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노트북의 성능은 정점에 달했다. 그렇기에 게임이 아니라면 어떤 작업을 하든 큰 문제가 없다. 물론 처음부터 노트북의 성능이 지금처럼 좋았던 것은 아니다. 또한 노트북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지나칠 정도로 많은 마케팅 요소가 태클을 걸었다. 해상도가 조금 높고 그래픽 카드 성능이 좋다면 여지없이 ‘멀티미디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체구가 작은 동양인에게 2kg 언저리의 노트북은 휴대용이 아니지만, 이걸 뛰어난 휴대성으로 포장했다. 심지어 그 어떤 요소도 어필할 매력이 없는 제품에는 ‘비지니스맨을 위한’이란 단어를 썼다. 이 과정에서 용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던 노트북… 아니 데스크 노트가 있었으니 바로 에이수스의 NX90이었다. 어쩌면 이 제품이야 말로 제대로 된 최초이자 마지막의 진정한 멀티미디어 데스크 노트다. 노트북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휴대성은 고려되어 있지 않은 독특한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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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CES, 데이비드 루이스

이 제품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10년의 CES (전자제품 박람회)다. 국내에는 2010년 7월에 출시 됐다. 가장 큰 화제는 역시 뱅앤올룹슨이 디자인과 함께 사운드 메이킹에 참여 했다는 사실. 디자인은 뱅앤올룹슨의 수석디자이너인 데이비드 루이스(David Lewis)가 직접 챙겼다. 그 결과 상식을 깨는 디자인이 되었다. 상판과 팜레스트는 뱅앤올룹슨이 즐겨 사용하는 알루미늄 재질이었다. 보통 알루미늄을 사용하는 제품들은 상처를 방지하기 위해 아노다이징을 하지만, 이 제품은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상판과 팜레스트에 사용자의 얼굴이 훤히 비친다. 마치 아이팟 클래식의 초기 모델 뒷면처럼 상처가 나기 쉽다. 그만큼 소중하게 다뤄줘야 하지만, 이 무거운 제품을 들고 다니는 경우는 없을테니 큰 문제는 아니겠다. 또한 광활한 길이의 키보드를 달고서 남은 양쪽 옆에 ‘각각’ 터치패드를 달았다. 당연히 터치패드는 키보드 아래쪽에 있는게 편하다. 하지만 타이핑의 편의성은 고려되지 않았다. 데이비드 루이스는 컴퓨터 디자이너가 아니라 오디오 디자이너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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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X90은 상판과 하판의 길이가 똑같은 여타 노트북과 달리, 상판이 훨씬 크다. 상판의 남는 공간은 온전히 소리를 위한 공간으로 할애 된다. 이 제품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이렇게 큰 스피커 공간이 적용된 데스크 노트는 없다. 간혹 스피커나 헤드폰을 만드는 회사들과 노트북 제조사가 손을 잡고 음향에 신경을 썼다는 제품들이 있지만 NX90만큼의 소리를 들려 주지는 못했다. NX90은 스피커는 물론 소리를 증폭하는 앰프부터 완전히 새로운 설계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2w vs 11w

디지털 기기에서 소리가 나오는 과정은 이렇다. 프로세서가 디지털 형태의 파일을 해석해 그것을 들을 수 있는 소리(아날로그 신호)로 만든다. 그 다음 앰프를 이용해 스피커를 울릴 수 있을 정도로 증폭한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는 내부의 울림통을 거쳐 조금 더 커진다. NX90은 이 과정 각각에 새로운 기술과 설정을 적용 시켰다. 그냥저냥한 앰프가 아닌 ICE Power 앰프가 적용되었고, 더 큰 사이즈의 스피커 유닛이 따라 붙었으며, 넉넉한 공간을(어쩌면 반대로 울림통을 키우기 위해 조금 이상한 디자인이 되었겠지만) 활용한 울림통에서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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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력 또한 일반 노트북은 보통 2w 정도지만 NX90은 5배 이상인 11w였으며 스피커 유닛은 32mm(보통은 20mm)에 울림통의 용적은 108cc(이것도 보통 제품은 20cc내외)나 되었다. 일반적으로 큰 스피커가 좋은 소리를 들려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음향회사가 디자인을 했으니 이런 모양이 되었다. 실제 들어본 소리는 깜짝 놀랄 정도였다. 어느 정도 가격대가 있는 외장 스피커를 연결한 것보다 훨씬 좋았다. 소리 자체의 퀄리티도 퀄리티지만 소리가 나오는 공간감이 어느 정도 잡힌다는 것과 함께 치고 빠지는 펀치감과 무게감, 한 음 한 음 명확하게 표현되는 소리들은 기존 노트북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경지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아이스파워(ICE Power)는 이름처럼 차갑고 냉철한 방식의 클래스D 증폭을 하는 앰프 모듈로 원래 하이파이 앰프에 사용되는 물건이다. 뱅앤올룹슨의 많은액티브 스피커에 사용되며 높은 효율로 다른 하이파이 제조사도 즐겨 사용하는 앰프다. 뱅앤올룹슨은 이 앰프를 NX90에 적용시킨 것이다. 적은 전력 소비와 함께 높은 효율과 전자파 차단 효율 역시 꽤 좋다. 여기에 혼변조 왜곡율은 0.002%로 사실 데스크 노트에 쓰일 만한 물건은 아니다. 여기에 모든 스피커를 충분히 활용하기 위한 소닉 포커스(Sonic Focus) 기술이 탑재되었다. 또한 일반 노트북처럼 바닥으로 소리를 흘려 보내는게 아니라 자존심처럼 꼿꼿한 울림통으로 사용자에게 소리를 전달했다. 여기에 키보드 좌우에 위치한 2개의 터치패드와 로테이션 데스크톱 컨트롤 소프트웨어, 윈도 7의 멀티터치를 활용해 마치 DJ처럼 음악을 컨트롤 할 수 있었다. 단순히 소리가 난다는 개념을 넘어 제대로 소리를 내고, 즐길 수 있도록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18.4인치 그리고 4.4kg

