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콘솔 게임에 입문했다. 운이 좋았다. ‘PS4 맘카페 에디션(무턱대고 질렀다가 아내의 용서를 받지 못한 이들이 슬픔을 머금고 중고시장에 내놓은 제품)’을 싼값에 구했으니까.

처음엔 가볍게 즐길 생각이었다. 모니터도 집에 굴러다니는 24인치짜리 FHD 제품을 붙여 썼다. 이때까지만 해도 충분히 만족할 것으로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남자의 디스플레이 욕심은 끝이 없다 했나. 게임을 하면 할수록 디스플레이 뽐뿌가 심해졌다.

모니터를 찾아보니 엄두가 안 났다. 4K UHD에 HDR(High Dynamic Range)까지 갖춘 모니터의 가격은 말 안 해도 알 거다. 정말 가볍게 즐길 생각이었는데 이러다가 게임 하나 하는 데 100만원은 쏟아붓겠더라. 고해상도 디스플레이는 탐나고, 최소한만 지출하고 싶고… 해답 없는 이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구세주를 만났으니, 벤큐 EL2870U 모니터다.

가성비 TOP급 4K・HDR 모니터

마침내 내게도 4K・HDR 모니터가 생겼다.

EL2870U는 뭐가 그렇게 좋을까. 두말할 것 없이 가격부터 언급하는 게 좋겠다. EL2870U는 40만원 초반대다. 4K(3840×2160) 화면을 뽑아내고, HDR(High Dynamic Range) 기능까지 갖춘 모니터. 그런데 이 가격이다. 물론 더 저렴한 중소기업 제품도 있다. 4K・HDR 모니터 중 가장 싼 제품이라고는 할 순 없다.

하지만 EL2870U는 값싼 녀석들에게 없는 기능을 한두 개씩 더 가졌다. 그러면서 가격도 적당하다. 그동안의 벤큐 모니터를 생각한다면 꽤 잘 뽑힌 가성비 모니터라 부를 만하다.

영상부터 게임까지 두루두루

EL2870U에는 4K 해상도, HDR, 10비트 패널, 1ms 반응 속도 등 콘텐츠 소비에 적합한 요소가 빼곡하게 담겼다. 어떤 종류의 콘텐츠든 두루두루 즐기기에 아주 적합하다. 영상 감상부터 게이밍까지 모두 아우르려는 벤큐의 의도가 엿보인다.

– 28인치 4K UHD

높은 픽셀 밀도 덕분에 해상력과 질감 표현이 우수하다.

EL2870U는 28(27.9)인치 모니터다. 사실 이 정도 크기에서 4K 해상도의 매력과 웅장함을 느끼긴 쉽지 않다. ‘4K는 32인치부터’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큰 화면에 적합하다는 거다. 28인치에서 드라마틱한 효과를 체감할 수 있다면 아마 진정한 황금눈의 소유자일 터.

그렇다고 4K가 의미 없는 건 아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 했다. PS4 프로의 최대 해상도를 지원하는 걸 마다할 이유가 없다. 미묘하긴 해도 Full HD(FHD) 모니터와의 차이는 분명 있다. EL2870U는 해상력, 질감 등에서 조금 더 또렷한 표현을 보여준다. 인치당 158픽셀로 픽셀 밀도가 높은 덕분이다.

콘텐츠 감상 측면에서도 4K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머지않은 시일에 4K 콘텐츠는 표준으로 자리 잡을 거다. FHD 콘텐츠를 완전히 대체할 것으로 본다. 이를 위해서라도 4K는 필수 중 필수다. 모니터 1~2년 쓰고 말 거 아니지 않나.

– 생동감 불어넣는 HDR

HDR 적용 전(좌) 후(우). 색감과 선명도 차이가 뚜렷하다.

극적인 화질 개선은 오히려 HDR 기능에서 맛볼 수 있다. 혹시나 HDR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간략히 언급한다. 이는 ‘가장 어두운 곳부터 가장 밝은 곳까지의 표현 범위’가 기존 SDR보다 넓은 것을 말한다. 인간이 눈으로 보는 것과 유사한 범위로 빛과 어둠을 표현해 영상을 좀 더 생기 넘치게 해준다.

