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어답터는 ‘You are what you buy’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일상에서 우리가 제품을 선택하는 데 보다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내고자 한다. 

금중혁 컨트리뷰터는 새로운 세상과 사람을 만나고자 25개국을 다녔지만, 결국 방구석에서 여전히 게임을 즐기는 중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얻게 되는 교훈도 좋지만 그는 게임을 통해 인생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다양한 기술과 문화의 총아인 게임 산업은 이제 단순히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갈취하는 분야가 아니라 최첨단 산업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지만 우리 (중 일부)는 여전히 게임을 불경(?)한 것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금중혁의 렛츠플레이]에서 다루는 게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통해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차세대 게임계가 나아가고 있는 길이 VR(가상현실)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에 불과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고 있으며 리듬게임, RPG, 레이싱, 미연시, 시뮬레이션 등 장르 대부분에서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장르가 나뉘어 있어도 모든 VR 게임은 기존의 게임과는 절대적으로 차별되는 한 가지 거대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플레이어의 신체 동작이 핵심이라는 거다.

닌텐도 위(Wii)와 같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현대의 게임 대부분은 의자에 앉아 화면에 눈을 고정하고 스위치를 두드리는 행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VR 게임은 정면으로 그 주류를 부정한다. 베고, 돌리고, 끄덕이는 것은 물론이고 풀 트래킹 기술과 전방위 트레드밀을 이용한다면 전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플레이에 이용할 수 있다. VR을 통해 방 안에서도 세월을 낚는 강태공이 될 수 있고 대륙을 횡단하는 트럭 운전사가 될 수 있다. 지금도 즐거운 게임이 VR의 품 안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즐거움이 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딱 한 종류의 게임을 제외하고. <동물의 숲>.

이것 좀 해주지 않을래? 그거랑 저거랑 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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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시리즈 신작인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출시를 앞둔 <동물의 숲>은 10년이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닌텐도의 스테디셀러다. 동물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이사를 한 주인공이 집을 얻고 친구를 만들어 즐겁게 생활하는 내용의 게임이다. 여기서 우리는 친구를 만든다는 문구를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캐릭터들의 외형이 귀엽고 말투가 순진해서 그렇지 막상 플레이어가 해야 하는 일은 빵셔틀과 다를 바 없다. 물건 전달, 음식 배달, 행사 강제 참여 등 기본적으로 이웃들이 부탁하는 일을 들어주는 것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엄연히 마을 회관과 촌장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마을을 가꾸고 관리하는 일도 대부분 주인공에게 맡겨진다. 꽃을 심고, 나무를 가꾸고 쓰레기를 주워야 한다. 물론 해당 장소까지 일일이 이동해서 직접 해야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커서를 드래그하면 아이템이 줄지어 설치되는 편리함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들다. 차라리 복지관에 봉사활동을 나가는 게 더 유익해 보인다. 대체 우리는 왜 이딴 걸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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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숲>을 포함해 우리가 게임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성취감 때문이다. 언뜻 무의미하고 한심해 보이는 게임도 실은 타 매체의 추종을 불허하는 효율성을 내포하고 있다. 퀘스트 완료, 스테이지 클리어, 기록 갱신, 매치 승리 등 형태는 다양하지만, 게임은 언제나 실력 향상이나 주어진 일을 완수했다는 보람과 같은 성취를 제공한다. 그것도 편리하고 직관적이게. 영화나 소설도 즐거운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러한 성취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다고 해서 ‘잘’ 읽게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운동이나 요리 같은 것은 실력 향상과 결과물을 제공하지만, 대부분 방 안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에 비해 힘들고 오랜 시간 투자를 요구한다. 신생아인 전자오락이 길게는 수천 년 전통을 가진 다른 취미생활을 집어삼키고 있는 비결이다.

<동물의 숲>에서 우리가 NPC의 부탁과 요구를 일일이 들어주는 것도 할 일이나 친구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비록 여전히 힘들고 무식한 작업이지만, 최소한 현실에서 마을 하나를 가꾸는 것보다는 게임 안에서 하기 쉽고 또 투자만 한다면 언제나 확실한 결과를 내주기 때문이다. 수십 시간 정도만 뛰어다니면 만개한 꽃밭과 나를 좋아하는 친구들로 가득한 마을을 볼 수 있다. 그 맛에 헤어나올 수 없는 것이다. 무언가를 채워나간다는 기쁨 말이다. 현실에서는 쉽게 맛보기 힘든 일이다.

@닌텐도 Youtube

파란 약・빨간 약을 먹어도 삽질은 피할 수 없어

다시 이야기를 VR로 돌려보자. 앞서 언급한대로 이대로 간다면 <동물의 숲>도 VR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무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게임과는 달리 플레이어의 행동이 메인인 VR 세상에서 동물의 숲은 크나큰 약점을 떠안게 된다. 편리함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십자키로 이동해 버튼을 누르면 할 수 있었던 동작을 플레이어는 이제 직접 걸어가 몸으로 해야 한다. 꽃에 물 주기나 곤충 채집은 그나마 낫지만, 삽질이나 도끼질을 반가워할 플레이어는 없을 것이다. 직접 전투를 해야 하는 FPS와 같은 장르도 비슷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지만, 이쪽은 그나마 낫다. 애초에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조금 힘들더라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세상 어느 바보가 돈 주고 VR을 사서 삽질을 하겠는가?

어떤 형태로든 VR이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 번은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위적으로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은 실로 경탄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언제나 즐겁고 편리한 것은 아니다. 무작정 현실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은 무의미하다. 게임이 게임답기 위해서는 명확하게 현실과 선을 그을 필요도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기준을 어디로 삼을 것인지도 확실히 정해야 한다. 물론 나는 게임 개발자가 아니라 그냥 무책임한 플레이어에 불과하기에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이 <동물의 숲>을 구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별로 상관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내 역할은 구매하는 것이다. 내가 구매할 만한 이유를 앞으로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영화 매트릭스의 등장인물인 사이퍼는 다음과 같은 대사를 남긴다.

“I know this steak doesn’t exist. I know that when I put it in my mouth, the Matrix is telling my brain that it is juicy and delicious. After nine years, you know what I realized? Ignorance is bliss.”

나는 이 스테이크가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이것을 입에 넣으면 매트릭스가 내 뇌에 이것이 육즙 가득하고 맛있다고 말해주는 것임을 알아. 9년이나 보낸 뒤에 내가 배운 게 뭔지 알아? 그냥 무시하는 게 답이야.

재미있으면 장땡이다.
금중혁
먹고 싶은 대로 자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