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날씨가 이렇게 더울 줄 알았을까요? 더운 여름은 사람의 이성을 흐리게 합니다.

 

지난주 얼리어답터에는 워크샵이 끝난 후 자동차에 스마트폰을 두고 집에 갔다가 20분 만에 돌아왔다든지, 출근길에 가방 속 슬쩍 본 스마트폰이 카드지갑인 줄 알고 길을 나섰다가 근처 ATM기기에서 스마트폰 긴급출금으로 현금을 겨우 마련해 출근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더위 때문에 일어난 불상사입니다. 이게 모두 한 사람이 벌인 일이라는 게 놀랍습니다.

 

그래서 그게 누구냐고요? 글쎄요….
아무튼 전 아닙니다.
어쨌든 전 아님.

 

심해지는 더위에 저희는 대책회의을 했고, 이건 모두 지난 선풍기 크라우드 펀딩을 성공적으로 실패했기 때문임을 발견했습니다. 제대로 시작도 못 하고 끝난 얼리펀딩. 그 네 번째는 블루필 미니헤드 선풍기입니다.

 

 

1. 사건의 발단

매주 있는 얼리어답터 편집 회의에서는 얼리어답터 아이템을 선정하기 위한 치열한 토론이 펼쳐집니다. 얼리펀딩에서 구매할 제품을 고르는 것도 그중 하나죠. 여름을 맞아 시원한 아이템을 찾는 도중 멋진 제품을 만났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할 블루필 미니헤드 선풍기였죠. 마치 그것은 운명의 데스티니…

 

 

지금은 펀딩이 모두 종료됐습니다.

더운 여름에 맞춰 받아볼 수 있을 거라는 소개 덕분에, 얼리어답터 에디터를 꼬드겨 무려 4개를 주문했습니다. 에디터들과 함께 시원한 여름을 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죠. 그리고 내심 좋은 펀딩이라고 생각한 점도 있었습니다.

 

 

2. 왜 좋은 펀딩이라 생각했을까?

크라우드 펀딩에 투자할 때, 예비 투자자가 참고할 수 있는 자료는 펀딩 페이지밖에 없습니다. 저장해봤자 2MB 남짓한 데이터에 여러분의 쌈짓돈을 태워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이 얼마나 불공평한 일입니까? 2만원이면 요새 핫한 이즈리얼 e스포츠 팬 사인 에디션을 살 수가 있습니다.

 

대신 크라우드 펀딩 특성상 여러 사람이 함께하니 괜찮다고 하실 수 있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통을 나누면 절반이 된다지만, 크라우드 펀딩에 실패하면 같이 고통받을 뿐입니다. 결국, 투자하기 전에 내가 꼼꼼하게 살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무엇을 보고 좋은 펀딩이라 판단했을까요. 우선 기존 제품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었습니다. ‘휴대용’ 선풍기인데 기존 제품은 휴대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블루필 미니헤드 선풍기는 이 지점을 정확히 짚고 대안까지 내놨죠. 기존 선풍기의 1/4밖에 안 되는 미니헤드 선풍기로요.

 

더불어 성능에 관한 내용을 풀어 조금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드론 모터 기술을 응용해 최대 풍속 40km/h를 자랑했고, 팬 커버 디자인을 통해 풍성한 바람을 느낄 수 있다고 했거든요.

 

 

그리고 영상을 통해 선풍기 바람의 풍속, 소음을 공개했습니다. 소음은 적게, 그러면서도 시원하게, 그리고 가볍게. 이 삼박자가 더운 여름을 앞두고 맞으니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겠죠? 기존 목표의 8198%, 2억4천만원을 거둬들이며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했습니다.

 

미리 알림을 통해 빨리 참여했던 터라 이 결과는 펀딩이 끝난 후에야 확인했는데요. 이제 이번엔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3. 왜 잘 사놓고 불안해 했을까?

펀딩의 규모 때문입니다. 7천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한 이번 프로젝트.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하니까 더 믿음직한 거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7천명이 참여했다는 건, 문제가 생겼을 때 고통받을 사람이 7천명이라는 소리입니다. 여러분, 브론즈가 다섯 명이 모였다고 실버 하나가 나오는 게 아닙니다. 실버가 되려면 저처럼 식음을 전폐하고 각고의 노력을 거쳐야 하는 겁니다.

 

 

오히려 참여자가 많아지면 사고가 생길 확률이 높아집니다. 제품 생산 능력에는 한계가 있는데, 갑자기 예측 못 할 수요가 늘어나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네, 생산이 지연되고 품질 관리가 안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리고 블루필 미니헤드 선풍기도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생산 지연에 따라 배송 지연 공지가 왔고, 실제로 제품을 받아본 적은 약 예상 일에서부터 일주일 정도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그래도 국내 크라우드 펀딩에서는 외국의 사례처럼 이번 생에선 받아볼 수 없는 그런 제품은 찾아보지 못했음에 안도해야 할까요?

