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기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작은 방’은 언제나 내 차지였다. 막내의 설움이란 이런 것일까… 데이터 사용량이 제일 많음에도 불구하고, 막내란 이유로 와이파이 수혜자가 되지 못한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미약한 신호나마 붙잡겠다며 스마트폰을 들고 허공에 휙휙 휘젓는 일도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가끔은 거실과 가장 가까운 침실 벽에 붙어 와이파이를 간신히 끌어다 쓰곤 한다.

그렇게 와이파이 가뭄에 심신이 지쳐갈 때 즈음, 운명과도 같이 티삼이를 만났다.

너의 이름은…

사실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응삼이, 춘삼이… 티삼이. 전원일기가 떠오르는 이름이지 않은가. 정식 모델명은 ‘T3Av2’이다. 친근감 있게 불리고 싶은 마음에 티삼이란 별명을 지어준 듯하다. 보통 이런 별명은 소비자가 애정을 담아 지어주기 마련인데, 이건 제조사가 붙였다.

촌티 나는 이름과 달리 생긴 건 멀쩡하다. 아니, 단아하고 예쁘다는 표현이 맞겠다. 간결한 보디 위에 붉은색 버튼으로 포인트가 들어가 세련미가 돋보인다. 이름과 외모가 엇박자를 타는 묘한 매력을 가졌다.

군더더기 없는 옆태
알록달록 예쁘장한 뒤태 

측면과 후면도 깔끔하다. 우측엔 USB 포트와 라우터/익스텐더 변환 스위치가 하나씩 있다. 후면엔 WAN 포트가 1개, LAN 포트가 4개 있다. 빨강, 노랑, 흰색의 조화 덕분에 뒤태마저 예쁘다.

어디 출신인고 하니 휴맥스(HUMAX)에서 나왔단다. 벤처 1세대 기업으로 통신 장비를 제조하는 중견업체다. 통신 장비 제조로 유명한 기업에서 나왔다니 왠지 믿음직하다.

너의 능력은…

티삼이의 몸값(?)은 6만9천원이다. 성능은 동급 공유기와 어깨를 견준다. AC1200 급으로 2.4G 대역에서 300Mbps, 5G 대역에서 900Mbps 속도를 낸다. 프로세서는 1GHz 싱글 코어, 메모리는 128GB 램, 16MB 플래시를 탑재했다.

최대 4대 기기를 동시에 스트리밍할 수 있는 ‘MU-MIMO’를 지원하고, 사용 중인 기기에 무선 신호를 집중하는 ‘빔 포밍’ 기술도 들어갔다. 프린터를 연결해 공유할 수 있고, USB 포트를 활용해 간이 NAS·미디어 서버를 구축할 수도 있다.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는 ‘자녀 보호’ 기능도 있다.

매력적인 로밍 & 메시

솔직히 말해 제원만 보고선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그런 중급기 중 하나겠지 싶었다. 하지만 티삼이의 로밍(Roaming) & 메시(Mesh)를 사용한 순간, 반해버리고 말았다.

로밍과 메시는 와이파이 커버리지를 확장하는 기능이다. 티삼이 한 대를 라우터로, 나머지 한 대를 익스텐더로 사용해 와이파이 영역을 넓히는데, 하나의 SSID로 묶어주는 게 포인트다. 로밍이나 메시 기능을 쓰면 같은 SSID 내에서 신호가 센 AP로 알아서 바뀐다. 마치 하나의 공유기를 쓰는 듯한 경험을 준다. 단, 로밍과 메시 기능은 티삼이 여러 대 또는 휴맥스 공유기끼리 연결했을 때만 쓸 수 있다.

로밍과 메시의 차이는 공유기 대수에서 비롯된다. 2개를 묶으면 로밍, 3개 이상 묶으면 메시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네트워크를 묶어주는 메시는 어느 한쪽 연결이 끊어져도 통신이 원활하다는 장점이 있다.

버튼을 누르면 2.4G, 5G 램프가 깜빡인다. 5분 정도 기다리면 녹색 불이 켜지며 로밍 끝

티삼이 두 대로 로밍을 시도했다. 여기서 또 한 번 반했다. 로밍을 구현하는 게 생각 외로 간단했다. Q-MODE 스위치를 조작해 공유기 한 대는 라우터 모드, 나머지 한 대는 익스텐더 모드로 부팅한 다음 WPS 버튼을 동시에 눌러주면 끝.


WAN 포트(라우터)와 LAN 포트(익스텐더)에 랜선을 꽂아주고, 5분 대기하면 로밍 끝

랜선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라우터의 WAN 포트, 익스텐더의 LAN 포트에 각각 랜선을 꽂아주면 네트워크가 알아서 묶인다. 휴맥스만의 특허 기술이란다. 둘 중 어떤 방법을 활용하든 5분 이내에 로밍을 구현할 수 있으니 이보다 편할 수 없다.

이외에 익스텐더 관리자 페이지(dearmyextender.net)에 접속해 수동으로 묶는 방법도 있는데, 위 두 방법보다 손이 제법 많이 가므로 추천하진 않는다.

마침내 넓어진 와이파이

티삼이 덕분에 와이파이 커버리지가 제법 넓어졌다. 작은 방이건, 화장실이건, 베란다건 안 터지는 곳이 없었다. 메인 공유기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방에서도 안정적인 신호로 와이파이를 즐길 수 있었다. 메인 공유기가 뿌려주는 와이파이만큼 빠른 속도를 보이진 않았지만, 커버리지가 넓어졌다는 점에선 꽤 만족스러웠다.