EL2870U는 전면부 버튼 한 번으로 HDR 기능을 켜고 끌 수 있어 편하다. HDR을 켜면 곧바로 눈에 띄는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빛의 표현부터 달라진다. 탁하게 필터가 낀 듯한 화면이 사라지고, 색감이 도드라진다. 빛과 명암 표현에서 현실감이 느껴진다. 여기에 100% 수준의 sRBG 색 재현율, 10억 개 이상의 색상을 구현하는 10비트(8비트+FRC) 패널이 화면을 더욱 풍성하게 채워준다. FHD와 4K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라도 HDR만큼은 충분히 느끼고 만족할 만하다.

– 액션 마니아를 위한 1ms 반응 속도

1ms 반응 속도 덕분에 화면 흔들림이 적고 잔상이 덜 남는다.

EL2870U는 게이밍 모니터로 취급되기도 한다. 1ms 반응 속도 덕분이다. 반응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화면의 흔들림이 적고, 잔상이 덜 남는다. 예컨대 액션 게임이나 액션 영화같이 움직임이 역동적인 화면을 더욱 또렷하고 매끄럽게 표현한다는 거다. 이는 빠른 조준, 정확한 사격이 필수인 FPS 게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EL2870U는 게이밍 모니터라는 별칭답게 격렬한 액션 씬에서도 끊김 없이 또렷한 화면을 내보낸다. 물론 기존 모니터와 비교해 놀라울 정도는 아니다. 1ms와 4~5ms의 차이를 누구나 체감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이건 황금눈의 소유자만이 완벽히 구별할 수 있다. 그래도 이왕이면 빠른 반응 속도까지 갖추는 게 좋겠지. 적어도 반응 속도 느려서 패배했다는 생각은 안 할 테니까.

– 시네마 HDR부터 슈퍼 레졸루션까지

HDR을 켰을 때 고급 픽쳐 선택지. HDR을 끄면 선택지가 더욱 넓어진다.

EL2870U의 또 다른 장점은 HDR, 시네마 HDR, 게임, 사진 등 다양한 옵션을 적용해 원하는 느낌의 화면을 연출할 수 있다는 거다. 고급 픽쳐 메뉴 속에 다채로운 모드가 준비되어 있다. 핫키(Hot Key) 버튼을 통해 고급 픽쳐로 바로 진입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AMD 그래픽 카드를 쓴다면 AMD FreeSync도 사용할 수 있다. 그래픽 카드와 모니터 출력의 싱크를 맞추어 화면 찢어짐 현상을 막아주는 기능이다. 쾌적한 게이밍을 돕는 부가 기능이라 할 수 있겠다.

슈퍼 레졸루션으로 샤픈(Sharpen) 효과를 넣기 전(좌), 후(우).

여러 기능 중 가장 인상적인 건 슈퍼 레졸루션. 선명도를 향상하는 기능이다. 쉽게 말해 샤픈(Sharpen)로 효과로 보면 된다. 이 기능을 켜면 화소 밀도가 증가해 화면이 눈에 띄게 또렷해진다. 강도는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게임은 물론 저해상도 영상의 선명도를 보정하는 데도 활용 가능하다. 단, 모든 샤픈 효과가 그렇듯 과도하게 쓰면 눈에 피로가 오긴 한다.

B.I+로 눈에도 편안하게

전면부 버튼으로 HDR과 B.I.+를 켜고 끌 수 있다.

EL2870U에는 시력 보호 기능도 알차게 담겼다. 벤큐의 대표 기능이라 할 수 있는 B.I.+가 대표적이다. 모니터가 주변 밝기를 감지해 색온도를 조절하는 기능이다. 애플의 트루톤 디스플레이(True Tone Display) 정도로 생각하면 쉽다. 주변 밝기뿐만 아니라 시간에 따라 색온도를 바꿀 수도 있다. ‘시간으로 설정하기’를 켜면 모니터 사용 시간이 길어질수록 따뜻한 색온도로 서서히 바뀐다. 이와 함께 과도한 노출을 잡아 눈의 피로를 덜어주기도 한다.

B.I+ 기능은 HDR처럼 전면부 버튼으로 켜고 끌 수 있다. 사실 B.I+를 켠다고 해서 그 효과를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다. 색온도가 천천히 변하기 때문이다. 대신 노출 보정은 체감할 수 있다. 영화나 게임 콘텐츠에서 과한 노출이 발생하면 밝기를 낮춰 눈에 부담을 덜어준다.

청색광을 줄여주는 Low Blue Light, 모니터의 미세한 깜빡임을 없애는 Flicker-Free 등 눈 건강을 지키는 기능 또한 포함되어 장시간 게임을 해도 눈의 피로가 덜하다.

