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북 쓰려면 원래 이렇게 돈이 많이 드나?

윈도우 사용 경력 20년인 제가, 근래에 업무용 랩탑으로 맥북을 들였습니다. 맥 첫 경험이라 할 수 있죠. 그런데 맥 OS로 거주지를 완전히 옮기고 나서 가장 힘든 부분이 뭔지 아십니까? 연말정산이나 공공기관 사이트 접속의 애로사항 같은 건 당연하고요(!), 바로 추가 액세서리를 세팅하기 위한 추가금입니다. USB-C 허브 사고, 휴대용 충전 어댑터도 사고, 파우치도 사고, 가방도 사고, 마우스도 사고, 키보드도 사고, 아니 왜 이렇게 사야 할 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오는지 모르겠단 말이죠. 그러면서도 그것들을 정말 하나씩 갖춰가고 있는 제 자신의 모습… 지름신 이 새X…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찾아본 물건은 키보드였습니다. 책상에서 일을 제대로 하려면, 랩탑은 거치대에 쓱 세워 올려두고 별도의 키보드를 하나 딱 놓는 게 정석이죠. 키보드는 타이핑을 많이 하는 제 업무의 특성상 매 순간 손에 닿는 물건이라 이것저것 사용해봤는데 이상하게 마음에 꼭 드는 제품이 없었습니다. 큰 욕심을 부린 것도 아닌데. 이왕이면 무선에, 기계식 스위치를 가졌고 가격도 저렴한 녀석을 찾고 있었을 뿐인데. 욕망의 덩어리 그런 와중에 키크론 K1 (Keychron K1)이라는 키보드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올라온 걸 보자마자 외쳤습니다. 심봤다! 심이야! 맥OS에 정확히 호환되면서 블루투스 무선 연결도 지원하는 기계식 키보드였죠. 영문 각인 디자인도 멋지고요. 바로 60달러를 던져주고 두 달을 기다려 제품을 받았습니다.

11만9천원짜리 애플 매직 키보드와 함께
4만원짜리 비프렌드 맥용 키보드와 함께

넌 너무 멋져 남자가 봐도 반하겠어

87키 텐키리스의 컴팩트한 부피가 눈에 먼저 들어옵니다. 레이아웃 폭은 애플 매직 키보드와는 거의 유사하고, 풀사이즈 서드파티 키보드에 비하면 아주 살짝 더 좁습니다. 특히 방향키 블록 사이의 거리가 좁은데, 이 부분은 약간 적응이 필요했습니다.

무광 블랙의 중후함 속에서 부드럽게 숨쉬는 이 무지갯빛 LED를 보세요. 혼자 있을 때는 회색빛으로 얌전히 있다가 키를 누르는 순간 별 빛 이 내린다 샤라랄라랄랄라… 발광 모드도 18개나 되니까 질릴 틈이 없습니다. 멍하니 키보드만 보고 있다가, 사무실에서 조냐고 편집장님께 혼날 뻔했어요. 지는 맨날 카페 가서 몇 시간씩 놀다 오면서 어쨌든 정말 예쁘지 않습니까? 참고로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불빛나는 신발과 번쩍이는 요요와 자전거용 플래시 등 빛나는 물건을 매우 좋아합니다. 혹자는 PC방도 아닌데 너무 요란한 거 아니냐고, 또는 불빛이 신경 쓰이지 않냐고 저를 타박하지만, 전혀요. 일을 할 때는 정확히 모니터에만 집중하고, 그 외에는 컬러풀한 키보드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뿌듯한 마음을 즐기곤 하죠.

멋진 영문 각인은 또 어떻고요. 역시 영어만 깔끔하게 딱 새겨진 키보드가 디자인적으로는 매우 훌륭한 것 같습니다. 한글 새겨진 건 대체로 못 생겨서 쓰기 싫던데,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윈도우와 맥OS 모두를 위해 준비된 여분의 키캡까지. 이 넓은 포용력.

손아 손아 푸르른 손아

청축 스위치가 들어갔는데도 이렇게 슬림하다니. 이 스위치는 무려 7.6mm에 불과한 높이를 자랑하는데, 수 년에 걸쳐 자체적으로 개발한 플랫형 청축 스위치라고 합니다. 눌러보면 청축 특유의 딸깍쨀깍 소리가 납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청축 키보드의 소리보다는 좀 더 귀엽고, 높은 톤의 사운드죠. ‘미~파’와 ‘솔~라’ 정도의 차이?

그나저나 핏줄 우뚝 솟은 제 손 멋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갑자기……?)

