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매거진 <얼리어답터>의 에디터 이야기다. 파라과이에서 살다와 음악을 전공했지만 피아노 대신 자판만 두드리는 이가 있고, 미대를 나왔지만 그림을 그릴 줄 모르는 이도 있으며, 쇼핑하려고 글을 쓰는 쇼퍼홀릭도 있다. 마지막으로 툴툴대면서도 궂은일은 도맡아서 척척 해내는 이도 있다. 사는 동네도, 나이도 취향도 제각각이다. 이렇게만 말해도 어느 정도 예측이 되겠지만 이들과 회의를 하다보면 어느 것 하나 쉽게 일치되는 게 없다. 아이템 회의를 해도 열이면 열 모두 의견이 다르다.

이렇게 개성 넘치는 그들이지만 그들에게도 하나의 공통점은 있다. 바로 ‘애플’을 이야기할 때의 눈빛. 그들이 가지고 오는 원고만 봐도 애플에 대한 그들의 애정이 느껴진다. 대체 그들은 왜 그토록 애플을 사랑하는가?

– 편집자주

1. [아이폰 XR] 오해야, 니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2. [아이팟 클래식 5세대] 아련한 추억 속 그 이름
3. [아이패드 미니5] 나만 쓰고 싶으니까 사지 마세요
4. [아이폰 7 플러스] 넌 감성이었어

안녕, 아이폰 XR. 매일 보는 사이인데 이렇게 편지를 쓰려니 조금 어색하네. 그래도 기분이 참 새롭다. 옛 생각도 새록 새록 나고. 지난 번에 우리 백일 기념일도 제대로 못 챙겨서, 오늘 좀 갑작스럽지만 오붓한 시간을 가져볼까 해서 자리를 마련해봤어. 우리 함께한 지 벌써 다섯 달이나 됐구나. 처음 만났을 때, 기억 나니?

1. 첫 눈에 반했던 그 때를 기억해

어느 추운 겨울 날이었지. 남들 따라서 아이폰 7 Plus 배터리를 교체하러 가로수길 애플 스토어를 갔는데, 줄이 너무 길고 시간은 없던 와중에 꼿꼿하게 서 있는 너를 보았어. 물론 그 전에도 너를 한번 봤던 적이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었어. 굳이 또 새로운 만남을 시도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고민이 많았던 거지.  하지만 그 날은 좀 달랐어. 추운 바깥에서 고생하다가 따뜻한 실내에 들어온 순간 너와 눈이 마추쳤고 너의 영롱한 컬러를 보니, 꽁꽁 얼었던 내 마음이 녹으면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욕망을 참을 수가 없었어. 정신을 차려보니 애플 스토어 직원에게 체크카드를 건네주던 내 모습을 발견했었지. 천원짜리 한 장 쓸 때도 벌벌 떨던 내가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해도 의아해. 

아담을 유혹하던 새빨간 사과같은 진득한 컬러의 프로덕트 레드. 128기가의 용량. 체크카드 일시불, 106만원. 그리고 플라스틱 백까지 더해 총 106만1백원의 거금을 현장에서 긁어버렸지. 적은 금액이 결코 아니었지만, 하루의 반을 나와 함께 할 너란 걸 알고 있기에 후회되지는 않았어. 그 돈으로 그걸 살 거면 차라리 조금만 더 보태서 Xs로, 혹은 Xs MAX로 가는 게 낫지 않겠냐는 사람들도 많이 봤지만 나는 너의 새빨간 컬러에 이미 취해버렸는 걸. 돌아오던 길에 칼바람이 더 세차게 불었는데 이상하게도 내 몸은 더 따뜻해지는 것 같았어. ‘과소비’와 ‘자기 만족’이라는 감정의 사이에서 터져 버릴 것 같았던 내 심장의 울림을… 텐알아 너는 아니?

2. 이런 내 과거, 이해해 줄 수 있니

생각해보면 아이폰 3GS, 4, 5, 5s, 5c, 6s, 그리고 7 Plus까지 10년 가까이 쭉 아이폰을 사용해왔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이폰 5c’야. 희한하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고 가격적인 메리트도 없던 모델이라 사람들이 잘 기억하진 않지만 나는 사실 5c에 가장 큰 애착을 가져.

벌써 5년 전이구나. 조선백자 같이 영롱한 우아함을 뽐내던 화이트 컬러의 5c에 나는 순식간에 매료되고 말았었지. 그래서 그 때 아마 내 인생 최초로 전화기를 제값 모두 주고 샀던 기억이 나. 할부도 아니고 일시불로 말이지. 그 때 주위 사람들은 나보고 미쳤다고 했어. 5s를 잘 쓰고 있던 놈이 갑자기 저가형 보급형 아이폰으로 바꾼다고 하니 말이지. 근데 있잖아… 사람들이 그건 모른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5c는 저가형이라고 하기엔 좀 그래. 포지션이 애매했던 녀석이었을 뿐. 실제로 눈으로 보고 손에 쥐어보면 그 보드라운 그립감과 동글동글 예쁜 디자인에 놀랐을 텐데.

