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어답터는 ‘You are what you buy’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일상에서 우리가 제품을 선택하는 데 보다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내고자 한다. 

영화야말로 사람들에게 자주, 그리고 많이 소비되는 문화상품인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취향을 많이 타는 제품(Product)이기도 하다. 그래서 준비했다. <유선생의 방과후 영화: 이미 꼰대가 되어버린 어느 교사의 취미 생활>은 국어교사인 동시에 시네필(Cinephile)이기도 한 유호정 컨트리뷰터만의 시선으로 영화 리뷰를 풀어내고자 한다. 특성상 스포일러가 조금씩 묻어날 수 있다. 여기서 더 내려갈 것인가 말 것인가는 이제부터 당신의 선택일 뿐.

– EDITOR IN CHIEF 신영웅

칸은 세계적인 휴양지이면서 동시에 시네필(Cinephile)들의 영원한 성지다. 영화야 누구나 좋아하는 거지만, 그 열광의 정도가 조금 다르다. 시네필이란 영화 세계의 근본주의자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율법을 만들고 그 율법대로 제 삶을 운영하거나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특별히 일컫는 말이다. 시네필의 율법은 전 세계에 걸쳐 퍼져 있는데 나라나 문화마다 그 지역의 풍토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발전했다. 하지만 어느 문화권에서나 통용되는 시네필 제 일의 율법이 있다. 시네필의 성자 프랑소와 트뤼포가 전 세계에 산재하며 주저주저하는 시네필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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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사랑하는 방법의 첫 번째는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다. “원 세상에! 같은 영화를 두 번 본다고? 완전히 미쳤구먼!” 오해해서는 안 된다. 같은 영화를 두 번 본다는 이 간단한 행위는 프랑소와 트뤼포 시절엔 완전히 미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두 번째는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다. “원 세상에!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니고 글을 쓴다고? 완전히 미쳤구먼!” 오해해선 안 된다. 영화에 대해 글을 쓴다는 이 간단한 행위는 프랑소와 트뤼포 시절엔 완전히 미친 인간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좁은 지면에 글을 쓸 수 있는 ‘필자’가 되기 위해선 영화에 대해, 너무나 완전히, 미쳐야 했다. 영화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불안한 삶’을 여전히 껴안고 있되 하지만 그 외의 다른 것, 말하자면 영화 같은 것도 더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자유’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그 마음의 자유는 오랜 기간 미친 짓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마지막 율법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프랑소와 트뤼포가 천명한 시네필의 마지막 세 번째 율법. 바로 영화를 찍는 것이다.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영화에 제 목숨을 바치고 어차피 목숨을 바친바, 내 마음대로 여러 명, 아니 수십 명, 아니 수백 명의 인생을 나락으로 빠트리게 하여, 수천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영원히 비웃음거리가 되겠다는 다짐과도 같은 것이다.

“아니 그럼 그냥 영화만 적당히 좋아하면 되지, 왜 시네필을 해?”

시네필을 왜 하는가? 프랑소와 트뤼포는 시네필의 당위성에 대해선 따로 말을 남기지 않았다. 다만 그는 그의 영화로서 시네필의 나머지 율법을 전파했다. 프랑소와 트뤼포의 영화를 앞에 두고 시네필 스스로 생각해 본바, 시네필을 하는 이유는 그게 멋있어서도 아니고, 그게 돈을 가져다주기 때문도 아니었으며 권력을 가져다주기 때문도 물론 더더욱 아니었다. 시네필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우리를 옥죄고 우리를 가둔 뒤 그렇게 옴짝달싹 아무것도 못하게끔 상자에 갇힌 인간으로 사는 것이 바로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 무시무시하고 음험한 유, 무형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가장 핫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말하자면 가장 핫하고, 너무나 쿨하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혁명이었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말하자면 400번이나 두드려 맞으면서도 그에 굴하지 않고 좁은 골목을 벗어나 기어이 바다와 만나고 말겠다는 내적 다짐이면서 목표였다. 프랑소와 트뤼포 이후로 전 세계의 모든 시네필들은 이 혁명과도 같은 바다의 새로운 물결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시네필이라는 이름은 너무나 가슴 벅차고 매력적이어서 잠 따위가 대수가 아니었다. 시네필이라 자처하는 99%는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는 이 길을 많은 사람이 자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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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라져 갔다.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혁명을 이루어 낸 뒤, 그가 보고 겪은 세계를 대상으로 영화를 만들고, 그 영화가 다시 혁명이 되면서 동시에 상업적으로도 성공하는 일은 연탄불 위에 구워지는 쥐포의 입에서 공기 방울이 터져 나오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대신 영화를 소비하는 소비자로 살기로 했다. 세상은 이내 혁명도 시네필도 없이 평화로워졌다. 세상은 자본가 아래 고요해졌다. 혁명을 내주고 평화를 얻었다. 시네필이라는 피켓을 내주고 문화소비자라는 영수증을 받았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영화를 그냥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그냥 영화도 아닌 상업 영화를 찍으면서, 다시 그 상업 영화로 혁명을 꿈꾸는 사람이 어디에 있나.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자, 끝. 여기서 엔딩. 프랑소와 트뤼포라니? 그게 누구야? 그는 이미 진즉에 죽어 버린 사람이었다.

