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온베가(BRIONVEGA)라는 브랜드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리뷰를 진행하면서 브리온베가가 어떤 브랜드인지, 브리온베가에서 라디오.쿠보(Radio.Cubo)가 어떤 시리즈인지, 라디오.쿠보 시리즈가 어떤 변화를 겪으며 지금의 TS522D+S가 나왔는지를 알게 됐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브리온베가는 이탈리아 산업 디자인의 사실이라고 불리는 브랜드이고, 라디오.쿠보는 브리온베가의 아이콘과 같은 시리즈며, TS522D+S는 라디오.쿠보 시리즈의 9번째 모델입니다.

 

제품에 앞서 브랜드부터 시리즈까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브리온베가 라디오.쿠보 TS522D+S. 리뷰는 브리온베가 브랜드 스토리부터 시작합니다.

 

 

60년대에 바침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Giuseppe Brion과 Leone Pajetta는 B.P.M 컴퍼니를 창립합니다. 1960년, 이름을 브리온베가로 변경하게 되죠. Leone Pajetta는 본래 엔지니어였고, Giuseppe Brion이 경영을 담당했는데요. 브랜드 이름을 보면 Giuseppe Brion이 경영자다 보니 아무래도 주도적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60년대 브리온베가는 기념적인 제품들을 하나씩 선보이게 됩니다. 1962년과 1964년에는 Doney와 Algol이라는 TV를, 1966년에는 Radiofongrafo라는 오디오 시스템을 선보였죠. 오늘 리뷰의 주인공, 라디오.쿠보 역시 1962년에 나온 제품입니다.

 

브리온베가는 엄청난 디자이너들이 거쳐간 브랜드로 유명합니다. 이탈리아 산업 디자인의 산실이라 불리는 것도 다 이유가 있죠. 앞에 얘기한 Doney와 Algol은 Marco Zanuso와 Richard Sapper가, Radiofongrafo는 Pier Giacomo Castiglioni와 Achille Castiglioni 형제가 디자인했습니다. 라디오.쿠보 역시 Marco Zanuso와 Richard Sapper가 디자인했죠.

 

이외에도 Ettore Sottsass, Mario Bellini, Michael Young, Hannes Wettstein 등의 유명 디자이너가 거쳐갔습니다. 산업 디자인에 관심이 있다면 들어봤을지도 모를 이름들이죠. ier Giacomo Castiglioni와 Achille Castiglioni 형제를 포함해 Ettore Sottsass, Mario Bellini는 이탈리아 최고 권위 디자인상인 황금 나침반 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Pier Giacomo Castiglioni와 Achille Castiglioni 형제는 5번, Mario Bellini는 8번이나 수상했죠.

 

라디오.쿠보는 물론 Doney와 Algol, Radiofongrafo 등을 디자인한 디자이너만큼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는데요. 이 제품들 모두가 50년 지난 지금까지 출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름만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니라 디자인도 거의 변화가 없는데요. 지금 보면 60년대 다운 레트로한 디자인일 수 있겠지만, 당시 기준으로 보면 50년 동안 지속될 정도로 시대를 초월하는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자 속 전설

라디오.쿠보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쿠보(Cubo)는 영어로 Cube, 간단히 상자라는 의미인데요. 이 상자 속에 엄청난 전설이 담겨 있습니다. 라디오.쿠보는 앞서 얘기한 대로 1962년에 마르코 자누소(Marco Zanuso)와 리처드 사퍼(Richard Sapper)가 디자인했습니다. 마르코 자누소 역시 황금 나침반 상을 5번 수상한 바 있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죠.

 

리처드 사퍼는 그야말로 전설적인 디자이너. 황금 나침반 상을 11번이나 거머쥔 산업 디자인의 아이콘과 같은 인물이죠. 리차드 사퍼는 씽크패드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하는데요. 싱크패드 시리즈의 효시인 씽크패드 700C를 디자인한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라디오.쿠보는 브리온베가의 기념적인 제품이자 컬트적인 인기를 끈 제품입니다. 1962년 마르코 자누소와 리처드 사퍼가 처음 디자인한 이후 TS522D+S까지 8번의 변화가 있었는데요. 주요 변화를 짚어보면 첫 번째 모델, TS502은 이름 그대로 라디오였습니다. 왼쪽은 스피커 파트, 오른쪽은 컨트롤 파트로 좌우가 쪼개지는 형태였죠. 4번째 모델, TS505는 컨트롤 파트의 모습이 조금 바뀌었는데요. 7번째 모델, TS522에서 다시 예전 디자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TS522D+S는 2017년에 나온 라디오.쿠보의 9번째, 가장 최신 모델입니다.

