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짬을 내 시선을 왼쪽 손목 혹은 오른쪽 손목으로 돌려보자.
아무것도 없거나, 시계나 팔찌 같은 액세서리가 있을 것이다. 내 손목엔 구형 애플워치가 자리를 일찍이 차지했다.

 

이용 편의성에 따라 왼쪽 손목은 애플워치에 자리를 내어줬지만, 내심 언젠간 멋진 시계를 차보겠다는 작은 소망이 있다.
이왕이면 남들은 모르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멋지고 ‘쩌는’ 걸로 해야지.
누가 물어보면 무심한듯 시크하게 아는 체해야지.
그 왜, ‘미닝아웃’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호시탐탐 알아보다가 최근 눈여겨보는 시계는 독일제 기계식 시계. 다마스코(Damasko)다.
산다면 어떤 시계를 살까… 손목에 감기는 묵직함. 차가운 느낌의 다마스코 3종을 저울질해봤다.
어차피 구경과 상상은 돈을 받지 않으니까.

 

 

다마스코(Damasko)

상상하기 전에 왜 다마스코인지부터 이야길 해야 할 것 같다. 나중에 누가 물어보면 달달 외워서 이야기할 예정이니까 잘 봐두길. 아니 봐주세요….

 

다마스코는 그 시작을 군수산업으로 시작했다. 독일 바이에른 주에서 전투기의 엔진 터빈 합금 제련, 가공을 맡았다. 터빈이 뭐냐고? 분명히 기술·산업 시간에 배우긴 한 거 같은데, 기억이 안 나서 찾아봤다. 터빈은 엔진 내에서 원료로부터 생긴 유동의 흐름을 실제 에너지(회전력)로 전환하는 역할을 맡은 기관이다. 다시 말해, 엔진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실질적인 부분이고, 따라서 튼튼해야 한단다.

 

첨단 기술이 집약된 군수산업에서 특수 합금을 다루던 기술이 뻗어 나간 방향은 특이하게도 기계식 시계다. 20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기계식 제작 분야에 뛰어들어 ‘시계 제작 기술’을 파헤치기 시작했는데, 이후 지금까지 시계 제작과 관련해 취득한 국제 기술 특허만 112개가 넘는다고 하니, 얼마나 깊고 어둡게(?) 파헤쳤는지 짐작할 만하다. 현재는 유로파이터 조종사의 실전 파일럿 워치이자 원천 기술을 한 군데로 집약한 ‘다마스코’ 시계를 제작, 판매한다.

 

 

다마스코의 특징

다마스코 시계의 특징은 원천 기술, 그리고 ‘유로파이터 파일럿 워치‘라는 위치와 맞닿아 있다.

 

 

첫 번째는 디자인. 다마스코 시계의 디자인은 ‘안 그럴 것처럼 생겨서 호불호가 갈리는‘ 디자인이다. 이 모든 것은 워치 페이스 때문이다. 깔끔한 페이스는 괜찮은데 숫자 크기 등이 큼직큼직해 ‘문방구 시계’ 같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페이스 디자인은 시인성을 최우선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다마스코 시계가 파일럿 워치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다행히 실제로 만져본 다마스코 시계는 보이는 것보다 단단하고 깔끔한 느낌을 줬다. 무던하면서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으로 캐주얼부터 정장까지 어떤 디자인에도 잘 어울린다.

 

 

두 번째는 견고함이다. 이는 다마스코가 원래 무엇을 만들던 회사인지를 다시 떠올려보면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유로파이터 전투기 스틸 재질 혹은 최근 출시한 DS30은 독일 유보트 잠수함 스틸 재질로 시계를 만들었다. 다마스코 시계와 부딪히면 과장을 조금 보태 전투기와 부딪쳤다고 해도 될 정도다. 리뷰를 쓰면서 8년을 차고 다닌 다마스코 시계를 만져봤는데, 세월의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 이런 특징 때문에 ‘필드 시계’로 쓰기 좋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세 번째는 야광. 이 또한 파일럿 워치라는 점과 맞닿은 특징이다. 파일럿 워치는 시계 바늘의 시인성을 위해 바늘에 야광 도료를 덧대고, 다이얼이 검은색인 게 많다. 그러나 다마스코는 흰색 다이얼 시계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는 다이얼 전체에 야광도료인 슈퍼루미노바 C1 도료를 바른 시계다. 최근 출시한 시계엔 슈퍼루미노바 X1 GL 도료를 채택해 시인성을 한층 높였다. 평상시처럼 써도 어두워지면 깜짝 놀라울 정도로 빛을 내, 언제 어디서나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관에선 슬그머니 소매로 가려야 할 정도.

 

 

어떤 시계가 내게 맞을까?

가장 행복하지만 덧없는 고민.
다마스코 전문가의 추천을 받아 어떤 시계가 내게 맞을지 고민해봤다. 고민 대상은 가장 인기가 좋다는 모델 3종.

 

 

1) 다마스코 DC56
다마스코 크로노그래프 파일럿 라인의 대표 모델이라는 DC56. 다마스코 전체 라인업 중 중고가를 맡는다. 이보다 견고함을 더한 같은 디자인의 Si 모델도 있다고 한다. 같이 살펴본 시계보다 살짝 도톰한 느낌이고 무게도 더 나갔다.

 

아이스하든 케이스와 내구성을 개선한 크라운 시스템. 80,000A/m에 이르는 자성 차단, EPS 스프링 시스템, 마이크로 볼 베어링, 와인딩 시스템 등 다마스코의 모든 특징을 골고루 누릴 수 있다. Valjoux 7750 무브먼트의 토크감 또한 매력 중 하나다. 가격은 257만원.