그런데 더벅머리 봉준호가 남았다. 아니 봉준호만 남았다. 봉준호는 현재 전 세계에서 상업 영화로 혁명을 꿈꾸는 거의 유일한 감독이다. 봉준호는 프랑소와 트뤼포가 영화로 이야기 한, 그러나 한 번도 공공연히 말하여지지 않은 시네필의 네 번째 율법. “시네필은 어쨌든 기존 세계의 질서를 거부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를 아직 붙들어 매고 있는 마지막 시네필이다. <괴물>과 <설국열차>와 <옥자>를 거쳐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그는 타자화되고(즉, 이야기의 목표가 ‘이 세계의 변화’에 있지 않고 최대한 ‘이 세계 모습 그대로’ 유지시키는 것에 있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 내 스트레스를 줄여 다시 일할 수 있는 힘을 얻고 싶어 할 뿐이다. 영화가 펼쳐주는 이야기는 우리의 변화에 관심이 없다. 이야기는 우리의 타자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영화의 타자다. 영화와 우리의 관계는 자본과 우리와의 관계와 비슷하다. 즉 아무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정형화되어 가는, 영화라는 매체의 혁명성을 믿고 있는 마지막 장난꾸러기이다.

그러니. 우리가 보기에 봉준호가 어찌 불편하지 않겠는가. 봉준호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그가 불편하거나, 그를 애써 무시하거나. 그에 대해서 열광하는 반응은 찾기 쉽지 않다. 그의 영화를 벌써 칠백만이나 보았다고? 그게 바로 우리가 영화에 대해 타자라는 방증이다. 이 영화를 보면 반드시 불편해야 한다. 인디언 모자를 눌러 쓴 프롤레탈리아 혁명은 우발적으로 발생해 은둔과 칩거로 끝이 났는데, 다시 그 혁명을 복기해보니 위선과 거짓과 범죄와 탐욕과 망상으로 가득 찬 기생충 가족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었다는 내용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박 사장의 인디언 모자는 인디언 놀이이지만, 송강호의 인디언 모자는 존재를 부정당한 인디언의 진짜 모자였는데, 그 결과는?

칠 백 만이 팝콘과 콜라를 즐기며 <기생충>을 보았고, 극장에서 나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목을 축인 뒤, “아 내일 출근하기 싫어.”라고 말하고는 다시 사라졌다. 우리는 그의 영화가 불편했다. 우리의 가난을 함부로 대한 것은 그렇다 치지만 우리의 존재 자체를 이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니. 북한보다는 나은 삶을 사는 줄 알았는데, 북조선 아나운서가 하는 말을 들으니 우리가 북한보다 나은 것도 없는 것 같다는 그 풍자가 너무 불편하고 아프게 다가온다. 그런데 다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니. 봉준호만 없었으면, 지난번에 본 <어벤져스: 엔드 게임>으로 느낀 영화적 쾌감을 오래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봉준호가 나빴다!

그래서 봉준호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핫하고 가장 쿨한 장난꾸러기이다. 프랑소와 트뤼포가 말한 시네필의 에피파니(epiphany)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모든 영화광의 고향 칸이 그의 영화에 경의를 표했다. 사실 칸은 봉준호를 기리는 척하면서 프랑소와 트뤼포를 그리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그럴 것이다. 봉준호도 이에 답하듯, “앙리 조르주 클루조와 클로드 샤브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이런 젠장. 우리 빼놓고, 살아남은 시네필들끼리는 서로 다 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네필끼리는 서로 다 통하고 있다.
유호정
영화를 많이 봅니다. 영화보다는 극장을 좋아합니다. 영화는 그저 그런 영화가 많은데 어두운 극장은 어두워서 늘 새롭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