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식 시계와 사랑에 빠지는 건 그 메커니즘에 매혹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가장 기본적인 시계 메커니즘을 간소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크라운을 돌리거나 손목의 움직임으로 로터를 돌려 감긴 메인 스프링이 풀리며 생긴 힘을 레귤레이터가 일정한 간격으로 잘게 나눠 톱니바퀴에 전달해 초침과 분침, 시침을 움직여 시각을 표시하는 기계 장치. 몇 번을 고쳐 써봐도 이 요령부득의 문장이 지금 나의 최선이다. 글로만 시계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지금도 많은 워치메이커들이 보다 복잡하고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메커니즘을 개발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 중이다. 글이나 말로 풀어 설명하긴 어렵지만, 시계를 직접 손목에 차고 작동해보면 금세 이해할 수 있다. 아쉽게도 그런 기회는 흔치 않지만. 우리에겐 인터넷이 있다. 유튜브는 시계 애호가의 또 다른 놀이터 또는 광맥이다. 유튜브에서 발굴한, 가장 복잡하고 아름답고 독창적인 시계 메커니즘 7가지를 모았다.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웬만한 아파트 전셋값은 하는 시계들이라 굳이 가격은 표시하지 않았다.

 

우르베르크, UR-210

URWERK

우르베르크(Urwerk)는 새로운 방식으로 시각을 표시하는, 현재 가장 독창적인 시계를 만드는 독립 워치메이커다. 우르베르크를 대표하는 메커니즘을 새틀라이트(satellite) 컴플리케이션이라고 부르는데, 세 개의 숫자판이 회전하며 시와 분을 알린다. 도무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메커니즘. 일단 보면 안다.

 

태그호이어, 마이크로거더 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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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식 최초로 1/2000초를 측정할 수 있는 크로노그래프 시계.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한 가운데 크로노그래프 초침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회전한다. 3시 방향엔 1/100초를 측정하는 서브다이얼이 있는데, 그것도 정신 없이 돌아가기는 마찬가지. 머리카락보다 얇은 금속이 파르르 떨며 레귤레이터 역할을 하는데 일반 시계보다 3백배쯤 빨리 움직이는 속도를 감당하기 위해 크라운을 돌리는 모터 달린 기계가 따로 있을 정도다. (잘 보이진 않겠지만) 1/2000초에 한 바퀴 도는 크로노그래프 초침의 속도를 감상해보자.

 

리차드 밀, RM 19-2 투르비용 플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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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SIHH 2015에 등장한 리차드 밀 최초의 플라잉 투르비용 워치. 투르비용은 뭐고, 플라잉 투르비용은 또 뭔지 설명해야 할 것 천지지만 리차드 밀은 그 복잡한 기능을 모두 다이얼 위에서 목련 꽃 봉우리가 꽃잎을 펼쳤다 다시 오므리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사용했다. 시계 왼쪽 버튼을 누르면 화이트 골드로 만든 다섯 장이 꽃잎이 천천히 벌어지고, 보석으로 만든 꽃술과 투르비용의 모습이 드러난다.

 

루도빅 발루아르, 하프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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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메이커가 직접 브랜드를 창립, 소규모로 고급 시계를 주문 생산하는 브랜드를 인디펜던트 워치메이커라 한다. 스위스의 루도빅 발루아르도 그 중의 하나. 그의 대표작인 ‘하프 타임’은 얼핏 전통적으로 보이지만 매우 독창적인 방식으로 시각을 표시한다. 다이얼과 가장자리, 두 개의 원반이 회전하며 12시에 위치한 창에 로마 숫자로 튕기듯 시를 표시하는데, 영상을 봐야 안다. 하프 타임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알게 될 거다.

 

HYT, 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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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의 색깔로 현재의 시간을 표시하는 시계. 물시계라 할 수도 있겠다. 색깔이 든 염료와 투명한 액체의 비중 차이를 이용한 것. 12시 쪽 서브 다이얼이 분을 표시하고, 다이얼 둘레의 원형 튜브에 든 액체의 색으로 시를 알린다. 2011년 창업한 HYT는 역사와 전통이 무엇보다 중요한 고급 시계 시장에서 핵물리학자가 개발한 이 독특한 메커니즘으로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스켈레톤 시계처럼 내부 메커니즘을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낸 후속작 H2도 나왔다.

 

해리 윈스턴, 오퍼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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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독립 워치메이커와 협업, 매년 혁신적인 메커니즘의 한정판 시계를 선보인 해리 윈스턴 오퍼스 시리즈의 열두 번째 작품. 워낙 복잡해서 동영상을 보면서 설명을 함께 읽어야 할 거다. 시계 둘레 인덱스가 있는 곳에 각각 하나는 짧고 하나는 긴 총 24개의 은색 바(bar)가 있다. 은색 바가 회전, 파란색으로 변하며 시각을 알린다. 동영상이 시작할 때 시계는 7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용두를 뽑아 돌리면 가운데 분침이 돌아가는데 0~5분을 알리고, 분침이 다 돌아가면 가장자리의 긴 은색 바가 5분 단위로 순서대로 돌아간다. 시가 바뀌면 은색 판이 차례로 한 바퀴 돈다. 뭐, 일종의 세레모니 같은 거다. 그러니까 동영상 마지막엔 8시가 된 것. 시간을 보기도 불편하고 설명하기는 더 어렵다. 그래도 이런 시계는 세상에 이것뿐이다.

 

반클리프 아펠, 퐁 데 자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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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위해 기계식 시계 메커니즘을 서정적으로 재해석했다. 반원형 다리 위에서 여자가 우산으로 시를 알리고 남자는 등 뒤에 숨긴 장미로 분을 알린다. 여자는 12시간에 걸쳐 서서히 움직이고, 남자는 1시간에 한번 조급하게 다가섰다 물러선다. 그리고 12시 정각, 둘은 하루에 두 번 다리 한가운데에서 만나고 또 다시 멀어진다. ‘사랑의 다리’라는 이름의 시계.

 

얼리어답터의 시계 이야기 연재순서

1. 기계식 시계 입문을 위한 5개의 시계

2. 애플 워치가 두렵지 않은 쿼츠 시계들

3. 연약한 기계식 시계와 그 적들

4. 마이크로 브랜드 시계 베스트 5

5. 얼리어답터의 크리스마스 선물가이드 – 시계매니아들을 위한 선물

6. 2015 넥스트브랜드, ‘MB&F’ 

 

정규영
갤러리아 매거진 피처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