 

 

잘 익은 스피커

잘 익은 과일을 고르는 방법은 과일에 따라 다릅니다. 외관을 보고, 두드려 보기도 하죠. 하지만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반으로 쪼개 보는 겁니다. TS522D+S는 어떨까요? 잘 익은 과일처럼 잘 익은 스피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첫인상은 상자입니다. 도시락처럼 보이기 하는데요. 컬러는 4종류. Arancio Sole과 Bianco Neve, Nero Notte, Rosso. 이탈리아어라 그런지 왠지 멋지게 느껴지는데요. 오렌지 태양과 하얀 눈, 까만 밤, 빨간색. 빨간색만 그냥 빨간색이네요 비비드한 컬러 때문에 더 도시락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화이트와 블랙은 조금 평범하고 오렌지와 레드가 TS522D+S 디자인 컨셉에 잘 어울리는 듯한데요. 이왕 더 다양한 컬러로 나왔다면 어땠을까 합니다.

 

재질은 흔한 ABS 플라스틱 재질. 크롬 테두리와 손잡이는 알루미늄과 아연, 구리, 마그네슘 합금인 Zamak 재질입니다. TS522D+S 디자인의 특이점 중 하나는 손잡이인데요. TS522D+S가 휴대용이긴 하지만 손잡이를 사용할 일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합니다. 물론 디자인적인 포인트는 충분히 해내고 있죠.

 

중앙에 톡 튀어나온 까만 버튼을 누르면 TS522D+S를 절반으로 쪼갤 수 있습니다. 물론 완전히 분리되는 게 아니라 2개의 힌지로 스피커 파트와 컨트롤 파트가 연결되어 있죠. 쪼개지는 범위는 180도 내에서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완전히 젖히면 자석이 있어 찰싹 달라붙는데요. 분리 버튼도 그렇고 고정 자석도 그런데 다소 저렴해 보입니다. 재질을 통일하거나 모습을 덜 드러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죠.

 

왼쪽 스피커 파트는 동그랗게 스피커 그릴만 뚫려있을 뿐, 심플합니다. 내부에 4인치 드라이버가 탑재되어 있고, 베이스 리플렉스 방식으로 만들어졌죠. 출력은 9W입니다.

 

오른쪽 컨트롤 파트는 왼쪽에 비해 복잡합니다. 작동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76x24mm 크기의 LCD 아래로 총 5개의 노브 및 버튼이 자리 잡고 있죠. 맨 아래는 마치 웃는 입처럼 보이는 볼륨 게이지가 있습니다. TS522D+S 디자인의 특이점 중 하나죠. TS522D+S의 기능이 라디오가 전부는 아니지만 초기 모델처럼 주파수 게이지까지 달아놨다면 좀 더 확실한 디자인 포인트가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태생부터 휴대용

TS522D+S, 그러니까 라디오.쿠보는 휴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품입니다. 첫 번째 모델은 휴대용 라디오라는 목적에 너무나 집중했는지 전원 연결도 불가능하게 만들었었죠. 물론 다음 모델부터는 전원 연결이 가능하긴 했지만요. 반면 라디오.쿠보의 최신 모델, TS522D+S는 전원 연결은 충전 배터리까지 내장했습니다. 태생부터 휴대용이었지만 TS522D+S에 와서야 진정한 휴대용으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죠. TS522D+S는 최대 6시간까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TS522D+S가 본격적인 휴대용이라는 점은 다른 디테일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안테나. 꽤나 굵직하고 길쭉하기까지 해 존재감이 확실한데요. TS522D+S의 본래 기능이 라디오 수신이라는 점을 알려주는 듯합니다. 안테나만 뽑으면 실내든 어디에서도 안정적으로 FM 수신이 가능하죠.

 

앞서 얘기했던 손잡이도 휴대용이라는 점을 잘 알려주는 부분입니다. 다만 사용할 일이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했던 이유는 한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인데요. TS522D+S가 닫혀있는 상태에서 손잡이를 들면 한쪽으로 기우뚱할 수밖에 없습니다. 열려있을 때도 어색한 건 마찬가지죠.