군더더기 없는 라인

군더더기가 없다. 디자인 이야기는 이걸로 끝.

4K 해상도, HDR, 각종 부가 기능, 시력 보호 기능… 여러 장점 덕분에(?) 디자인 이야기가 뒤로 빠져버렸다. 솔직히 말해서 디자인부터 다룰 만큼 인상적인 건 없다. 군더더기 없는 모니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베젤리스 스타일도 아니다. 다소 두꺼운 베젤을 가졌다.

버튼과 단자 구성은 단출하다. 전면에는 HDR과 B.I.+ 기능을 켜고 끌 수 있는 버튼이 하나 붙었다. 밑면에는 메뉴 설정 버튼 4개가 달렸다. 단자는 후면에 배치됐다. HDMI 2.0 단자 2개, DP 1.4 단자 1개, 헤드폰 단자 1개가 전부다.

가성비 모니터, 그럼에도 남는 아쉬움

음질이 이렇게 처참할 거라면 스피커를 덜어내고 가격을 좀 더 낮추는 게 좋았겠다.

EL2870U는 장점을 많이 가진 모니터지만, 완벽한 모니터는 아니다. 아쉬움이 남는 몇 가지 지점이 있다. 가장 아쉬운 건 스피커다. 좌・우측 하단에 2W짜리 스피커 2개가 붙었는데, 품질이 떨어진다. 그냥 ‘소리가 나온다’ 수준. 깊이 없는 소리가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다.

28인치 화면, 4K 해상도로 인터넷 서핑할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업무용으로 쓰기에 썩 좋지 않다는 것도 단점. 28인치 화면에 4K 해상도다 보니 텍스트가 좁쌀 크기로 변한다. 해상도를 변경해서 쓰지 않는 이상, 이 화면으로 일한다는 건 다소 무리다.

밑에서 내려다 보면 거뭇거뭇하다. 항시 바른 자세로 게임을 해야 한다.

화질과 시야각 또한 사람에 따라 단점으로 여길 수 있겠다. 패널 탓이다. 보통 모니터 패널은 TN, VA, IPS가 많이 쓰인다. TN은 반응 속도가 빠른 반면 색감과 화질이 떨어진다. IPS는 반응 속도가 조금 느린 대신 화질과 시야각이 탁월하다. VA 역시 반응 속도가 느리지만, 명암비가 뛰어나다.

EL2870U에 들어간 건 TN 패널이다. TN 패널답게 반응 속도는 빠르지만, 화질과 시야각에서는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인다. 특히 아래에서 위로 쳐다볼 때는 시야각이 엉망이다. 화면이 거뭇거뭇하게 변해 콘텐츠 감상이 어렵다. 화질은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TN 패널 중에서는 제법 봐줄 만하다.

누구에게나 4K・HDR

군침만 흘렸던 4K・HDR을 내 것으로 만들어준 EL2870U 모니터.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완벽한 모니터는 아니었다. 1ms 반응 속도를 보이지만, 게임용이라 하기엔 60Hz 주사율이 아쉬웠다. 고해상도를 지원하지만, 영상 감상용이라 하기엔 TN 패널이 조금 아쉬웠다. 전반적으로 하나에 집중하지 않고 여기저기 발을 걸친 모양새였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자. 이는 게임이든, 영화든, 어떤 것에든 쓸 만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게임도 영상도 두루두루 즐기고 싶은 이들을 위한 제품이랄까. 그것도 4K・HDR의 생생한 화면으로. 거기에다 적당한 가격으로.

4K・HDR에 IPS 또는 VA 패널을 달고, 여기에 144Hz 주사율과 빠른 반응 속도까지 갖춘 제품들. 이런 모니터가 좋다는 건 다 안다. 문제는 100만원에 육박하는 가격 아니겠나.

아마도 EL2870U는 보급형 4K 모니터라는 데 의미가 있을 거다. ‘멀게만 느껴졌던’ 4K・HDR을 누구나 한 번쯤 고려해 볼 만한 수준으로 끌어 내렸으니까. 큰 투자 없이 4K・HDR 모니터에 입문하고자 한다면 EL2870U을 우선순위로 고려해 봐도 좋을 듯하다.

For You
– 가성비 좋은 4K・HDR 모니터를 찾는다면
– 게임, 영상 감상에 쓸 엔터테인먼트용 모니터를 원한다면

Not For You
– 100만원짜리 프리미엄 모니터를 쿨하게 지를 수 있다면

총점
이유혁
도전하는 사람들과 도전적인 아이템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