이 데스크 노트는 당대 최고 사양으로 점철되어 있다. 설계 방향이 음질과 성능이니 휴대성 따위는 가볍게 무시해 버리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거대하고 무겁다. 거대한 사이즈에 놀라며 상판을 열면 어지간한 LCD 모니터와 얼마 차이 나지 않는 18.4인치의 거대한 화면에 압도된다. 여기에 6셀 배터리와 최고 사양을 내는 부품들이 아낌없이 들어가 있어 무게는 4.4kg이나 된다. 크기와 무게는 물론 사양 또한 묵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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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최고의 프로세서였던 인텔의 2세대 쿼드코어 i7(720QM)에 기본 메모리는 4GB지만 최대 12GB(DDR3)까지 확장할 수 있었으며, 그래픽카드는 엔비디이아의 지포스 GT 335M 1GB(DDR3)가 달려 있었다. HDD(2.5인치)는 기본 500GB지만 듀얼 슬롯으로 최대 1.2TB까지 올릴 수 있었다. 여기에 블루레이 ODD와 함께 지금은 외장하드디스크에도 붙어있지만 당시에는 일반인은 구경하기 힘들었던 USB 3.0 포트를 채용했다. 넓은 좌우 공간을 십분 활용해 HDMI와 외부 모니터 연결을 위한 D-SUB 포트, e-SATA, 멀티카드 리더까지 두루두루 탑재했다. 다만 블루투스는 2.1버전. 지금도 이 정도 사양이면 다른 제품을 부러워할 필요 없는 성능을 뽑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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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각인은 딱 40대

그렇다. 전세계적으로 많은 수량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이중 국내에 배정되어 한글 각인 찍힌 키보드가 달려 있는 제품은 단 40대.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중고나라는 물론이고 관련 중고 사이트에 매물이 나오지 않는다. 사실 이렇게 크고 무거운 제품을 누가 쓸까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겠다. 이해한다. PC나 노트북은 사양이 조금만 떨어져도 구시대 유물 취급을 받고 다양한 태블릿과 스마트폰이 PC나 노트북의 역할을 대신하니까. 하지만 태블릿과 노트북이 들려주는 소리들이 사용자를 만족시키고 있을까? 원래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이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겠다. NX90은 성능을 위해 크기와 무게를 희생 시켜 소리가 아닌 음악을 만들었다. 이 지점이 NX90이 갖는 의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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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 : 에이수스(Asus)
출시 : 2010년
출시가 : $2499
크기 : 530 x 283 x 45mm
무게 : 4.4kg

 

현재가격
앞서 이야기한 대로 한글 각인이 있는 제품은 구하기 어렵다. 대신 영문 키보드 제품은 아직 신품이 나온다. HDD의 용량이 늘었고 모든 USB포트 전체가 3.0으로 바뀌었다. 물론 가격 역시 $3,000으로 오르기는 했다. 만약 에이수스 로고 대신 뱅앤올룹슨의 로고가 들어갔으면 가격은 더 비싸지지 않았을까?

주의할점
작은 상처 하나면 가슴에 더 큰 상처가 생길 수 있는 제품이니, 상판 상태가 확인되지 않은 중고보다는 해외 구매로 신품을 사는 것이 좋을것 같다. 배송비가 조금 들기는 하겠지만 그 정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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