 

 

2) 다마스코 DA37
다마스코 엔트리 파일럿 모델. 유로파이터 전투기 스틸 재질의 케이스는 스틸 표면에 열처리를 더한 방식이 아닌 케이스 통채가 합금이라는 매력을 갖췄다. 비커스 굳기가 1,100HV에 이르러 어지간한 충격에 손상되지 않는다. 심지어 쇠못으로 긁어도 생채기가 나지 않는다.

 

범용성을 갖춘 40mm 크기에 스트랩은 범용성을 갖춘 20mm를 채택해 원한다면 다른 형태의 스트랩(가죽, 스틸)을 선택할 수 있다. 가격은 162만원.

 

 

3) 다마스코 DS30
DS30은 올 초에 새롭게 나온 다마스코의 신형 엔트리 라인 모델이다. 최신 기술을 반영해 엔트리 모델이지만, 중고급기 못지않은 성능을 갖췄다고 한다. 다마스코 최초의 유보트 잠수함 스틸 소재를 채택해, 비커스 굳기는 무려 1,300HV에 이른다. 차세대 발광도료인 슈퍼루미노바 X1 GL을 채택한 점도 특징.

 

다마스코 최초로 39mm 크기로 제작했다. 9.5mm의 얇은 두께는 손목이 가는 사람에게도 잘 어울린다. 크기는 줄이면서 20mm의 스트랩 크기는 그대로 유지했다. 또한, 그러면서도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은 점도 매력적인 부분. ‘줄질’하기에도 나쁘지 않다. 결과적으로 누구에게나 두루두루 어울려 엔트리 모델로 손색이 없다. 가격은 137만원.

 

 

다마스코 시계를 빌려 차봤다.

다마스코 리뷰를 준비하면서, 다마스코 시계 전문가를 소개받아 시계를 잠시나마 빌려 찰 수 있었다. 빌려 찬다는 게 얼마나 시계를 오롯이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백만원을 훌쩍 넘는 시계를 모시고 일상을 보냈다. 그리고 모심이 무심이 될 때쯤, 시계를 돌려드렸다.

 

 

다마스코 시계에 들어간 무브먼트는 자사 무브먼트와 스위스제 ETA, Valjoux를 혼용한다. DS30에 들어간 무브먼트는 ETA 2836-2. 범용 기계식 무브먼트인 ETA 2824에 데이(Day) 기능을 더한 무브먼트다. 범용 기계식 무브먼트 중 신뢰도가 높고 유지보수도 쉬워 입문용으로 좋다. 이른바 스탠다드 급 무브먼트라는 데 불만이 있을지도 있겠으나, 자체적인 수정을 더해 정확도를 더했다. 실제로 차고 다니면서 느낀 일 오차는 1초 이내. 3주 가까이 차고 다녔지만, 오차는 아직 찾지 못했다.

 

기계식은 특성상 손목에 차고 있지 않으면 시계가 멈춘다. 그리고 작동하지 않는 기기는 고장 나기도 쉽고, 의미도 없다. 따라서 기계식 시계를 꾸준히 관리하는 최선의 방법은 꾸준히 착용하고 일상을 보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마스코 시계는 꾸준히 관리하기 좋은 시계다. 바로 견고성 때문이다.

 

처음 시계를 모시고 다닐 때는 시계가 어디 부딪쳐 생채기라도 나지 않을까 노심초사 손목만 보고 다녔다. 손목만 쳐다보는 바람에 주위에서 다들 새 시계 샀냐고 짓궂은 농담을 건넬 정도. 튼튼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막상 쓰고 있는 애플워치가 애플 로고가 떨어지고 여기저기 생채기가 생기는 걸 지켜보다 보니 쉽게 안심할 수가 없었다.

 

 

그랬던 경계가 조금 풀어진 건 애플워치를 해먹었던 주범인 엘리베이터 손잡이와 다마스코가 정면충돌한 사건 이후다. 화들짝 놀라 시계를 살펴봤더니 시계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오히려 엘리베이터 손잡이에 생채기가 생겼다. 그제야 비로소 마음을 놓고 다닐 수 있게 됐다.

 

기계식 시계는 귀금속, 그러니까 사치품에 든다. 다시 말해 무엇을 선택하든 결국 자신의 취향에 따라 다르다는 소리다. 흔히 명품 시계로 언급되는 롤렉스나 오메가. 모셔두고 구경만 하고 싶은 반클리프 아펠, 나아가 파텍필립 같은 시계까지 어떤 시계를 선택하든지 간에 개인의 만족이 최우선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든다. 아무리 고급 시계를 찬들, 이 시계를 모시고 다니며 전전긍긍하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시계를 차고 전전긍긍하게 되는 순간 그 시계는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모델이 아닌 것 같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마스코는 내가 모시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시계였다. 무심하게 차고 다닐 수 있는, 그러면서도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시계였다.

 

사람은 변한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나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다마스코는 이런 내 본질을 은근히 드러낼 수 있는 액세서리다. ‘독일 브랜드’에서 흔히 떠올리는 견고함, 냉철함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이용자를 세심하게 배려한 디테일은 기계식 시계 입문자를 떠나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찾는 사람이라면 손목 위에 걸쳐봄 직하다.

변하지 않기에 소중한 것
박병호
테크와 브랜드를 공부하며 글을 씁니다. 가끔은 돈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