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스티브 잡스가 죽는날까지 저주를 퍼부었던 폰이기도 하다.

 

 

2012 : 테슬라모터스 테슬라 모델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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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의 발명은 100년이 넘었지만 비효율성과 형편없는 성능으로 내연기관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또 다시 100년이 흐른 뒤,  테슬라모터스는 테슬라 모델S라는 슈퍼카를 출시한다.
기존까지 전기차에 가지고 있던 모든 편견을 극복한 최초의 전기차이며, 인류의 미래를 바꿀 IT기술의 결정체로 평가 받고 있다.
테슬라 이후로 BMW와 폭스바겐은 전기차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 들었으며,  GM이나 쉐보레도 접어 두었던 전기차 라인을 다시 가동시키기로 마음 먹었다.

 

 

2013 : 페블(Pebble) 스마트워치

Pebble_watch

아이폰과 아이패드 이후로 세상에는 더 이상의 혁신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킥스타터라는 소비자 참여 방식의 클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새로운 혁신이 탄생했다.
킥스타터를 통해 공모된 이 스마트 시계는 삼성, LG, 소니가 실패했던 스마트 시계라는 장르를 세상에 알렸으며 삼성의 갤럭시기어와 애플의 아이워치(가칭)에게 까지 무한한 영감을 주었다.
비록 단점은 많았지만 소비자가 참여하는 21세기의 새로운 제작 방식과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무한한 영감을 주었다는 점에서 세상을 바꾼 또 다른 혁신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