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윤선의 음악

재즈는 언제 어디서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불태우는 음악이기에 감상자의 다양한 취향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인지 100년이 조금 넘는 길지 않는 역사이지만 여러 스타일이 존재하고 있으며 21세기인 지금, 저변이 확대될 중요한 시점에 서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 대표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의 활약상은 우리에게 무한한 자신감을 심어 주고 있으며 재즈의 저변 확대에도 큰 공을 세우고 있다. 나윤선은 유럽 재즈씬에서 독보적인 재즈 보컬을 선보이며 계속 전진하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재즈 보컬리스트이다.

음악가 집안(국립합창단 단장 나영수, 성악가 김미정)에서 태어나 건국대학교 불문과 재학시 프랑스 대사관에서 주최한 샹송 컨테스트에서 입상하고 1994년 김민기가 번안한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초대 연변 처녀 역을 맡아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재즈에 대한 열망으로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프랑스의 재즈학교 CIM에서 수학하고 졸업 후에는 동양인 최초로 교단에 서기도 한다. 프랑스의 자국 연주자들과 본격적인 활동을 벌이고 음반을 녹음하여 2001년에 첫 데뷔작 [Reflet]를 선보였으며 이후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어느 한쪽에 치우지지 않는 활동을 보여주면서 지금까지 가장 이상적인 재즈인으로 활약 중이다.

5집 [Memory Lane]을 시작으로 독일의 ACT 레이블에서 발표한 6집 [Voyage], 7집 [Same Girl], 8집 [Lento]의 인기는 아시아 재즈인의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월드 재즈 아티스트로 인정받고 평가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Same Girl]은 발매되자마자 프랑스 재즈 차트에서 4주간 1위에 올랐으며, 그리스 등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도 중요한 재즈 앨범으로 추천되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의 저명한 재즈 어워드인 L’Académie du Jazz(The French Jazz Academy)에서 The Prix du Jazz Vocal(보컬 부문 최고 아티스트)를 수상하기도 하였다.

발매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9집 [She Moves On]에서는 미국 뮤지션들과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었고, 최근작인 10집 [Immersion]은 신선한 편곡으로 다시 한 번 나윤선의 시대를 연다. 프로듀서 끌레망 듀꼴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오디오 팬들에게도 듣는 재미를 준다.

나윤선의 디스코그래피

1집 [Reflet] (2001, Sony)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공부하고 활동하면서 착실히 내공을 쌓은 나윤선이 내놓은 첫 앨범. 프랑스 현지에서 녹음되었으며 스튜디오의 공간이 느껴지는 맑은 녹음이 무척 인상적이다. 요절한 가수 라드카 토네프의 노래로 알려진 ‘The Moon’s A Harsh Mistress’를 첫 곡으로 그녀의 타고난 미성이 이어진다. 그러다가 호레이스 실버의 ‘The Jody Grind’에서는 펑키한 리듬을 타며 고음으로 스캣을 작렬한다. 곡에 따라 현악 앙상블이 더해지고 때론 단출한 피아노 트리오 연주에 감미롭게 노래한다. 김광민의 연주곡 ‘Rainy Day’에 불어 가사를 붙여 노래한 건 새로운 시도로 무척 신선했다. 마지막에 실린 박춘석 작사 작곡의 ‘초우’는 앞으로 나윤선이 보여준 ‘우리 노래’ 부르기의 첫 출발점이다.

2집 [Light For The People] (2002, In Circum Girum)

나윤선이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한 CIM 재학 시절 만난 친구들과 결성한 퀸텟으로 독일, 영국, 이스라엘, 프랑스, 그리고 한국까지 다양한 국적의 개성이 재즈로 모여 있다. 워낙 호흡이 잘 맞는 멤버들이라 원 테이크로 레코딩을 마쳐 라이브 앨범을 듣는 듯 현장의 생동감이 느껴진다. 더블 베이스만을 파트너로 노래하는 볼레로 ‘Besame Mucho’, 사랑의 아픔을 노래한 스탠더드 ‘Sometimes I’m Happy’, 베이시스트 요닉 젤닉이 만든 ‘Song For The People’ 등 감성과 지성으로 오가면 아름다운 미성을 유감없이 들려준다. 그리고 현제명의 ‘고향 생각’을 ‘Nostalgia’라는 타이틀로 긴 호흡을 갖고 노래한다. 프랑스 레이블 In Circum Grium에서 나온 [Light For The People]은 국내 발매를 하지 않고 당시에 수입으로만 유통되어 현재 구하기 어려운 앨범이기도 하다.

