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어답터는 ‘You are what you buy’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일상에서 우리가 제품을 선택하는 데 보다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내고자 한다. 

영화야말로 사람들에게 자주, 그리고 많이 소비되는 문화상품인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취향을 많이 타는 제품(Product)이기도 하다. 그래서 준비했다. <유선생의 방과후 영화: 이미 꼰대가 되어버린 어느 교사의 취미 생활>은 국어교사인 동시에 시네필(Cinephile)이기도 한 유호정 컨트리뷰터만의 시선으로 영화 리뷰를 풀어내고자 한다. 특성상 스포일러가 조금씩 묻어날 수 있다. 여기서 더 내려갈 것인가 말 것인가는 이제부터 당신의 선택일 뿐. 

@clipartkorea.co.kr

나는 조회를 하고 있다. 교실 뒷문이 열린다. 너는 오늘도 늦게 들어온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교복은 입지 않고, 슬리퍼를 신은 채로 들어온다. 아이들의 눈빛이 모두 너에게 쏠렸다가 썰물처럼 다시 나에게로 꽂힌다. 나는 놀랐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잘못 말을 꺼냈다가 우리 모두의 ‘오늘’을 망쳐버릴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이 두렵다. 나는 너의 발을 못 본 척한다. 슬리퍼를 신고 들어 온 너는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책상에 앉자마자 팔을 뻗고 고개를 숙여 잠을 청한다.

너는 어제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이다. 너는 요즘 새벽 두 시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배달 대행업체가 청소년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하고 오토바이를 대여해 준다. 회사에 고용되어 있지 않고, 지입 형태로 들어가 배달 건수로 돈을 받는다. 보험 관계를 물어보니 그런 건 모른단다. 부모님에게 전화를 해보니, 말려도 말을 듣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새벽 두 시. 퇴근하면 두 시 반쯤 집에 들어오는데, 막상 잠이 오지 않아 세 시나 더 늦게 잠이 든다고 한다.

너는 학교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학교 역시 너의 일상에 관심이 없다. 상담하던 중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다. 아르바이트를 새벽 두 시까지 하는데 어떻게 지각을 안 해요. 섣부른, 정녕 너의 섣부른 대답이다. 나는 너의 말을 듣고 나를 후회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니 학교에 늦을 수밖에 없다는 너의 말에 나는 “우리 학교는 너의 일상에 관심이 없다. 오직 등교 시간에 맞춰 학교에 와야 하는 게 너의 의무다”라고 말해 주었을 뿐이다. 나는 나를 후회한다.

나는 너 모르게 얼굴이 빨개진다. 나는 당당한 척한다. 그러고는 다른 사과를 한다. 우리 학교가 학생 모두를 위한 학교가 되지 못하고, 오직 대학을 가기 위해 바쁘게 돌아가는 학교이다 보니 그렇다. 세상은 마구 변해가는데 학교는 그 변화 속도가 어쩔 수 없이 조금은 더디기만 하구나. 아르바이트를 하든 뭘 하든 어쨌거나 너는 학교에 제시간에 맞춰 와야 하는 의무가 있다.

나는 너의 표정을 살핀다. 골통을 까부수고 싶다는 너. 흥분하면 얼굴이 붉어진 채로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너. 언제나 수업 시간에 잠만 자고, 선생님이 깨우면 화부터 내는 너.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고 싶지만, 자퇴도 하고 싶은데, 부모님이 허락을 안 해줄 게 뻔하니 마지못해 학교에 나온다는 너. 나는 너에게 어떤 사람일 수 있을까. 이렇게 버젓이 분필을 쥐고 서서.

doublethink, ‘학교 교육’이라는 정당의 비정규 당원이 되어서

이 정당은, 우리에게 이중사고를 강요하는 정당이다. 나는 너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 너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우리의 민주적이고 효율적이며 선진화된 교육 정책과 교육 행정이 너에게 최선의 교육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거대하고 막대한 시스템은 너를 교육하기 위해 일 년에 약 70조 이상을 쏟아 붓고 있다. 나는 학교 교육이라는 정당의 비정규 비공식 당원으로서 공식적으로 오늘날의 학교 교육을 대표해 네 앞에 서 있다.

너는 나의 말을 듣지 않는다. 너는 오직 고등학교 졸업장만 딸 거라고 한다. 나는 너에게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으려면 학교가 요구하는 행동 양식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학교가 요구하는 행동 양식을 지키다 보면 자연스레 네게 학교의 교육과 학교의 철학이 스며들 것이고, 너는 유아적 야만기를 벗어나 ‘교육받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너는 나에게 말한다. 나는 선생님들에게 실망하여 선생님을 싫어하는 것이라고. 선생님들은 너무 쉽게 차별을 자행했고, 너무 쉽게 나에게 칼을 휘둘렀으며, 너무 쉽게 나를 무너트렸다고. 선생님들이 너무 싫다고. 솔직히 학교를 왜 다니는지도 모르겠고, 나에게 왜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수학도 좋아하고, 배우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이젠 너무 싫다. 책을 보기도 싫고 공부하기도 싫다.

