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서 시계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소품이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시간이라는 개념에 물성(物性)을 부여하는 소품으로, 천차만별의 모양, 브랜드에 맞춰 개인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소품으로 쓰인다. 관객은 영화 속 인물에 공감할수록 그 혹은 그녀의 가치관을 영화 밖에서도 느끼고 싶어 한다. 이 내밀한 욕망을 은근히 건드릴 수 있는 게 시계다.

‘시계는 소우주와 같다’는 이야기처럼, 영화 속 인물과 닮은 시계를 차고, 자신의 신화를 쓴다. 그리고 이 신화는 다시 시계에 들어가 우주를 이룬다. 그렇다면 매력적인 인물을 빼닮은 영화 속 시계는 무엇이 있을까?

닥터 스트레인지

– 예거 르쿨트르 마스터 울트라 씬 퍼페츄얼(Jeager-LeCoultre Master Ultra Thin Perpetual

지난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2018)에서 엔드 게임(End Game)을 위한 최후의 한 수를 둔 닥터 스트레인지. 우주적 차원을 넘나드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기원을 그린 <닥터 스트레인지>(2016)에서는 잘 나가던 의사인 스티븐 빈센트 스트레인지가 마법사가 되는 과정을 그린다.

사고로 양손을 크게 다친 스트레인지는 온갖 돈을 들여 손을 고치려고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모든 재산을 잃은 스트레인지는 마지막 희망으로 에인션트 원을 찾아가 제자가 된다. 개인의 영달과 마법사의 소명 사이에서 고뇌하나 결국 소서러 슈프림의 길을 택하는 스트레인지. 그가 에인션트 원을 만나기 직전, 거지꼴이었음에도 마지막까지 들고 있는 시계는 사랑하는 여성인 크리스틴이 준 예거 르쿨트르의 ‘마스터 울트라 씬 퍼페추얼’이다.

예거 르쿨트르 마스터 울트라 씬 퍼페추얼에는 자동 무브먼트인 예거 르쿨트르 칼리버 868 무브를 탑재했으며, 울트라 씬이라는 이름처럼 9.2mm라는 얇은 디자인을 채택해 세련미를 더했다. 월, 평년, 윤년을 기계식으로 계산해 날짜를 매월 바꿔주지 않아도 되는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을 탑재한 것도 특징. 전자식으로는 쉽게 표기할 수 있으나, 이를 태엽의 움직임만으로 이뤄냈다는 데서 기술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고급시계의 기술력을 꼽는 세 가지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이 퍼페추얼 캘린더다.

모델에 따라 다르지만, 가격이 2천5백만원대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과연 2천5백만원에 이 표현을 쓰는 게 적절한가 싶지만 합리적인 가격이다.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을 지원하면서 이 정도의 가격을 이뤄낼 수 있는 것은 무브먼트까지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큰 규모의 생산체계를 갖춘 예거 르쿨트르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셔츠 안에 날렵하게 들어가는 세련된 드레스 워치로 제격이다.

인터스텔라

– 해밀턴 카키 에비에이션 파일럿 데이 데이트 오토(Hamilton Khaki Aviation Pilot Day Date Auto)
– 해밀턴 카키 필드 머피 오토(Hamilton Khaki Field Murph auto)

우주 공간을 인상적으로 그려내면서 동시에 인물의 서사에 집중해 큰 인기를 끌었던 <인터스텔라>(2014)에도 인상적인 두 개의 시계가 나온다. 하나는 쿠퍼(매튜 맥커너히)가 차고 있던 시계, 그리고 다른 하나는 쿠퍼가 머피(제시카 차스테인)에게 준 시계다. 이 두 시계는 인터스텔라 제작진이 해밀턴에 직접 요청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여태까지 ‘인터스텔라 시계’를 말하면 쿠퍼가 찬 해밀턴 카키 에비에이션 파일럿 데이 데이트 오토를 의미했다. ETA 2834-2 베이스의 칼리버 H-40 무브먼트를 채택했으며, 42mm의 큰 페이스에 스틸 스트랩이 매력적인 모델이다. 가격은 128만원.

극 중 머피가 차고 있는 모델은 구할 수 없었는데, 이는 영화를 위해 특수 제작한 커스터마이징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 개봉 후 5년이 지나 해밀턴은 이 모델을 정식 제품으로 복각, 판매를 시작했다. 이름은 해밀턴 카키 필드 머피.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자, 인터스텔라를 항목으로 올린 이유기도 하다. 영화에 나오는 요소를 충실히 복각한 이 시계는 칼리버 H-10 무브먼트를 채택했으며, 초침 핸드에 있는 모스부호로 ‘유레카(EUREKA)’라는 문구를 적어놓았다는 특징이 있다. 파일럿 워치 특유의 단단함과 송아지 가죽 스트랩의 질감이 살아있다. 데일리 워치로 손색없다. 가격은 125만원.

퍼스트맨

–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Omega Speedmaster Professional)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을 그린 <퍼스트맨>(2018)에서도 시계가 등장한다. 퍼스트맨은 사실을 바탕으로 했기에 등장하는 소품도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인간적인 고뇌가 느껴지는 닐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이 극 중에 찬 시계는 오메가(OMEGA)의 시계.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이다.

퍼스트맨에는 몇 종류의 오메가 시계가 등장하지만, 가장 유명한 ‘문워치’만 보자. 오메가는 1965년부터 나사(NASA)의 유인 우주 비행 프로그램에 시계를 공급한다. 1963년 나사는 정확한 용도는 밝히지 않은채 시계 브랜드에 연락했고, 여기서 응답한 브랜드 중 나사의 혹독한 테스트를 통과해 채택된 시계가 바로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였다. 결국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는 1969년 아폴로 11호를 통해 달에 도달한 시계, 최초의 ‘문 워치’가 된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문워치 프로페셔널 크로노그래프는 유서 깊은 수동 와인딩 무브먼트인 오메가 칼리버 1863 무브먼트를 탑재했다. 충격과 긁힘에 강한 사파이어 크리스탈, 30분 혹은 12시간 카운터, 중앙 크로노그래프 핸드가 특징이다. 크로노그래프 또한 고급 시계의 기술력을 꼽는 요소 중 하나. 기본 나토(NATO) 스트랩이 아닌 우주 비행사용 스트랩으로 교체하면 좀 더 실용적인 느낌이 더해진다. 기념비적인 모델답게 전용 문워치 기프트 박스도 있다. 착용이 아닌, 수집의 용도로도 매력적이다. 그리고 최초의 문워치로서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그밖에 매력적인 아이템들

크래프츠 클립은 프랑스 가죽을 이용해 고급스럽게, 그리고 고집스럽게 제품을 만든다. 애플워치에 꼭 어울리는 밴드 또한 그렇다. 애플워치의 크로노그래프 페이스에 바레니아 골드 브라운 밴드를 착용한다면, 멋스럽게 에이징되며 고급 시계 못지 않은 매력을 자랑할 것이다.

정장에 반드시 드레스 워치를 착용해야 한다는 상식은 깨진 지 오래다. 정장에 스포츠 워치라는 과감한 선택도 색다른 매력을 발산할 수 있다. 가민의 인스팅트(Instinct)는 스포츠 워치의 매력적인 디자인과 스포츠 워치 이상의 강력한 기능을 갖춘 다목적 스마트 워치다. 일반 시계와 스마트 워치의 경계 위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았다.

캐릭터를 담은 시계, 시계를 닮은 캐릭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