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적인 무대의 모습을 연상해보자. 뜨거운 환호성, 심장까지 파고드는 묵직한 사운드, 어두컴컴한 가운데 보랏빛으로 빛나는 아티스트의 실루엣. 그리고 뒤쪽 언저리에 가득 쌓인 커다란 앰프들, 가운데에 휘갈겨 쓰인 ‘Marshall’.
마샬 앰프는 보는 순간 마음 한구석에서 롹 소울이 꿈틀대게 한다. 지미 헨드릭스가 한껏 게인을 올려 굉음에 가까운 기타 사운드를 만들 때 썼다던 그 앰프, 마샬. 몇 년 전에는 블루투스 스피커로 재탄생해 카페나 소품샵의 인테리어 분위기를 한껏 힙하게 만들기도 했다. 최근에 그 마샬 스피커의 새로운 시리즈가 출시되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또다시 유혹하기 시작했다. 그 중 ‘마샬 스탠모어 2(Marshall Stanmore II)’는 큼지막한 크기만큼이나 꽤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스피커다.
35cm 남짓한 폭, 4.65kg의 묵직한 무게. 한 자리에 우직하게 앉아있기만 해도 온 구석을 채우는 존재감이 뿜어져 나온다. 배터리는 없다. 전원 케이블을 항상 연결해줘야 한다.
디자인은 지난 모델들과 미세하게 달라졌는데, 가장 큰 특징이라면 전면 그릴의 하단부에 ‘EST. 1962’라는 문구가 새겨진 황금색 라인이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예전 모델은 평범한 사각 프레임이 전부였다. 마샬이 탄생한 1962년, 그때부터 이어져 온 포스에 마음이 녹는 기분이다. 마샬 로고도 아웃라인 없이 깔끔하게 황금색으로 양각돼 있다. 촘촘하게 짜인 쫄깃한 그릴도 안정감 있다.
전원 노브는 탁탁 올리고 내리며 ON/OFF 되는 방식이 아니라, 게임패드 조이스틱같이 쫀쫀한 탄성을 가진 형태로 바뀌었다. 개인적으로는 전작의 방식이 왠지 더 아날로그같고 좋았는데… 그래도 나쁘진 않다. 전원을 넣는 순간 스위치 주변에 붉은빛이 발광하고 짤막한 일렉 기타 사운드가 좽좽 울리며 또다시 마음을 황홀하게 한다. 이건 뭐 노래를 듣기도 전에 이미 심장이 쿵덕쿵덕 난리도 아니다.
블루투스 5.0에 AptX 코덱을 지원하는 마샬 스탠모어 2.
무선 연결 외에 AUX, RCA 입력 단자를 통한 유선 연결도 지원한다. 턴테이블에 마샬 스탠모어 2를 RCA로 물려 들으면 감성 증폭이 다섯 배.
저기 왼쪽에 우퍼 홀도 보인다. 마샬 스탠모어 2에는 50W 5.25” 우퍼 1개와 15W 0.75” 트위터 2개가 탑재되어 있다. 더 상급 모델인 워번 2에는 우퍼와 트위터가 각 2개씩 들어있고, 그 반대로 액톤 2에는 4인치 우퍼 1개 뿐이다.
마샬 스피커의 생명과도 같은 아날로그 버튼 감성은 여전하다. 조작하면 붉은 LED가 부드럽게 점멸되고, 몇 초 후에는 스르륵 사라진다. 이거 어쩌면 좋지? 너무 멋지잖아.
마샬 스탠모어 2의 출력은 작은 방 하나쯤은 충분히 씹어 먹고, 넓은 거실 정도에 딱 어울릴 정도로 빵빵하다. 마당이 있다면 그곳에서 틀어놓고 즐겨도 전혀 문제가 없겠다. 사무실이나 백화점 매장같이 넓은 곳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정도. 방에서 틀어 놓는다면 볼륨을 올리기가 무서워질 것이다.
음색은 촉촉하고 살짝 둥그스름하게 흘러내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하이파이스러운 사운드로 대표되는 심심하고 담백한 음색은 아니며, 저음의 박력과 울림부터, 윤기 흐르는 목소리를 넘어 단단하게 솟는 고음역까지 맛깔나게 강조된 느낌이다. 여기에 베이스와 트레블을 따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음색을 조절하기 좋다.
화이트스네이크의 ‘Is This Love’를 틀었다. 80년대 특유의 리버브 가득한 드럼 소리를 기반으로 공간감을 깔끔하게 잘 살려낸다. 걸쭉한 데이빗 커버데일의 목소리 역시 중후하고 단단하게 잘 표현한다. 지미 헨드릭스의 블루지한 기타 사운드도 찰떡같이 표현하고, 뮤지크 소울차일드의 쫀득한 비트의 음악에는 훨씬 탄탄한 그루브를 실어주며, 아이유 님의 감성 발라드 소품곡 ‘나의 옛날이야기’에서의 나풀거리는 목소리에는 생동감을 더해준다. 우주 최강 걸그룹 러블리즈의 신나는 크리스마스 시즌 넘버, 세기의 댄스곡 ‘종소리’를 들어보면 한층 화사해진 베이스 사운드와 찬란하게 부서져 흩날리는 신스 사운드가 황홀하다. 한 마디로, 뭘 들어도 좋다. 이런 게 바로 음악이지. 음악뽕에 취한다. 캬……
스마트폰에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마샬 앱으로는 소소한 부가 기능도 활용할 수 있다. 5밴드 이퀄라이저 프리셋, LED 설정, 그리고 두 대의 마샬 스피커를 묶는 오디오 구성 설정 등. 인터페이스 디자인도 깔끔하고 멋지다.
스피커의 본질은 음질과 음색이지만, 가끔은 그런 사운드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시각적 감성에 취하게 만드는 녀석이 있다. 마샬 제품이 바로 그렇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고, 음악을 틀면 천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스탠모어 2의 가격은 56만원. 음질로만 따지자면 동급의 가격에 더 좋은 스피커가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나, 마샬 스탠모어 2는 다른 제품에서 느끼기 힘든 ‘감성’이 존재한다. 눈을 행복하게 하고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는 멋진 녀석이다. 좀 비싸긴 해도,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장점
– 실내를 압도하는 존재감, 보기만 해도 뿌듯해지는 디자인
– 블루투스, AUX, RCA 등 다양한 유무선 연결 지원
– 아날로그 감성을 한껏 자극하는 버튼
– 풍성하게 깔리는 듬직한 저음과 정직한 고음, 빵빵한 출력
– 부가 기능에 충실한 앱
단점
– 청아한 음색에는 0.2% 모자란 느낌
총점 |
8.0 |
음악의 천국을 다녀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