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 이어폰보다 무선 이어폰을 자주 쓰게 됐다. 음질이나 연결의 안정성이 보장되는 잘 나온 무선 제품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유선 이어폰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 손실되지 않은 음악, 그대로의 소리를 고스란히 듣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음악을 귀와 마음으로 모두 느끼려는 일종의 심적 안정감을 위한 거랄까.

가성비가 좋은 유선 이어폰이 근래 들어 아주 많아졌다. 그 시작은 아마 ‘디락’ 시리즈가 아니었나 싶다. 자체적으로 개발된 SF 드라이버의 성능이 워낙 좋았고 가격도 저렴해서 굉장한 이슈를 몰고왔던 제품이었으니. 그 뒤, SF 드라이버를 탑재한 제이디솔루션의 돌피니어(Dolphinear), 그리고 웨이블릿디자인의 오퍼스2(Op.2) 등 여러 국내 업체의 가성비 돋보이는 이어폰이 출시되며 청자들에게 행복한 고민거리를 안겨줬다. 그 중 오퍼스2는 3사 개발진의 협업을 통해 탄생했던 제품인데, 실제 사용자도 함께 개발에 참여해 완성도를 높인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했다. 그리고 2019년 1월, 웨이블릿디자인이 오퍼스2의 새로운 후속 제품 2종류인 OP.2C와 OP.2W를 출시했다.

 

OP.2C는 Crystal Voice를 뜻하고, OP.2W는 Warm Bass를 뜻한다. 이 둘의 차이는 음색 튜닝에 있다. 그 외에는 패키지와 구성품부터 디자인, 4만5천원의 가격까지 거의 모든 게 서로 같다. 마치 일란성 쌍둥이 같다. 

 

Y 분기점에 각각 새겨진 이름이 아니었다면 구분할 수 없었을 것이다. 패키지 구성품은 이어폰 본체와 실리콘 팁 4쌍, 얇은 파우치, 그리고 케이블을 정리할 때 사용하기 좋은 벨크로 타이가 있다. 매우 단출하다.

 

리모컨은 마이크와 버튼 하나가 탑재된 건 전작과 비슷하나 디자인이 조금 바뀌었다. 훨씬 고급스러운 느낌이 든다. 케이블은 전작의 더블 트위스트 방식과는 다르게, 세레이션 케이블을 채택했다. 탄성이 높고 줄이 잘 엉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만져보면 약간 뻣뻣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길이는 1.2m. 

 

메탈 재질의 하우징 디자인은 전작 오퍼스2에서 변화가 없다. 솔직히 고급스럽다는 느낌은 없다. 

 

착용감은 매우 우수하다. 하우징이 가로로 긴 형태라서 귀 바깥으로 약간 튀어나와 보이긴 하지만. 이번 신제품에는 하우징에 통기를 위한 작은 홀이 새로 생겨, 귀에 꽂을 때 진동판이 구겨지는 소리가 나지 않고 압력이 높지 않아 편안하다. 오래 청취해도 압박감이 적으며 안정감 있다. 그러나 케이블이 다소 뻣뻣해서 터치 노이즈가 존재하고, 걸어 다니며 들을 때 거슬릴 수 있다. 터치 노이즈를 최소화하기 위한 작은 클립이라도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었다면 하는 작은 아쉬움이 있었다. 여차하면 아예 오버이어 형태로 착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OP.2C와 OP.2W의 기본적인 음색 성향은 SF 드라이버를 탑재한 이어폰들과 매우 흡사하다. 8mm의 다이내믹 드라이버가 탑재되었는데, 전체적으로 맑고 또렷한 음선, 어둡지 않고 적절하게 빛나는 해상력, 마스킹 현상을 거의 느낄 수 없는 준수한 표현력이 어우러져 있다. OP.2C와 OP.2W는 서로 비교해 보며 들을 때 사뭇 다른 음색을 느낄 수 있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2가지 버전으로 출시되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 있다. 

 

우선 OP.2C, Crystal Voice는 이름처럼 전반적으로 플랫한 음색에 약간의 투명성을 더한 느낌의 이어폰이다. 그렇다고 플랫한 성향의 제품들에서 두루 느껴지는 특유의 밍밍한 느낌은 아니다. 이전 모델인 오퍼스2를 들었을 때는 그런 느낌이 있었는데, OP.2C는 사뭇 다르다. 좀 더 유연하게 생각할 줄 아는 반듯한 모범생 같달까? 