 

대신 Pijama Bag이라는 액세서리가 있습니다. Pijama라는 이탈리아의 패브릭 브랜드와 콜라보를 통해 만들어진 TS522D+S 전용 케이스죠. 스트랩 덕분에 TS522D+S의 휴대성을 극대화합니다. 네오프렌 재질로 만들어져 약간의 쿠션감은 있는데요. 외부 충격을 흡수해 줄 정도는 아닙니다.

 

Pijama Bag은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컬러와 패턴 때문인데요. TS522D+S 특유의 비비드한 컬러 못지않게 명랑한 컬러와 패턴을 지니고 있지만, 이름 그대로 Pijama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Pijama는 영어로 Pajama. 그 파자마입니다. 파자마가 떠오르는 컬러와 패턴이죠.

 

닫혀있을 때는 잘 들어가지만 열려있을 때는 가로 사이즈가 길어져 들어가지 않게 됩니다. 물론 TS522D+S는 닫혀있는 상태에서도 작동이 되지만, 어쩔 수 없이 소리가 먹먹해집니다. Pijama Bag에 넣으면 한층 더 먹먹해지죠. 열려있는 상태에서도 넣을 수 있고, 스피커 부분을 조금 다르게 구성했다면 성능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 전용 케이스가 됐을 것 같네요.

 

 

라디오부터 블루투스까지

시계나 알람 등 자잘한 기능을 제외하고 TS522D+S의 주요 기능은 먼저 의심할 바 없는 FM 라디오. 국내에는 무용지물인 지상파 오디오 방송, DAB/DAB+. 그리고 TS522D+S의 메인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블루투스입니다. 블루투스를 지원해 무선으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점은 감사하지만, 다소 아쉬운 점은 블루투스 2.1+EDR 버전을 지원하는 건데요. 2017년에 출시되어 비교적 새 제품인데 왜 오래전 규격을 사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Apt-X나 Apt-X HD 등 고음질 코덱은 지원하지 않죠.

 

이외에도 오른쪽 컨트롤 파트 아래쪽 구석에 AUX 단자도 있습니다. 뒤쪽에도 AUX 단자가 하나 더 있는데요. 다른 스피커를 추가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모습이 다소 우스꽝스럽지만 TS522D+S 1대를 더 연결할 수 있죠. 블루투스 멀티 페어링은 지원하지 않습니다.

 

 

사운드를 휴대하다

휴대용 라디오에서 출발해 휴대용 블루투스 스피커로 거듭난 라디오.쿠보 TS522D+S. 재미는 건 사운드마저 휴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건데요. 야외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경우 중음의 존재감이 확실해야 합니다. 저음이나 고음이 과할 경우 자칫 지저분하게 드릴 수 있죠.

 

TS522D+S의 중음은 수준급입니다. 휴대가 가능한 크기로 인해 깊이가 느껴지는 풍부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중음만큼은 나름의 해상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기타나 피아노의 울림은 확실하게 표현해줍니다. 보컬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려주기도 하죠.

 

깔끔한 중음에 비해 저음이나 고음이 아쉽게 들릴 수도 있는데요. EQ를 FLAT에서 ROCK이나 JAZZ로 조정하면 좀 더 보강된 사운드를 들을 수 있습니다. TS522D+S는 FLAT과 POP, CLASSIC까지 총 5개의 EQ를 지원하죠.

 

 

TS522D+S의 첫인상. ‘이 스피커는 뭐야?’ ‘디자인이 독특하네!’ ‘이탈리아 디자인이라고?’ ‘이게 60년대 디자인이야?’ TS522D+S에 대해 알고 난 이후. ‘엄청난 브랜드였네!’ ‘엄청난 디자이너가 디자인하거였네!’ ‘어쩐지 디자인이 심상치 않더라!’ TS522D+S를 사용하고 나서. ‘디자인이 전부가 아니었네!’ ‘사운드가 나쁘지 않은데?’ ‘나쁘지 않은 게 아니라 이만하면 훌륭해!’ TS522D+S는 이렇습니다.

 

이탈리아의 쾌활함이 느껴지는 디자인. 디자인이 전부가 아닌 손색없는 기능. 나도 모르게 보컬과 기타, 피아노 위주의 곡을 찾게 되는 수준급 사운드. 이렇게 또 브리온베가 라디오.쿠보 TS522D+S를 좌우로 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