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계속 블루투스 키보드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던 차였다. 프리랜서 작가의 입장인만큼 외부에서 이동 중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나 이메일을 작성할 일들이 많다. 휴대폰으로 모든 것이 가능했지만 모바일 키패드로 업무상 메일을 쓰기에는 오탈자가 많았고 아이디어를 적기에는 손가락이 머리 회전보다 느렸다. 그래서 아직도 밖에서는 수첩에 펜으로 끄적이는 게 더 편할 정도다. 결국에는 나중에 내용을 다시 보고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옮겨써야하는 번거로움이 따라오게 된다.

그래서 무작정 써 봤다. 씽크패드도 처음이고, 블루투스 키보드도 처음이다. 키보드 문외한인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매끄러운 맥북 키감이 그저 최고였다. (씽크패드 자체도 이번에 처음 들어봤…)

지나치게 투박한 외모에 솔직히 기대도 감흥도 없었다. 그랬는데, 심드렁하게 손을 갖다 댄 순간 뭣도 모르는 나도 뭔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이거 이상하다. 손끝마다 찰뜨렁찰뜨렁 붙는 것이 키를 칠 때 느껴지는 저항감에 나도 모르게 쾌감이 온다.

큰일이다. 여태 칼각 잡힌 정장을 쫙 빼입고 부드러운 매너가 몸에 밴 사람이 최고인 줄 알았건만 이상하게 내가 하는 말마다 솔직하게 반응하고 어딘가 되바라진 상대에게 묘하게 계속 눈길이 가는 거다.

터치 화면도 키보드도 키패드도 뭐든 매끈한 것에만 익숙했던 손끝이 정직한 키보드 반응에 격한 자극이 온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을까.

한창 키감을 즐기다 보면 계속 묘하게 거슬리는 것이 트랙포인트(a.k.a. 빨콩)다. 인중에 뾰루지마냥 정 중앙에 떡하니 박혀서 시선을 지나칠 수 없는 강렬한 빨간색으로. ‘검빨’이라니. 솔직히 너무 유치하다고 생각했을 법도 한데 키감을 맛보고 나니 이제 그조차 개성 있어 보인다. (몹쓸 태세 전환)

맥북 터치패드가 익숙한 입장에서는 솔직히 컨트롤하기가 처음에는 그렇게 편하진 않았다. (처음엔 이게 클릭도 되는 줄 알고 열심히 눌러봤다.) 계속 커서를 움직여가며 사용해보니 왜 하필 ‘거기’에 위치해있는지 알겠더라. 손목을 움직이지 않고도 검지 하나로 화면을 구석구석 누볐다. 마우스, 터치패드, 펜슬과는 또 다른 첫 경험이었다. 며칠 썼다고 검지가 맥북 키보드에서도 그 빨콩이 있던 자리를 더듬는 걸 보면 확실히 이 빨간 콩알은 중독성이 있다.

가장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이 빨콩이 와콤 태블릿과 맥북을 사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절대적인 매력이라고 하긴 힘들 것 같다. 포토샵을 쓰기 위해 어차피 다양한 단축기를 눌러대며 손을 바삐 움직여야 하기에 그래픽 작업을 하면서의 빨콩은 크게 쓸모가 많은 녀석은 아니다. 다만 글을 주로 쓰는 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밖에 이동하면서는 보통 아이디어 정리 혹은 이메일 작성 등을 주로 하기 때문에 그 때의 빨콩은 태블릿 펜을 대신한 무기가 된다. 그래서 오피스 작업을 하는 사용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열매가 될 것이다.

모찌모찌한 키감과 치명적인 빨콩을 제외하고도 마음에 드는 것은 블루투스 기능과 멀티페어링이다. 휴대폰은 갤럭시를 쓰고 컴퓨터는 맥북을 사용하기에 모든 운영체제를 지원하는 게 필수였고, 최대 3대의 기기까지 동시에 연결이 가능해 키보드 하나로 딜레이 없이 바로 기기 전환해서 사용한다는 점이 신문물을 영접한 듯한 센세이션이었다. (블루투스 키보드 초보자가 겪는 충격이라 봐 주시길…)

사실 외부로 가지고 다닐 것을 고려했을 때 가장 신경쓰이는 것은 크기와 무게다. 울트라나브는 터치패드 대신 빨콩이 박혀서 크기는 작아지고 두께감이 있는데도 굉장히 가볍다. 물론 시중에는 더 작고 (심지어 접히거나 돌돌 말리거나) 가벼운 블루투스 키보드가 많이 나와있지만, 수갑 찬 듯이 양손을 딱 붙이고 좀스러운 모양새로 타자를 치느니 면적이 여유 있는 키보드가 낫다는 게 두툼한(!) 손을 가진 1인의 개인적인 의견이다. 무엇보다 펜으로 급하게 끄적이던 수첩 대신 들고다닌다고 생각하니, 마음부터 가벼워진다.

키보드에 바라야 할 부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찹쌀떡 같은 키감 하나 때문에라도 그걸 더 느끼고(!) 싶어서 괜히 더 뭔가를 쓰려고 하고, 별것 아닌 걸 쓰는데도 휴대폰에 연결해서 굳이 사용하게 되는 걸 보면 어쨌거나 이것만으로도 순기능을 하는 게 아닐까.

역시 이래서 사람이고 물건이고 첫인상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거다. 하마터면 순진한(naive) 척 하는 외모 뒤에 박힌 치명적인 매력을 모를 뻔했다. (문득 잔망 떠는 검빨 요정이 떠오르는 건 나 뿐인가.)

총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