“다른 애들은?”

“네?”

“다른 애들은 잘 다니잖아. 왜 너만 그러니.”

선생님도 똑같으시네요. 전 다른 애들은 모르겠고요. 제가 이해가 안 된다고요. 왜 학교를 다녀야 하는지. 왜 이렇게 저한테 이래라저래라 막 함부로 말하는지 그게 이해가 안 된다고요. 다른 애들은 뭐 학교가 맞나 보죠.

나는 부끄럽다. 나는 얼굴이 붉어진다. 나는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고 있다. 나는 이중신념을 지니고, 나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는 학교라는 곳의 비정규 톱니바퀴가 되고 있다. 이곳은 나에게 책임을 물을지언정, 포상이나 격려 같은 것도 한마디 해주지 않을 텐데. 나는 속으로 외친다.

‘나도 학교가 싫어. 하지만 여기밖에 없어. 너 역시 너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선…’

나는 너에게 말한다. 알았다. 네 말 잘 알아들었다. 나는 너에게 학교와 선생님을 대표해 사과한다. 무엇이 너에게 그렇게 큰 상처였는지 모르겠다만, 어쨌거나 그렇게 너에게 큰 상처를 준 사람들이 선생님들이었다면, 내가 사과하겠다. 내 사과를 받아주든 안 받아주든 그건 네가 알아서 할 문제지만, 어쨌거나 이제 그만 노여움을 접고 학교에 잘 다녀주었으면 좋겠다.

“생각해 볼게요.”

영화 디테치먼트가 보여주는 세계와 교육

지난 며칠 동안 한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자격 논란으로 세상이 뜨거웠다. 많은 의견이 충돌하고 있는 동안 나는 한 학생과 씨름하고 있었다. 한 학생은 이미 학교를 떠난 뒤였고, 학교를 떠나기 직전의 또 다른 한 학생을 붙잡고 있었다. 학생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나는 나의 자격에 대해서 혼자 되새기고 있었다. 내가 하는 말, 내가 이 친구에게 던지는 말이 어디로 가고 있을까.

내 수업에 들어오고 싶지 않으면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 다른 선생님과는 무언가 다른 헨리 선생님. @naver.com

영화 <디테치먼트(Detachment, 2011)>는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 학교에 관한 이야기다. 어떻게 되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학교. 심지어 그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의 학부모들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학교에 관한 이야기다. 거기에, 기간제 교사가 부임한다. 기간제 교사는 <죽은 시인의 사회>처럼 존 키팅의 흉내를 내야 할까? 욕설과 폭력과 무신경과 무관심이 일상이 된 학교에서? 학생들은 무관심에 지쳐 무신경하게 욕설을 하고, 욕설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폭력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곳에서?

총체적 난국, 교육은 혹은 사람은 사람의 문제를 어디서부터 풀어갈 수 있을까. @naver.com

그럼 이곳에선 무엇으로부터 시작해야 할까. 교육이 무너진 곳에도 학교는 있다. 아무리 가난한, 아무리 별 볼 일 없는 곳에도 학교가 있고 예산이 있고 시스템이 있다. 그곳에서 교육을 펼친다. 별 볼 일 없는 곳의 너무나 가난한 나머지 타인에 대한 폭력은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한 폭력과 방기도 그저 일상화된 곳에서도 교육은 존재한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교육을 공격한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교육을 공격하는 것은 심지어 공격 지점도 잘 잡은 것이다. 교육은 사실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 개개인을 자세히 보려고 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격을 받은 교사와 학교는 학생을 나무란다. 우리가 이렇게 훌륭한 시스템으로 훌륭한 선의를 지니고 교육을 하려는데, 왜 너희는 일반적인, 정상적인 범주에 들어오지 못하느냐며 개인의 인격과 매너와 인성을 따진다. 싸움은 끝이 나지 않는다. 교육이라는 이름을 두고 벌어지는 한판 전쟁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학생이 선생을 조롱하고, 선생이 학생을 때린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분리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각자 자기의 삶을 살아갈 뿐. @naver.com

교육을 한다면서, 어쩌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분리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학생은 학생대로, 선생은 선생대로. 각자 자기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교사는 어쩌면 “내 삶에 들어오지 마라”라고 학생들에게 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자격이 없다. 서글프고 북받치는 죄책감을 딛고, 어디에도 없는 희망을 나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누가 더 높이 오를 것인가만 생각하는 정글과도 같은 교육의 현장에서 한 학생과 함께 싸우며 생각해보는 교육. 영화 디테치먼트다.

p.s. 너와 나. 우리는 잘 될 것이다. 우리는 희망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 슬리퍼를 신고 오는 것은 아무 문제도 아니다. 신고 오렴.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분리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호정
영화를 많이 봅니다. 영화보다는 극장을 좋아합니다. 영화는 그저 그런 영화가 많은데 어두운 극장은 어두워서 늘 새롭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