 

 

4. 제품은 도착했으나

여름보다 앞서 받을 줄 알았지만, 이보다 살짝 늦게 선풍기 네 대를 받아봤습니다. 이제 더운 여름에도 안심이라는 생각에 한껏 들떴죠. 그리고 그 기분과는 별개로 마치 습관처럼 사진을 찍고, 제품을 각자 꼼꼼하게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직업병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본체, 받침대, 충전 케이블, 설명서. 있을 건 다 있는 휴대용 선풍기의 평범한 구성입니다. 올해 트렌드인 목에 거는 형태는 아니네요. 헐렁한 목보다야 차라리 고전적인 게 낫죠. 작고 단단해 보이는 점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받침대에 꽂아 세워두니 훨씬 예뻐 보이네요. 검은색 받침대에 검은색 본체, 그리고 흰색 스트랩…. 잠깐 스트랩… 스트랩…?

 

이렇게 일관된 필요는 없었을 텐데

사전에 고지된 부분이지만, 어떤 색상을 선택해도 순백색 스트랩이 함께 합니다. 개성이라면 개성인데… 별로 예쁘다는 느낌은 아니네요. 기능보다 디자인이 중요한 분이라면 과감히 스트랩을 달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크기는 60 x158 x 48mm, 무기는 107g으로 설명처럼 정말 작고 가볍습니다. 주머니에도 은근슬쩍 밀어 넣을 수 있고요. ‘작고 가벼운‘ 휴대용 선풍기를 만들겠다는 블루필의 약속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5. 망했어요

다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소음. 분명히 소음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그걸 봤는데도 소음이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습니다. 체감하는 정도가 생각보다 훨씬 시끄러웠는데요. 정확히 따지고 보자면 음량의 문제가 아니라 음색의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눌리는 느낌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버튼을 눌러 선풍기의 전원을 켜면 날카로운 소리가 들립니다. 모기 소리가 작다고 해서 신경 안 쓰이는 게 아니잖아요. 작지만 날카로운 소리. 그 소리가 블루필 미니헤드 선풍기에서 바람과 함께 솔솔 흘러나옵니다.

 

게다가 저 어디 앞에서 드론 모터 기술력을 활용했다고 했었죠? 그러니까 드론이 날 때 들리는 소리를 상상하시면 되겠습니다. 선풍기 4단계를 발동하니 우리 사장님 DJI 드론에서 나는 용맹한 소리가 선풍기에서 나오네요. 네 대를 붙이면 날아갈 수 있을 법도 한데….

 

 

그리고 초기 불량을 한 스푼 더했습니다. 겉보기엔 멀쩡했는데, 전원을 켜자마자 우다다다 소리가 들리더니 날개가 중심축을 뛰쳐나왔습니다. 조립 불량인 거죠. 일반적인 방법으로 조립하기 어려울 듯해 제조사인 블루필에 문의했고, 교환 및 환불 처리 대상이라고 해 두말하지 않고 환불했습니다.

 

다른 에디터도 뜻을 함께 했습니다.

6. 그리고 그 후…

문제 발견 직후 펀딩 페이지에 가보니 이미 환불 대란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소규모 사업장이다 보니 고객 문의 관리도 안 돼 항의하는 일도 있었고, 편집샵 판매 시기가 조율되지 않아 문제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누가 그랬던가요. 큰 금액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삼촌?

 

블루필 미니헤드 선풍기는 포용 능력을 초과한 크라우드 펀딩의 실패 사례를 여실히 보는 듯해 마음이 아픕니다. 그리고 와디즈에서 유사한 사례가 이번에만 있던 건 아니라 여전히 안타깝습니다. 이런 사고를 통해 브랜드를 향한 신뢰, 그리고 크라우드 펀딩 자체를 향한 신뢰가 모두 흔들리진 않을까 크라우드 펀딩 참여를 즐기는 저는 참 아쉽기만 합니다.

 

지금은 크라우드 펀딩 배송이 모두 끝났고, 편집샵에서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길을 돌아다니면 간간이 눈에 보이기도 합니다. 소음이란 게 그렇죠. 누구에겐 별 생각 없을 수도 있는 소리가 누구에겐 지옥불 용암이 끓어오르는 소리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얼리어답터 에디터들은 고개를 가로저은 이 소리가 누구에겐 그냥저냥 쓸 만한 제품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봅니다.

 

 

7. 결론

1) 펀딩은 쇼핑이 아닌 투자다. 내용을 꼼꼼히 봐야 한다.
2) 대규모 펀딩이 반드시 성공을 불러오진 않는다.
3) 그래서 전 이즈리얼 e스포츠 팬 사인 에디션을 샀습니다.
그럼 이제 뭐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