5c는 결국 실패작으로 남긴 했지만 컬러풀한 뒤태를 가진 텐알이 너를 마주하던 그 순간에 나는 아마 5c에 대한 옛 기억을 나도 모르게 떠올렸던 건지도 몰라. 그렇다고 5c를 못 잊어서 너를 택한 건 아냐. 지금 너에 대한 내 마음은 진심이야. 이런 내 과거, 이해해 줄 수 있니 텐알아?

3. 우리의 행복했던 시간을 기억하니

Xs에 비해 조금은 캐주얼한 느낌의 디자인과 컬러풀한 색상을 가진 너. 박스에서 너를 꺼내는 순간부터 네가 예쁘지 않았던 적이 없었어. 강렬하고 진득한 색상, 동글동글 매끈한 바디가 매혹적이었지. Xs와 똑같은 프로세서로 무슨 일이든 빠릿하게 처리하는 연산 능력, 홈 버튼 없이 휙휙 전환할 수 있는 멀티태스킹, 눈을 편안하게 했던 LCD 디스플레이, 그리고 한결 쨍한 사진을 찍어주던 너의 카메라. 인물 사진 모드의 아웃포커스 효과는 싱글 렌즈 카메라임에도 어찌 그리 예쁘게 나오는지. 특히 지금까지의 아이폰 중에서 가장 막강했던 배터리는 내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버리게 해줬지. 쓱 올려 놓기만 하면 되는 편리한 무선 충전도 매력적이었고.

그런 너를 위해 케이스도 몇 개를 샀는지 몰라. 슬림 케이스, 젤리 케이스, 가죽 케이스, 그리고 러기드 케이스까지 국내 쇼핑몰과 알리 익스프레스를 하루에도 몇 번씩 뒤지고 다니기도 했어. 내 옷은 안 사더라도 네가 입을 옷은 얼마든지 사줄 수 있었어. 우린 정말 행복했었던 것 같아.

4. 나를 용서해줄 수 있겠니

너에게 금세 익숙해졌던 탓이었을까? 우리 사이에도 어느샌가 조금씩 균열이 생기는 걸 느낄 수 있었어. 진득한 빨간색은 금방 질렸고, 케이스까지 합해 220g이 거뜬히 넘는 무게는 손목을 아작낼 것처럼 위협적으로 느껴졌고, 한 손 사용이 힘든 넓은 베젤과 본체 두께도 갈수록 부담스러웠지. 7 Plus보다 낮은 ppi도 눈에 조금씩 거슬리고, 미세먼지가 많아 마스크를 자주 착용하던 때에는 페이스 아이디 인식을 못해 매번 비밀번호를 누르던 내 모습에 지쳐갔어.

그러다 보니 너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에 이르고 말았어. 게다가 미국에서는 네가 제일 잘 팔린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잖아. 결국 플래그십 라인이지만 보급형이라 여기는 사람들의 그 인식이 조금씩 내 머릿속을 갉아 먹기 시작했지. 무선 충전 패드에서 쉬익 쉬익 배터리를 먹고 있던 너를 물끄러미 바라 보았어. 그냥 먹는 모습이 어느 날부터 처먹는 걸로 보이면 정이 떨어진 거라던데. 권태기였을까? 우리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런 와중에 다른 스마트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 갤럭시 S10e였지. 작고, 가볍고, 슬림하고, 게다가 지문 인식 버튼까지 탑재된 사실에 흔들리고 말았어. 너에게 없던 모든 걸 갖추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사실 이건 너에게 처음 고백하는 건데 갤럭시 S10 자급제폰 예약 기간에 80만원 가량을 결제하기도 했었어.

하지만 다시 돌아보니 내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이제 와서 잘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이미 다 같이 함께 지내던 맥북, 애플워치, 아이패드까지 들인 지금 이 시점에서 다른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게 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저 신제품이라는 사실에 이끌려 잠시 한눈을 팔았던 게 아닐까? 너와 다른 애플 기기들 사이의 찰떡 같은 연동성, 그리고 앱스토어에서 결제했던 수많은 앱들… 이렇게 끝내기엔 소중한 추억이 너무도 많더라. 미안해. 내가 잠시 미쳤었나봐. 나를 용서해줄 수 있겠니?

5. 그래도 다시 너를 사랑할 거야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
실수인지도 몰라.
어설픈 나의 말이 촌스럽고 못 미더워도
그냥 하는 말이 아냐.
두 번 다시이이이 이런 일 없을 거야아아아.
매일 아침이 되면 널 품에 안고 사랑한다 말할게헤에
널 사랑해…

조금 무거워도, 카메라가 하나 밖에 없어도, 해상도가 별로라고 사람들이 욕해도, 보급형이라 놀려도, iOS와 macOS의 늪에 빠져버린 나는 이제 너를 떠날 수 없을 것 같아. 올해 나올 아이폰이 혹시 더 많이 변화되어 매력적인 모습이라 해도 나는 너에게 최선을 다할게 텐알아. 나의 최애 애플 기기로 있어줘서 고마워.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지. 우리 오래 오래 함께 하자.

음... 니가, 아무리 지금 날 좋아한다 그래도... 그건 지금 뿐인지도 몰라. 왜냐하면, 그건... 말이야...
박세환
여러분의 잔고를 보호하거나 혹은 바닥낼 자신으로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