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윈도우보다 맥을 더 오래 쓰고 있는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블루투스 키보드’를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로지텍의 K811을 손에 꼽을 것이다. 맥OS를 위한 키보드 설계, 숫자키 없는 깔끔함. 백라이트 지원, 최대 3대의 기기까지 등록해, 전환할 수 있는 기능까지…

펜터그래프 방식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키감까지 더해, 애플에서 제공하는 매직 키보드 이상으로 좋아하는 키보드이자, 아직까지 책상 위에서 열심히 일하는 키보드다.

로지텍 크래프트(Craft) 키보드는 K811의 느낌을 충분히 살리면서도 크리에이티브 다이얼(Creative Dial)이라는 낯선 조작계를 채택한 제품이다. 기존의 단점은 보완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더했다는 크래프트 키보드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로지텍 크래프트 키보드의 특징

크래프트 키보드의 특징을 꼽아보자. 첫 번째, 크리에이티브 다이얼. 두 번째, 3대의 기기까지 등록해 전환할 수 있는 이지 스위치. 세 번째, 윈도우/맥OS, 블루투스/무선(2.4GHz) 연결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범용성이다.

크리에이티브 다이얼이라 부르는 이 다이얼 조작계는 크래프트 키보드 왼쪽 위에 있다. 이용자는 이 다이얼을 돌리고, 누르고, 누른 채로 돌리는 방식으로 조작할 수 있다. 다이얼이라는 방식이 컴퓨터 하드웨어에서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루프덱(Loupedeck) 같은 제품도 있었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서피스 다이얼(Surface Dial)을 선보이기도 했다.

앞선 루프덱은 강력한 작업을 할 수 있지만, 특정 프로그램(라이트룸)만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한계가 있었다면, 서피스 다이얼은 서피스 다이얼을 지원하는 기기(서피스 계열)에서만 쓸 수 있는 하드웨어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로지텍 크래프트 키보드는 키보드를 연결할 수 있고, 제공하는 옵션 프로그램을 설치할 수 있다면, 앞선 기기보다 비교적 제약 없는 범용성을 갖출 수 있다.

전용 옵션 프로그램으로 다이얼과 키를 설정할 수 있다. 로지텍에서 제공하는 프로파일이 있다면 ‘상황에 맞게 조절’과 같은 유동적인 옵션을 기대할 수 있지만, 이용자가 직접 프로파일을 만들어야 한다면 이런 유동성은 보기 힘들다. 프로그램이야 계속 추가되겠지만, 아직 바라는 부분을 시원하게 해결해줄 정도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진 않다.

두 번째는 이지 스위치. K811에서는 펑션 키(Function Key)에 할당했던 기기 조절 버튼은 크래프트 키보드에서 인서트(Insert) 위 스크롤 락(Scroll Lock) 부분으로 이동했다. 기기를 등록하는 방법도 간단하다. 1~3중 원하는 숫자의 키를 길게 누르고 있으면 LED가 점멸하며 등록할 수 있다. 기기 전환은 쓰는 도중에 각 숫자 키를 누르면 된다.

노트북 앞에 스마트폰도, 패드도 거치하고 있다면 쓰다가 그때그때 키보드를 바꿀 수 있다. 여러 대의 기기를 활용한다면 무척 매력적인 기능이 될 것이다. 덧붙여 로지텍 Flow도 지원하고 있으니 Flow 지원 마우스와 함께 쓴다면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뛰어난 호환성. 크래프트 키보드의 키를 보면 Alt, 그리고 윈도우 키 부분에 복잡한 글자가 적혀있다. opt alt | start, cmd | alt라 돼 있는데, 이는 맥OS에선 옵션(opt, alt), 커맨트(cmd)키로, 윈도우에선 시작(start), 알트(alt)키로 쓰임을 뜻한다.

기존 키보드를 쓸 때, 포기하거나, 키 배열에 맞춰 키캡을 뽑아서 바꿔 꽂아주거나, 아니면 딥 스위치(DIP Switch) 설정을 바꿔야만 했던 불편함이 씻은 듯 날아가는 느낌이다.