로밍을 사용하지 않았을 때(좌)와 사용했을 때(우). 속도 차이가 난다
SSID는 같지만, BSSID가 바뀌었다. 신호가 강한 AP를 감지해 매끄럽게 전환한 것

특히 놀랐던 부분은 매끄러운 AP 전환. 거실에서 작은 방으로 이동했더니 신호가 강한 AP로 스르륵 바뀌었다. 하나의 공유기로 하나의 와이파이 존을 이용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내친김에 티삼이를 회사로 들고 갔다. 회사 화장실에서도 끊김 없는 와이파이를 즐기고 싶어서였다. 근무 시간, 화장실에 숨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건 직장인들의 낙 아니었던가. 이왕이면 와이파이로 즐기는 게 좋겠지.

얼리어답터의 화장실은 업무 공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와이파이 연결이 불가능했다. 대략 18m거리인데, 여기서 와이파이 신호를 잡는 건 하늘의 별을 따는 것과 같았다. 티삼이를 쓰면 달라질까?

메인 공유기와 화장실 사이, 적당한 거리에 티삼이를 올려놓고 와이파이 커버리지를 넓혀봤다. 우선 타사 공유기와 티삼이를 리피터 모드로 연결했다. 티삼이는 타사 공유기와 연결해 와이파이 커버리지를 넓힐 수도 있는데, 이러면 별도의 SSID가 생성된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화장실 근처로 향했다. 놀랍게도 라우터의 SSID는 사라졌지만, 익스텐더(티삼이)의 SSID는 살아 있었다. 속도는 높지 않았다. 20~50Mbps 수준을 유지했다.

다섯 가지 매력이 더

로밍과 메시 외에도 5가지 모드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건 티삼이의 또 다른 매력이다. 라우터/익스텐더 스위치를 라우터에 두면 가장 ① 기본 공유기 모드 또는 WISP 모드가 작동한다. ② WISP는 WAN(광역 통신망)을 무선으로 받아서 와이파이로 뿌려주는 모드다.

스위치를 익스텐더에 두면 리피터, 무선 브리지, AP 모드로 쓸 수 있다. ③ 리피터는 상위 공유기에서 무선 신호를 받아 와이파이로 뿌려주는 모드다. 타사 공유기와 티삼이를 연결해 와이파이 커버리지를 확장할 때 쓴다. ④ 무선 브리지는 상위 공유기에서 무선 신호를 받아 유선으로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모드다. ⑤ AP는 상위 공유기와 유선으로 연결한 뒤 와이파이를 뿌려주는 모드다. 익스텐더 모드 중에서 속도, 안정성이 가장 높다.

정리해 보니 참 변화무쌍하다. 물론 일반 가정에서 이처럼 다채롭게 활용할 일은 많지 않을 거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네트워크를 구성할 길이 열려 있다는 건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우리 집 와이파이 동반자로 합격점?

티삼이와 동고동락한 지 2주가 지났다. 그동안 집안 방방곡곡을 누비며, 온갖 스트리밍 동영상을 함께 봤다. 우린 함께 웃었고, 함께 울었다. 그래서 좋았냐고? 누군가 “티삼이를 우리 집 와이파이 동반자로 삼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해줄 정도. 다만, 몇 가지 단서는 붙이고 싶다.

첫째로 집 안 구석구석 빵빵한 속도로 와이파이를 쓰고자 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메인 공유기의 최대 속도를 완벽하게 수신하진 못하기 때문. 사실 이건 티삼이의 한계라기보단 공유기-익스텐더 조합의 한계다. 와이파이 커버리지를 동일 SSID로 넓힐 수 있다는 데 만족하는 게 좋다. 속도가 불만이라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프리미엄 고성능 공유기’를 사용하는 수밖에…

둘째, 간헐적인 끊김이 있다. 아주 아주 가끔 로밍 연결이 뚝 끊어진다. 현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펌웨어 업데이트를 준비 중이란다. 펌웨어를 완벽하게 갖추기 전까진 끊김 현상을 견뎌내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마지막은 가격이다. 티삼이의 능력은 두 대가 짝을 이뤘을 때 빛을 발한다. 그런데 티삼이 콤보가 12만9천원이다. 공유기+익스텐더(리피터) 조합만’ 필요하다면 가격이 살짝 부담될 수 있다. AC1200급 공유기와 익스텐더를 구매하는 게 몇만 원 더 이득일 테니까.

이 세 가지만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티삼이를 와이파이 동반자로 삼아도 문제는 없을 듯하다. 로밍으로 와이파이 커버리지를 넓히고, AP 모드로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등 다채로운 네트워크 구성이 필요한 사람, 그러면서 와이파이 커버리지를 동일 SSID로 ‘매끄럽게’ 넓히고 싶은 사람. 특히 이런 부류에 속한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티삼이를 만나도 좋겠다.

장점
– 와이파이 커버리지를 같은 SSID로 매끄럽게 확장해 준다
– 로밍 & 메시, 리피터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다
– 로밍 & 메시 연결이 간편하다

단점
– 와이파이 확장 시 메인 공유기만큼 속도가 빠르지 않다
– 로밍이 간헐적으로 끊어진다(펌웨어 업데이트로 개선 예정)
– 티삼이 콤보의 가격(12만9천원)이 살짝 부담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