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어답터는 ‘You are what you buy’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일상에서 우리가 제품을 선택하는 데 보다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내고자 한다. 

금중혁 컨트리뷰터는 새로운 세상과 사람을 만나고자 25개국을 다녔지만, 결국 방구석에서 여전히 게임을 즐기는 중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얻게 되는 교훈도 좋지만 그는 게임을 통해 인생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다양한 기술과 문화의 총아인 게임 산업은 이제 단순히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갈취하는 분야가 아니라 최첨단 산업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지만 우리 (중 일부)는 여전히 게임을 불경(?)한 것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금중혁의 렛츠플레이]에서 다루는 게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통해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EDITOR IN CHIEF 신영웅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의 국제선 이용객 수는 자그마치 4,556만 명이다. 범위를 전 세계로 확대해 보면, 최근 몇 년 동안 약 100억 명의 사람이 국제선 여객기에 몸을 실었다. 성경과 ‘이것’ 정도를 제외하면 그 어떤 게임도, 영화도, 소설도 100억 명의 사람 앞에 노출된 적이 없다. ‘이것’은 바로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AVOD(Audio / Video On Demand)와 AVOD 게임이다.

의외로 할 만하다, 하지만…

대한항공에서 일등석 승객들은 다른 좌석과 달리 난기류 발생 경고를 전체 방송으로 전달받지 않는다. 직원에게 구두로 전해 듣는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정보가 있는데, 조원태 회장이 직접 지시한 사항이라는 거다. 기내 방송 때문에 플레이 중인 게임 화면이 자꾸 끊긴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게임이길래 아쉬울 것 없이 사는 일등석 승객들을 비행시간 내내 묶어둘 수 있었을까?

여담이지만 90년대 중반 처음 도입된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현재의 모습에 도달하기까지 꽤 많은 변화를 겪었다. 별도 요금을 받고 비즈니스석 이상에서만 제공되던 서비스가 어느덧 오버헤드 TV라는 형태로 일반석에도 제공됐다. 그러나 내용은 부실했고 일반석 승객에게 선택권 같은 것은 없었다. 안내 방송과 비행경로 정도를 보여주는 것이 전부였다.

이후 간신히 개인 스크린의 시대가 열렸으나 여전히 항공사에 따라 빈약한 채널이 몇 개 생겼을 뿐이었다. 지금과 같은 터치스크린과 컨트롤러가 포함된 AVOD 시스템이 탄생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결국 20년이 지나서야 드디어 모든 승객이 각자가 원하는 게임, 영화, 음악을 개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AVOD의 콘텐츠 시장은 북미를 기반으로 한 Global Eagle Entertainment(GEE)라는 회사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이곳의 사이트를 방문하면 각 항공사를 대상으로 판매 중인 게임 카탈로그를 볼 수 있다. 최신 카탈로그에는 앵그리버드, 팩맨, 배틀쉽 등을 포함한 121종의 게임이 수록되어 있다. 항공사, 좌석 등급, 노선, 기체, 하드웨어에 따라 지원하는 게임 종류에 차이는 있겠으나 121종이나 갖춘 점을 보면 ‘구색 맞추기’라고 하기에는 성의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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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석 승객들을 사로잡았다는 그 게임들을 직접 해봤다. 필자가 최근 탑승한 대한항공 B77-300에는 5가지 장르의 게임 26종이 수록되어 있었다. 수집 요소와 도전 과제가 존재하고, 기내에 있는 다른 승객과 대전을 벌일 수 있는 점 등은 높이 살 만했다. 만약 친구와 함께 여행하게 된다면 제법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듯했다. 특히 오목과 랠리 챌린지는 대전 상대가 없어 아쉬웠다.

물론 모든 게임이 완벽한 재미를 선사하는 것은 아니었다. 혼자서 플레이한다면 퍼즐과 보드게임처럼 하드웨어 스펙이 그다지 상관없는 장르는 그럭저럭 즐길 만했을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나 아케이드 게임은 견디기 힘든 수준이었다. 불편한 조작감과 초창기 스마트폰 게임 수준의 그래픽을 붙들고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기내 면세품 카탈로그를 읽는 것이 더욱 흥미로웠다. GEE 카탈로그에 있는 게임을 전부 가져왔다면 모를까, 이 녀석들은 몇 시간을 날려버리기엔 너무나 빈약했다.

헤어짐이 있기에 만남이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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퀄리티가 뛰어나든 형편없든,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했던 AVOD 게임도 머지않아 사라질 운명임은 분명해 보인다.

AVOD는 결국 일시적인 대체품에 불과하다. 설사 발군의 기능을 자랑한다고 해도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볼 수 있게 되는 순간 AVOD는 설 자리를 잃게 될 거다. 그리고 그 순간은 지금도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AVOD 시장의 거함인 GEE사가 그 순간을 앞당기는 데 가장 열을 올리고 있다. 그들은 위성 와이파이를 통해 기내에서도 온전하게 스마트폰을 이용하게 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일부는 이미 실현되었다.

최근 몇몇 대형 항공사는 앱과 와이파이를 통해 AVOD의 콘텐츠를 스마트폰 화면과 미러링하는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얼굴 높이에 고정되어 사용하기 힘든 터치스크린 대신 개인 디스플레이를 이용하는 거다. 게다가 내장된 컨트롤러는 터치스크린에 밀려 서서히 사라지는 추세다. 순서만 다를 뿐 컨트롤러나 AVOD는 아마 얼마 버티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할 듯하다.

AVOD가 제공할 수 있는 기능 중 스마트폰으로 구현할 수 없는 것은 실시간 비행 정보와 면세품, 공항 안내밖에 없다. 이 기능만 앱으로 구현한다면 전 좌석에 기껏 설치한 AVOD를 몇 년만에 회수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질 거다.

최근 ‘타다’와 같은 카셰어링 서비스의 등장으로 인해 택시 업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대략 100년 전의 택시도 인력거를 상대로 같은 일을 반복했다는 거다. 택시의 등장으로 인해 인력거꾼들이 크게 반발했고 잠시나마 택시의 보편화가 주춤했던 역사가 1925년 조선일보 기사로 기록되어 있다.

비슷하게 게임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취미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출판업계가 고작해야 수십 년이 채 안 된 게임에 밀려 ‘대중적 취미’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안겨준 소중한 취미가 사라지는 것은 스스로 수명이 다했기 때문은 아닐 거다. 더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그 자리를 대신하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그런 게임조차도 서로 밀어내고 밀려난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찰나와 같은 시간을 풍미한 채 사라질 위기에 처한 AVOD 게임이 아쉽지만은 않은 이유다. 게임은 사라지지만 또 다른, 더 큰 즐거움이 다가올 테니까.

GEE사가 자신들의 주력 사업 중 하나인 AVOD 사업을 앞장서서 없애는 일에 주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도 아는 것이다. AVOD가 얼마 버티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신 카탈로그를 계속해서 발매하고 있으며 흥행작을 계속 가져오고 있다.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는 누군가 그곳에서 즐거움을 찾고 있을 것이기 때문.

아직 여름 휴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기내에서 멍하니 창밖을 보지 말고 친구나 가족과 함께 AVOD 게임을 즐겨보았으면 한다. ‘이것’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전에.

같이 즐길 사람은 필수.
금중혁
먹고 싶은 대로 자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