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부터 매해 스위스 바젤에서는 바젤 시계보석박람회가 열린다. 올해도 19일부터 26일까지 열리며 세계 주요 시계 제조사들이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새로운 시계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런데 박람회 첫 날, 난데없이 인텔에서 보도자료가 날아왔다. 인텔과 구글, 태그호이어가 손 잡고 스마트워치를 출시한다는 내용이다. 명품 시계 브랜드가 만드는 최초의 스마트워치가 올해 안에 탄생하는 셈이다. 아울러 바젤 박람회에 인텔보도 자료가 날아 온 것이 정말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5년 후, 아무도 스마트워치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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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직도 스마트워치를 무시하는 사람이 있을 거다. 이해한다. 스위스의 시계 제조업체들은 지난해 애플워치가 나온 것을 보고 샴페인을 터트렸다고 한다.
“애플워치는 전자제품에 불과하다.”라며 자신들의 경쟁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애플워치를 카트에 넣고, 내 카드번호를 입력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휴대폰도 초기에는 웃음거리였다. 무전기를 얼굴에 대고 통화를 하던 이들을 보며 사람들은 비웃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비웃지 않는다. 시계와 통화를 하는 모습도 미래에는 익숙한 풍경일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까지의 시계는 전자제품이 아니라 패션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미래는 모르는 일이다. 카메라도 전자제품이 아니라 광학 제품이지만 결국에는 디카가 필카를 몰아냈다. 인류는 더 편하고, 더 연결되고, 더 업그레이드 될 수 있는 제품을 원한다.
1970년대, 쿼츠 시계로 대변되는 카시오와 세이코가 시계 산업을 흔들어 놓았듯이 스마트워치는 또 한번 시계 산업을 뒤흔들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워치의 선택지가 애플, 삼성, LG, 페블, 모토로라 등으로 한정되는 것은 불만이었다. 그러나 이 아래의 그림을 보면 더 이상 위의 전자제품 업체가 만드는 스마트워치는 보기도 싫을 거다.

 

태그호이어의 스마트워치는 신의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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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태그 호이어 그랜드 카레라 캘리버 36 캘리퍼(Grand Carrera Calibre 36 Caliper)

 

태그호이어가 스마트워치를 만들기로 한 것은 신의 한 수다. 태그호이어의 이미지는 비교적 젊고 역동적이다. 만약 스마트워치 산업이 용두사미로 끝나더라도 태그호이어가 스마트워치를 만든 것은 그들의 작은 실험정도로 평가될 것이다. 그들의 브랜드 이미지를 망칠 가능성은 적다.
애플워치가 비싼 가격으로 나온 것도 태그호이어에게는 호재다. 태그호이어는 자신들의 평균 가격대인 500만원 선의 스마트워치를 만들며 브랜드 이미지를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태그호이어는 스와치그룹과 리치몬트 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인 LVMH(Moet Hennessy Louis vuitton) 그룹 산하다. 만약 스마트워치가 1970년대 쿼츠 시계만큼의 돌풍을 일으킨다면 단숨에 빅3의 구도를 만들 수 있다. 태그호이어가 가장 의욕적으로 스마트워치에 뛰어 들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스와치 그룹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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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산업은 현재 크게 두 개의 세력으로 나눠져 있는데, 19개의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세계 최대의 브랜드는 스와치그룹이다. 스와치그룹 역시 스마트워치에 대해 조소를 하면서도 한 편으로 대비를 하고 있다. 스와치 그룹의 CEO인 닉 하이에크는 지난 2월 “NFC로 통신하고 충전이 필요없는 스마트워치를 3개월 내에 발매하겠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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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치그룹 산하의 스와치 브랜드는 전자잉크를 사용한 구부러진 시계를 내놓은 적도 있고, 태양광을 이용해 배터리 교체가 필요없는 기술도 가지고 있다. 특히 스와치는 작년 단 51개의 부품으로 오토매틱 시계를 구현한 ‘스와치 51’을 출시해 많은 화제를 낳았다. 이 기술을 응용해 최초의 기계식 스마트워치를 내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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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고급스러운 브랜드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티쏘(Tissot)라는 브랜드가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티쏘(Tissot)는 이미 터치스크린을 적용한 다이버워치를 출시한 적이 있다. 티쏘 역시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라 스마트워치를 만들어도 큰 이질감이 없을 것이다. 특히 스와치그룹은 윈도우와 안드로이드 모두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애플워치가 싫은 이들은 스와치그룹이 만드는 스마트워치를 구입하면 된다.

 

리치몬트 그룹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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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치그룹과 LVMH에 비해 리치몬트 그룹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다. 산하 브랜드가 대부분 점잖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월 리치몬트 산하의 몽블랑이 상당히 재미있는 콘셉트의 제품을 발표했다. 시계 자체에 스마트워치 기능을 넣은 게 아닌, 시계 스트랩에 스마트 기능을 넣은 e-스트랩을 공개할 것임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 제품은 스트랩에 0.9인치 흑백 OLED가 달려 있어 알람 기능, 만보계, 가속센서 등을 제공한다. 또, 한 번 충전하면 5일 정도 쓸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특히 시계는 원하는 시계를 차고, 스트랩만 바꾸는 개념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시계팬들에게는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출시 가격은 약 250유로(약 33만원) 정도로 일반 고급시계의 스트랩 가격과 큰 차이가 없다. 리치몬트 그룹으로써는 시계 고유의 가치를 해치지 않는 최선의 포석임에 틀림없다.

 

패션 브랜드들도 참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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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초에 스페인에서 열린 MWC에서 게스(Guess)는 스마트워치 커넥트(Connect)를 공개했다. 게스와 마션 워치스가 공동 개발한 이 제품은 게스의 리거(Rigor)라는 모델을 바탕으로 스마트 기능인 음성 인식, 터치 기능, 알림 기능을 넣었다. 본격적인 스마트워치라기 보다는 맛보기 모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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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바젤 박람회에서 구찌도 시계 기능이 포함된 스마트밴드를 만들 것임을 밝혔다. ‘i.am+’이라는 이름의 이 밴드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과 연결 없이 전화 수신, 문자 메세지와 이메일 송수신, 음악 재생, 지도, 일정관리, 피트니스 트래커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제휴 방식도 있다. 삼성전자가 내놓을 오르비스라는 스마트워치는 샤넬과 손잡고 스페셜 에디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번 바젤 박람회에 직접 참가해 현지 시계 업체들과의 협업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LG 역시 프라다와 많은 협업을 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둘의 사이는 갈 수록 안 좋아졌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옛날의 영광을 재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섣불리 선택하지 말자.

1970년대의 교훈을 가지고 있는 스위스 시계 제조업체들은 이번에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태세다. 특히 애플워치의 골드에디션과의 경쟁만큼은 절대적으로 사수해야 한다. 만약 천 만원짜리 애플워치가 팔린다면 스위스의 럭셔리 시계산업에 큰 타격을 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는 더 흥미진진하고 멋진 스마트워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애플워치는 전보다 더 험난한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새삼스럽게 애플워치라는 촌스러운 이름이 마음에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