음악의 재미를 위한 인위적인 강조점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빠른 응답 속도로 깔끔한 표현력을 보여준다. 저음역은 매우 타이트하고, 중음역과 고음역은 약간 강조되었으나 완만하고 부드럽게 딱 떨어진다. 음역대 간의 공평성을 부드럽게 유지해 오로지 소리 자체를 매우 깔끔하게 표현하려는 듯 노력하는 느낌이다. 

처음 들으면 심심하고 무던한 듯하나, 음량을 키우면 훨씬 더 드라마틱하게 다가오는 음질을 느낄 수 있으며 들을수록 그 청명함과 탄탄함이 인상적이다. 마치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느껴지는 정갈한 쌀밥 같다. 데파페페(Depapepe)의 청량감 있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곡을 듣고 있자니 속옷을 갈아입지 않을 수가 없었다.

 

OP.2C가 모범생 같았다면, OP.2W, Warm Bass는 좀 더 적극적으로 흥을 즐기는 분위기 메이커 같다. 전체적인 밸런스가 균형적이고 악기들의 분리도가 높은 가운데, 저음의 양이 살짝 더 많이 나온다. 그러나 결코 넘치는 법이 없다. 극저음의 표현도 보일 듯 말 듯, 넘치거나 지저분하지 않고 준수하다. 중고음역은 약간씩 강조되어 있어 또렷하게 윤기를 보여준다. 특히 고음역은 날카로워지지 않게 극도로 조심하면서 한껏 빛을 발하는 듯 찰랑거리는 모습이 눈부시다. 볼륨이 작은 상태거나 야외에서 들을 때도 다이내믹한 음색을 즐기기에 좋은 튜닝이다.

LG V20에 저항 잭을 달아 전문가 모드를 발동시키고 EQ도 살짝만 먹여주면 거짓말 약간 보태서 웬만한 헤드폰으로 듣는 것 같은 음압과 공간감 그리고 쨍한 해상력에 감칠맛 나는 표현력으로 즐거워졌다. 특히 마룬5(Maroon 5)나 더 스크립트(The Script) 같은 팝 록 장르를 들으면 속옷을 여러 차례 갈아입어야 할 정도로 상쾌한 음질에 양념을 더한 재미를 한꺼번에 전해주는 녀석이었다. 

 

조금 다른 비교를 해보자면, 디락 시리즈와 매우 유사한 음색인데 전체적으로 OP.2 시리즈의 음선이 살짝 더 굵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OP.2C는 청아한 플랫 표현이 인상적이었던 디락플러스 MK2와 비슷하고, OP.2W는 약간 더 다이내믹한 강조점이 있는 디락 MK2 같은 성향이라 생각된다.

처음엔 양념이 살짝 발려진 OP.2W의 묵직상큼한 음색이 좋았는데, 어느 순간 담백한 소리를 내주는 OP.2C도 마음에 쏙 들어왔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OP.2C는 음악 본연 그대로의 담백함을 전해주는 듯했으니까. 둘 중 어느 것을 들을까, 행복한 고민이 이어진다. 

 

최근에 사용해왔던 각종 완전 무선 이어폰과 블루투스 헤드폰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나에게, 간만에 새로운 감동이 밀려왔다. OP.2C와 OP.2W, 두 이어폰은 나에게 외치고 있다. 음악과 음질 좋아하면서 왜 그렇게 편한 놈들이랑만 어울리냐고. 유선 이어폰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우리가 이렇게 음질이 좋은데! 라며…

머뭇머뭇, 차마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다. 고음질 플레이어를 손에 들고 다니고, Flac 파일을 거침 없이 사재끼던 그때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비록 이제는 무선 이어폰을 완전히 내려놓을 순 없지만, 음악으로 행복했었던 기억을 다시 느끼기 위해 OP.2C와 OP.2W를 가끔은 꺼내 보려 한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이 이어폰으로 여유롭게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유선 이어폰과 음질에 대한 끈을 아직 놓지 않았다면, 비상용 유선 이어폰 하나 갖추고 싶다면, 추천한다. 가격은 두 제품 모두 4만5천원.

 

장점
– 좋아하는 성향에 따라 고를 수 있는 2가지의 선택지
– 깨끗하고 풍성한 표현력
– 안정적인 착용감
– 저렴한 가격

단점
– 매우 단출한 패키지
– 터치 노이즈

총점
박세환
여러분의 잔고를 보호하거나 혹은 바닥낼 자신으로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