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매년 그렇듯 올해가 가기 전에 해야 할 것들이 있다. 거나하게 술 먹고 토하기, 남아있는 연차 몰아 쓰기, 내년 초에 바로 실행할 작심삼일 계획 세우기, 그리고 아이폰 배터리 갈기. 나도 3년 동안 고생한 아이폰 6s를 조금 더 혹사해 끝까지 굴려 보려고 한다. 단지 연말 기념이라서가 아니다. 애플이 아이폰 배터리를 저렴한 가격에 교체해주고 있는 중이라서다. 기간은 딱 2018년까지. 이제 꼭 보름 남았다. 왜? 이 모든 것은 1년 전 ‘배터리 게이트’ 때문이다.

배터리 게이트에 대처하는 애플의 자세

아이폰의 배터리가 오래 될수록 성능까지 같이 떨어져 버리는 바람에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애플 배터리 게이트. 오래 쓰면 느려지는 거겠지 뭐, 라는 생각을 기분 탓으로 돌려버리고 말았었는데, 그게 사실은 애플의 계획된 아이폰 노후화. 새로운 마진으로 신도들을 끌고 가기 위한 속 보이는 큰 그림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각종 크고 작은 이슈로 홍역을 치뤘던 애플이 이번에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스리슬쩍 넘어가나 싶었지만, 이번 배터리 게이트는 차원이 다른 배신감 때문인지 전 세계의 신도들이 들고일어났다. 결국 애플께서는 성명서까지 친히 내리시고 후속 대처 방안을 발표하시기에 이르렀다. 그 혀가 좀 길긴 했는데, 하여튼 내용인즉…

– 배터리 수명은 어차피 시간 지나면 줄어드니까 전원이 빨리 안 꺼지도록 느려지게 해서 너희들 오래 쓰라고 해준 건데, 불편했다면 그건 미안.
이거 만들었으니까 보고 배터리 공부를 좀 해뒀으면 해.
배터리 성능 상태 보고 저전력으로 구동할지 안 할지 나중에 고를 수 있는 메뉴를 설정에 업데이트해 줄게(iOS 11.3부터 적용).
아이폰 6 이상, 배터리 바꿔줄게. 원래 10만원은 줘야 되는데, 미안하니까 3만4천원만 받을게. 어때, 저렴하지?
– 참, 2018년까지만이야.
2019년부터는 다시 원래대로 받을 거야. 노치 모델 8만5천원, 6~8 시리즈와 SE가 5만9천원, 그 외 모델은 10만원이야.
– 그리고 그때부터는 돈 낸다고 다 바꿔주는 거 아니야. 배터리 성능 상태가 80% 이하일 때만 바꿔줄 수 있어.

애플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

나의 아이폰6s 배터리 성능은 80% 초반대로 쭉쭉 떨어지고 있었다. 최대한 오래 쓰다가 올해가 가기 전 싹 바꿔야지, 마음먹고 이제 대망의 12월. 애플 홈페이지에서 예약한 후 지점에 찾아가면 된단 말이지.

그런데 이거 왜 날짜랑 시간이 아무것도 안 뜨는 걸까? 알고 봤더니 왼쪽에 있는 매장 메뉴에 날짜와 시간이 떠야 하는데, 이건 예약을 할 수 없는 상태였던 거다. 이 시스템은 오전 10시부터 20분 간격으로 예약이 열리며, 일주일 치가 열린다. 물론 그 와중에 누군가가 취소한다면 틈이 생기긴 한다. 그게 언제일지 몰라서 그렇지.

하염없는 새로 고침에도 시간이 뜨지 않다가, 파란 글씨로 무언가 나타나길래 냅다 눌렀는데도 곧바로 종료. 이거 뭐야, 수강 신청인가?

애플스토어 방문

아무리 기다려도 예약 시간이 뜨질 않아 참을 수 없어서 애플스토어를 찾아갔다. 언제나 그렇듯, 득실득실한 사람들 사이로 애플스토어 직원들이 쿨한 척하면서 진땀을 흘리고 있다. 다들 나처럼 해가 바뀌기 전에 슥 해치워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배터리 교체를 하려는 사람이 많긴 많다. 예약을 안 했더니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몇 시간 단위는 기본일 듯하다. 심지어 제품을 구매하려는데도 줄을 서서 대기해야 하는 지경. 판타스틱하구나. 하긴, 11월에 이미 발 빠르게 교체 받았던 동료 직원의 말에 의하면 자신도 4시간이나 기다렸다가 겨우 받았다고 하니.