3집 [Down By Love] (2003, Sony)

재즈 스탠더드를 넘어 록&팝의 고전을 적극적으로 재해석한 [Down By Love]는 지미 헨드릭스, 스팅, 김민기, 사이먼&가펑클, 아스토르 피아졸라, 엘비스 코스텔로 등 다양한 선곡이 인상적이다. 1, 2집에 비해 기타 사운드가 강조되어 있는데 기타, 베이스, 작곡가, 프로듀스를 맡은 올리비에 오드의 역량이 전해지는 대목이다. 올리비에 오드는 레이블 In Circum Grium의 대표이기도 하다. 모노럴한 반주에서 부유감 전해지는 사운드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홈 스튜디오에서의 레코딩이지만 보컬의 윤기가 손에 잡히듯 뚜렷하다. 나윤선의 자작곡 ‘Camille’s Song’은 피아니스트인 기욤의 딸 카뮈를 위해 만든 곡이고, 그녀에게 음악의 길을 열어준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은 그녀 자신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노래한다.

4집 [So I Am…] (2004, In Circum Girum/ EMI)

커버 곡 없이 나윤선 퀸텟 멤버들의 오리지널만으로 채운 앨범으로 피아노만 기욤 노에서 벵쟈멩 무세로 바뀌었고 나머지는 2집 [Light For The People] 그대로이다. 멤버들은 형식적인 재즈가 아니라 창조적이고 자발적인 현재 진행형의 재즈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기존에 나윤선이 보여주었던 친절함이 여기에서는 다소 현학적인 수사들로 들린다. 즉흥성이 강조되다 보니 반주와 노래의 앙상블이라는 재즈 보컬의 전통적인 진행보다는 연주자들 사이 잠재된 찰나의 즉흥성을 자극하고 교환하는 과정에서 폭발하거나 페이드 아웃된다. 이런 연주 속에서도 나윤선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 보다 도발적이고, 격렬한 감정을 분출하며 테크닉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리듬이 톡톡 튀면서 독특한 뉘앙스의 유머를 지닌 ‘Circum & Girum’은 레이블 찬가로 나윤선의 작곡이다.

5집 [Memory Lane] (2007, Seoul Records)

나윤선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이색적인 앨범으로 한국의 대중음악 작곡가(조동익, 박용준, 김정렬, 김광민, 하림)의 곡을 유럽 재즈 뮤지션이 연주한 팝 프로젝트 앨범. 베이시스트이자 퓨전재즈밴드 ‘더 버드’의 리더 김정렬이 공동 프로듀서를 맡아 앨범의 수위를 적절히 조절하고 있다. 연주는 덴마크 피아니스트 닐스 란 도키를 주축으로 베이시스트 메즈 빈딩, 드러머 알렉스 리엘, 타악기 연주자 자비에 데상드르 나바르가 있다. 한국어로 부르는 것에 큰 의미를 가지고 있던 나윤선은 [Memory Lane]을 우리말로 CD와 영어로 부른 CD를 묶어 2 CD로 발매하기도 했다. 이전에 발표한 4장의 앨범과 이후 독일의 재즈 레이블 ACT에서 발매하는 4장 가운데에서 터닝포인트가 되는 앨범이다.

6집 [Voyage] (2008, Lime Light)

유럽의 인기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상황에서 독일의 유명 재즈 레이블 ACT는 나윤선과 계약을 한다. 이후 4장의 앨범을 발표하는데 [Voyage] 그 첫 앨범으로 ACT 레이블의 주요 연주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이후 나윤선 활동에서 오른팔 역할을 하는 기타의 울프 바케니우스를 비롯해 베이스에 라스 다니엘슨, 퍼커션에 자비에 데상드르 나바르가 참여한다. 그리고 한해 전인 2007년에 국제 재즈어워드 뉴탤런트 상을 받으면서 북유럽 재즈계의 새로운 별로 떠오른 트럼페터 마티아스 에익이 스산한 트럼펫 사운드를 연출한다. 나윤선의 공연 레파토리에서 빠지지 않는 에그몬트 지스몬티의 ‘Frevo’와 톰 웨이츠의 ‘Jockey Full Of Bourbon’이 여기에 수록되어 있다.