이 플랫한 청축 스위치는 볼 때마다 특이하고, 사용할수록 독특한 매력이 느껴집니다. 스위치가 낮고 키캡은 평평해서 타건감이 편안하거나 우수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특유의 쫄깃함이 있습니다. 타이핑이 참 재밌어집니다. 키크론은 타이핑 중독을 일으킵니다 멤브레인 키보드보다 훨씬 차진 건 물론이고, 5만원 내외의 저가형 기계식 키보드와는 또 다르게 가볍고 사뿐하며 경쾌합니다. 타건 속도가 빨라질 때 쫘라락거리며 손에 붙는 반발력의 맛이 정말 일품입니다. 그리고 귀차니즘으로 단련된 저의 라이프스타일에 잘 맞게 청소하기 쉬운 구조인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입으로 후후 불어주면 끝. 그런데…

스위치 자체의 물리적인 한계에서 느껴지는 낮은 압감이 좀 아쉬웠습니다. 특히, 키가 완전히 눌리기 전에 입력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꽤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뭐야 이거, 엄청나게 치명적인 단점이잖아 저가형 멤브레인에 익숙해졌던 제 손가락 탓인가 싶었을 정도로 난감했죠. 손가락 끝에 힘을 팍팍 주면서 정확하게 쿡쿡 누르는 적응의 시간이 좀 많이 필요합니다. 키압이 묵직한 청축이나 흑축을 자유자재로 잘 다뤄왔던 키보드 마스터라면 또 모르겠지만요.

포용력과 편의성 만큼은 최고 존엄

아쉬운 점은 잠시 뒤로 하고 좋은 점을 찾아봅니다. 저는 긍정의 사나이니까요. 사실 돈이 아까우니까 키크론 K1은 윈도우와 맥OS, 안드로이드와 iOS의 경계를 마구 넘나들며 극강의 편의성을 보여줍니다. 블루투스 버전은 3.0, 멀티 페어링은 3대까지 지원하며 USB-C 단자에 케이블을 연결해 유선으로 쓸 수도 있어요. 배터리는 2,000mAh의 대용량이 탑재됐는데 무선 연결에 LED를 켜고 사용하면 약 10시간 정도 갑니다. 출근할 때 무선으로 쓰고, 퇴근할 때 충전해 놓으면 든든합니다. 까먹고 그냥 퇴근했던 적이 더 많았지만

무게는 약 650g으로,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묵직한 바디의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매번 휴대하기엔 좀 부담스럽겠지만 기계식 키보드치고는 확실히 컴팩트한 편이라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것도 없죠. 마음 먹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다양한 기능키도 키보드 사용을 더 편리하게 만들어주는데요, 맥OS에서 자주 쓰게 되는 화면 밝기, 미션 컨트롤, 볼륨 조절 등의 미디어키도 애플 매직키보드와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어서 편합니다. 특히 우측 상단에 있는 3개의 특수한 기능키도 은근히 쏠쏠하죠. 화면 캡쳐와 시리 소환, 그리고 LED 모드 변경입니다. Shift + Command + 4로 손가락 꼬을 일은 없었네요 ㅎㅎ

초점은 나갔지만 LED 보케 표현이 잘 된 것 같아서 넣은 사진입니다. 정말 예쁘지 않습니까?

약간 모자라지만 착한 친구야

맥에 어영부영 호환되는 키보드는 많지만, 키크론 K1은 제가 지금껏 찾았던 제품 중에서 그나마 가장 이상향에 가까운 키보드였습니다. 맥OS용 기능키가 포함된 텐키리스 레이아웃에 기계식 스위치를 탑재하고 유선과 무선 연결을 자유 자재로 전환할 수 있는데다가 예쁜 색상의 LED가 반짝반짝 숨을 쉬는 녀석은 이게 유일했으니까요.

현재 가격은 70달러대로, 한창 크라우드 펀딩이 진행되던 몇 개월 전보다 약간 비싸지긴 했는데 손가락 단련한다고 생각하고 사용한다면 도전은 해 볼 만한 제품이라고 생각됩니다. 혹은 키보드 콜렉터용 아이템 아직 뭔가 찜찜하시다고요? 이쯤에서 여러분의 시선을 한 번 더 확 끌어당길 사진을 보여드리죠.

이건 더 멋있네…

얼핏 보면 레오폴드 키보드 같은 느낌도 풍기는 이 제품은 바로 K1의 후속 버전, K2입니다. 지금 현재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모금액을 쓸어 담고 있습니다. 키캡도 높고, 꽤 유명한 게이트론 기계식 스위치에, 이번에는 청축 외에 갈축과 적축 모델도 있으며, 배터리도 2배로 늘어났으니 덕분에 무게도 900g 정도로 늘어나긴 했습니다만 이 키보드야말로 K1의 치명적인 부분을 완벽히 해소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깁니다. 방향키 정도야 적응하면 될 것 같고요. 이것 참 이번에야말로 사야 할 것 같은데 아오 지름신 이 새X…

어쨌든 정리하자면 세계에서 가장 슬림한 무선 기계식 키보드를 갖고 싶다면 K1을, 더 확실한 타건감을 원한다면 K2를 들이십시오. 특히 저처럼 맥OS 위주로 사용할 무선 기계식 키보드를 찾고 있었다면 키크론의 제품은 그 종류가 무엇이든 간에 여러분의 목마름을 어느 정도 해소해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새로운 지름의 길이 그렇게 또 시작되는 거죠

역시 이런 사진에는 아이폰이 빼꼼 나와줘야 화룡점정(?)

FOR YOU
맥과 윈도우를 휙휙 넘나들기 좋은 가성비 키보드를 찾는다면!

NOT FOR YOU
무선 기계식 키보드의 최종판을 기대했다면…

총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