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천원짜리 이케아 FRAKT 장바구니를 닮은 285만5,000원짜리 발렌시아가(Balenciaga) 캐리 쇼퍼백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과연 명품 브랜드가 만든 가방이 맞는지 의심하게 된 게 말이죠. 물론 싸구려 폴리프로필렌 재질이 아니라 양가죽으로 만들어졌지만요.

 

일상에서 영감을 받은 가방이라고 할 수 있지만 너무 하는 게 아닐까 생각될 수도 있는데요. 사실 발렌시아가는 상습범(?)입니다. 누가 봐도 쇼핑백처럼 보이는 거의 200만원짜리 가방도 선보인 적이 있고, 누가 봐도 에코백 또는 마트 봉투처럼 보이는, 이름조차 슈퍼마켓 쇼퍼(Supermarket Shopper)인 약 100만원짜리 가방을 선보인 적도 있죠.

 

사실 명품 패션 브랜드의 이런 가방은 발렌시아가만이 아닙니다. 2012년, 질 샌더(Jil Sander)에서는 왠지 붕어빵이 들어있을 것만 같은 종이 봉투처럼 생긴 바사리 백(Vasari Bag)이라는 가방을 선보인 적이 있죠. 놀라운 사실은 실제로 종이 재질이라는 것. 더 놀라운 사실은 가격이 185파운드(약 28만원)였다는 것. 한번 더 놀라운 사실은 3주만에 매진됐다는 것.

 

올해 초 셀린느(Celine)에서는 플라스틱 백(Plastic Bag)이라는 가방을 선보였는데요. 맞습니다. 그 플라스틱. 완전 투명한 PVC 비닐 가방입니다. 셀린느라고 적혀 있지 않으면 결코 명품 브랜드처럼 보일 수 없죠. 가격은 명품 브랜드다운 590달러(약 63만원)입니다.

 

발렌시아가의 쇼핑백, 질 샌더의 종이백, 셀린느의 비닐백에 이어 마지막은 구찌(Gucci)입니다. 구찌는 고무백이죠. 누가 고무백 아니랄까 봐 컬러도 엷은 핑크색입니다. 전면에 구찌 빈티지 로고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는 게 전부입니다. 너비 53cm, 높이 34cm로 꽤 커다란 크기인데요. 뭘 담으면 좋을까요? 목욕 용품? 세탁물? 뭐든 상관 없을 것 같습니다. 구찌가 어떻게 쓰라고 얘기하지는 않았으니까요. 다만 가격은 국내 홈페이지 기준 130만원입니다.

패션이라고 하니 그런 줄 알아야겠습니다.
신언재
고르다 사다 쓰다 사이에 존재하는 쉼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