애플 공인 서비스센터 방문

시간이 많지 않다. 투바, 유베이스, 동부대우, 윌리스, 케이머그와 같은 애플 공인 서비스 센터가 있었지. 여기는 숨이 좀 트인다. 하지만 평일치고는 사람이 꽤 많다. 이미 내 앞에는 8명의 손님. 다들 연차라도 낸 걸까? 한 사람당 배터리 교체를 하기 위한 예상 시간, 최소 15분. 이대로라면 역시 2~3시간은 기본으로 깔고 가겠다. 인제 와서 휴가를 낼 수도 없고. 배터리 바꾸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던가? 포기하려던 찰나, 지인이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자기한테 여분의 배터리가 있단다. ……응?

노혼 배터리로 자가 수리

정말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고 했던가. 나와 같은 아이폰 6s에 사용하기 위해 알리 익스프레스에서 사놓았다는 대용량 노혼(Nohon) 배터리를 갖고 있던 나의 지인, 아니 은인. 3만원이라는 착한 가격에 아이폰 6s의 배터리를 2,200mAh의 거대한 용량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대륙… 아니 하늘이 주신 기회(정품 배터리 용량은 1,715mAh).

어렸을 때 과학상자를 갖고 놀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토익 시험을 치르기 위해 입장하는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드라이버를 손에 쥐었다. 장장 2시간에 걸친 사투 끝에 낡은 배터리를 해치우고 나서 나는 깨달았다. 아, 나는 금손이 아니라 똥손이었구나. 그래도 최대 용량 2,200mAh가 찍혀 있는 아이폰의 배터리 컨디션을 보고 있자니, 뿌듯함과 함께 공임의 중요성이 뼛속 깊이 스며드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모든 것이 순조롭게 끝난 듯했던 그다음 날, 화면 중앙부에 3D 터치가 먹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 마른 아이폰에 날벼락. 3D 터치는 자주 사용하진 않아도, 제어센터를 진입할 때 가래떡에 꿀 바르는듯한 사용성이 일품이었는데. 평소에 열 가지를 잘해도, 한 가지를 못 하면 실망감이 보통 때보다 열 배로 커지지 않던가. 나는 뭘 잘못했던 걸까. 이 허무함을 상쇄하기 위한 무언가가 간절해졌다.

그 간절함의 결과는 이렇다. 아이폰 XR 프로덕트 레드 128GB. 애플스토어의 플라스틱 백 포함, 106만100원짜리 대처 결과. 자기들이 잘못해놓고, 딱히 저렴하지도 않은 배터리 교체 비용으로 생색 내고 있는 애플에 대한 가장 통렬한 복수의 끝(…?).

그래 안녕 반가워…!

그러니까 아이폰 배터리 교체를 정리하자면…

1. 일시 : 2018년 12월 31일까지
2. 대상 : 아이폰 6 이상의 배터리(조건 없이 3만4천원에 교체)
3. 방법 : 애플 홈페이지의 고객 지원 메뉴 → 수리 옵션 선택하기 → 수리 요청 시작하기 → iPhone → 배터리 및 충전 → 배터리 교체 → 수리 받을 제품 가져가기 → 지점에 표시된 시간 클릭해서 예약 접수를 통해 날짜와 시간 클릭
4. 루트 별 장·단점

1) 가로수길 애플스토어
 • 장점 : 공인된 배터리로 안심하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애플스토어를 구경하면서 애플뽕을 채우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 단점 : 예약을 못 하면 언제 서비스가 시작되고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하루 월차를 내고 와야 할 지경.
2. 애플 공인 서비스센터
 • 장점 : 미어터지는 애플스토어보다는 노려봄 직하다. 그리고 애플 공인 수리점이다.
 • 단점 : 예약을 못 했다면 반차 정도는 고려해야 한다.
3. 자가 교체
 • 장점 : 성공 시 정품 배터리보다 더 큰 용량의 아이폰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의 손이 금손인지 아닌지 실험해 볼 수 있다.
 • 단점 : 아이폰 뚜껑을 따는 순간 애플 정식 서비스와 정식으로 자동 이별하게 된다. 노혼 배터리의 안정성과 성능의 후기에 대한 의견이 다소 엇갈린다. 실패 시 책임은 본인에게로 돌아온다.

5. 2019년부터 원복되는 배터리 교체 비용

• XS, XS Max, XR, X : 8만5천원
• SE, 6, 6+, 6s, 6s+, 7, 7+, 8, 8+ : 5만9천원
• 그 이전 제품은 모두 10만원

6. 기타
2019년부터는 배터리 성능 80% 미만 시에만 서비스 제공(설정 → 배터리 → 배터리 성능 상태 메뉴에서 확인)

5줄 요약

– 자기들이 논란을 만들어놓고 선심 쓰듯 교체 비용을 깎아주는 척하는 애플은 각성하라
– 수강 신청하는 마음으로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잘하자
– 현장 박치기를 하겠다면 인내심과 반차 쓸 각오를 준비하자
– 자가 수리를 하겠다면 금손의 도움을 꼭 받자
– 정 안 되면 새 아이폰을 사서 복수하자(?)

새 아이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