7집 [Same Girl] (2010, ACT/ Warner)

ACT와의 두 번째 앨범이자 통산 7집으로 전 작인 [Voyage] 발매 후 가진 19개국 50개 도시 투어에서 얻은 자신감이 제대로 발현된 앨범. 선곡의 다채로움과 이를 넘어서는 감각적인 해석은 [Same Girl]을 그녀의 대표작으로 꼽게 한다. 뮤지션은 울프 바케니우스(기타), 라스 다니엘슨(베이스), 자비에 데상드르 나바르(타악)이 전작에 이어 참여하고 있다.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에 실린 ‘My Favorite Things’를 아프리카 민속악기 카림바를 이용해 음산하게 노래하면서 시작한다. 포크의 거장 잭슨 프랭크의 ‘My Name Is Carnival’은 드라마틱하게 소화하고, 메탈리카의 ‘Enter Sandman’까지 커버한다. 과할 정도로 다양한 스타일이지만 나윤선과 울프 바케니우스는 대중성과 예술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낸다.

8집 [Lento] (2013, ACT/ Warner)

ACT와 자신의 컬러를 완벽하게 일치시킨 앨범. 나윤선의 감정과 기교가 농축된 ‘Lament’는 그녀의 작사 작곡으로 싱어송라이터로서 완숙한 경지를 보여준다. 녹음에 참여한 뮤지션은 공연에서도 더할 나위 없는 호흡을 보여주는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와 라스 다니엘슨이 여전히 나윤선의 옆을 지켜준다. 그리고 프랑스의 낭만을 아코디언으로 보여주는 뱅상 페라니와 5, 6집에 참여한 바 있는 타악기 연주자 자비에 데상드르 나바르가 함께한다. ‘Frevo’가 떠오르는 울프 바케닝우스 작곡의 ‘Momento Magico’는 라이브 때마다 관객의 힘찬 박수를 받는 곡으로 나윤선의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보컬이 매력적이다. 1집에 수록한 바 있는 ‘초우’를 다시 부르고, ‘아리랑’은 앨범 발매 전 TV-CF(KDB 금융)에 먼저 삽입되어 팬들을 기다리게 한 곡이다.

9집 [She Moves On] (2017, ACT/ Warner)

8집 [Lento] 이후 4년이란 긴 시간을 준비해 선보인 앨범으로, 유럽 재즈 씬에서 20년 넘게 활동하고 10년 전부터는 재즈 보컬의 별의 되어 유럽의 여러 매체와 재즈 시상식을 석권한 나윤선의 새로운 시도. 작가주의 색채가 짙은 미국 연주자들과 팀을 이뤄 6~8집과는 결이 다른 음악을 선보인다. 실력파 프로듀서이자 건반 연주자인 제이미 사프트, 아방가르드와 모던을 오가는 기타리스트 마크 리보, 노라 존스의 드러머 댄 리서, 뉴욕 무대를 대표하는 베이시스트 브레드 존스가 참여하고 있다. 폴 사이먼이 1990년에 발표한 앨범 [The Rhythm Of The Saints]에 실린 ‘She Moves On’을 타이틀로 지미 헨드릭스의 ‘Drifting’, 루 리드의 ‘Teach The Gifted Children’ 등 과감한 선곡은 여전하고, 루츠 록이 느껴지는 기타가 강조된 사운드가 새롭다. 나윤선의 변화를 바로 보는 팬은 그저 행복할 뿐이다.

10집 [Immersion] (2019, Warner/ Interpark)

9집 [She Moves On]에서 보여준 변화는 그동안 정든 ACT 레이블과의 결별로도 이어져 10집 [Immersion]은 워너 뮤직에서 발매된다. 커버 곡이 있지만, 나윤선의 곡(In My Heart, The Wonder, Mystic River)을 강조해 10집의 의미를 더 하고 있다. 앨범을 들으면 전통적인 재즈 사운드와는 더 멀어진 음악을 만날 수 있는데 프로듀서의 성향이 강하게 전달되는 음악이다. 2014년에 발매된 니나 시몬 추모 헌정 앨범 [‘Round Nina]에서 만났던 프로듀서 끌레망 듀꼴와 나윤선의 캐미가 상상을 뛰어넘는다. 조지 해리슨의 ‘Isn’t It a Pity’, 마빈 게이의 ‘Mercy Mercy Me’, 슈프림스와 필 콜린스 노래로 유명한 ‘You Can’t Hurry Love’, 그리고 레오나드 코헨의 ‘Hallelujah’까지 소화한다. 미국적인 사운드가 더 강조된 10집이 될 거라 예상했지만 이를 뛰어넘는 나윤선식 해석으로 스스로 음악의 경계를 무색케 한다.

*글/사진: 재즈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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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샵은 우리나라 1세대 온라인 오디오 커머스이다. 1999년 ‘넷필드’로 시작해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온라인 커머스를 운영했다. 현재 청담동에서 국내 최대의 하이파이숍(Hi-Fi Shop) ‘셰에라자드’를 운영 중이며 다양한 오디오 브랜드를 취급하면서 마니아들에게 새로운 음향적 경험과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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