USB C 타입 케이블만 있으면 충전할 수 있고, 한번 충전하면 꽤 오래 쓸 수 있다. 한 번 완충하면 일주일정도 쓸 수 있다는 게 로지텍의 설명. 패키지 안에는 USB 형태의 유니파잉(Unifying) 수신기가 있어 블루투스로 쓰기 어렵다면 2.4GHz 무선으로 연결할 수도 있다.

다이얼의 의미와 키보드의 가치

로지텍 크래프트의 가격은 25만원 선. 펜터그래프를 채택한 일반 블루투스 키보드로는 심리적 저항선을 훌쩍 뛰어넘는 가격이다. 습관처럼 다이얼을 드르륵드르륵 돌리며 (꽤나 중독성 있는 행동이다.) 생각에 잠겼다. 이 가격을 주고 살 만한 키보드일까?

분명 키보드의 제원은 좋다. 108키를 채택한 로지텍 크래프트 키보드는 넉넉한 키 피치(Key Pitch)와 펜터그래프 답지 않은 키 스트로크(Key Stroke)를 갖췄다. 키 사이 거리는 시원시원하고, 눌리는 깊이는 적당해 키를 확실히 누른다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자판 표면을 살짝 들어가 손가락을 놓치지 않고 키를 누를 수 있어 오타율도 적은 편이다. 소리는 조용하고, 키감은 뛰어나다. 펜터그래프로 만들 수 있는 키보드의 잘된 예를 받아보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키 만듦새는 로지텍의 다른 제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결국, 로지텍 크래프트 키보드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크리에이티브 다이얼이다.

다이얼을 이용한 조작이 얼마나 매력적일까? 글 쓰면서 느꼈던 다이얼의 편리함은 맥OS에서 다양한 창 전환(cmd+Tab)을 하거나, 멀티 데스크탑 사이를 오갈 때(control+ ←, →) 정도였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맥OS를 쓰는 디자이너에게 크래프트 키보드를 넘기고 일주일쯤 지나 활용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디자이너의 이전 키보드는 애플 매직 키보드(유선). 키감은 전체적으로 좋아졌으나, 키 피치가 살짝 늘어나면서 오타가 조금 늘었다고 한다. 이는 익숙해지지 않은 탓으로 점차 괜찮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가장 궁금했던 건 다이얼의 이용방법이었는데, 다이얼을 단축키 조합으로 쓴단다.

디자이너는 업무에서 포토샵 Save for Web(Legacy) 기능을 자주 활용하는데, 이 단축키가 opt+shift+cmd+S다. 무려 네 개의 키를 조합해야 하며 손을 잠시 기괴한 모양으로 틀어야 했는데, 크리에이티브 다이얼에 단축키를 할당한 후엔 한쪽으로 드르륵 돌려 저장한다고 한다. 다른 기능도 마찬가지로 다이얼을 수치를 조절하는 용도로 쓰진 않는단다.

뭐로 쓰든, 아무려면 어떠랴. 내가 편한 대로 쓰는 게 최고라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론 활용도가 떨어지는 다이얼에 비싼 비용을 투자하긴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돌이켜 보면 키보드는 조금 사치재의 성격을 띤다. 사무용 키보드, 사무용 마우스를 선택하면 1만원 남짓으로 쓸 수 있는 물건을 주워 담을 수 있다. 그런데도 수십만원을 들여 ‘내게 맞는’ 키보드를 찾는 것은 키보드가 주는 만족감이 그만큼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다이얼, 이지 스위치 같은 기능은 선택의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한 요소일 뿐.

정리해보자. 로지텍 크래프트 키보드. 키보드 자체의 만듦새는 뛰어나다. 여기에 크리에이티브 다이얼이라는 독특한 조작계를 더했다. 크리에이티브 다이얼. 아직은 어설프다. 활용도를 살리려면 학습해야 할 것도 있고, 프로그램의 지원 확대도 기대해야 한다. 따라서 다이얼 하나만 보고 20만원이 넘는 이 키보드를 선택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다른 키보드가 아닌 로지텍 크래프트가 가져다주는 가치는 분명히 있다. 그리고 이 가치에 동의한다면 기꺼이 이 키보드를 선택해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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