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에 민감한 1인입니다. 잠자리가 바뀌면 좀처럼 잠을 못 이룰뿐더러, 항상 잠은 자는 침대에서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죠. 그렇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머리만 붙이면 꿈나라로 떠나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1인이기도 합니다. 하루 이틀도 아닌 오랜 세월 동안 불면증에 시달리다 보니 침구를 선택하는 기준이 까다로운 편이죠.

 

침구 중에서도 베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불이나 요는 자는 자세에 끼치는 영향이 적은 편이지만, 베개는 다르죠. 잠자리가 바뀌면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는 이유는 베개 때문일 수 있습니다.

 

잠자리에 민감하기 때문에, 잠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게 베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기능성 베개에 관심이 많았고, 줄곧 사용해 왔는데요. 이번에 선택한 베개는 이탈리아에서 온 닥터 파베(Dr.Fabe)입니다.

 

 

Orthopaedic(정형외과)

파베면 파베지, 왜 닥터 파베일까요? 파베 박사일까요? 어느 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닥터 파베는 본래 이탈리아의 정형외과 의사인 Paulo Verduci가 환자의 경추와 척추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개발한 병원용 베개였거든요. 그렇다면 의사가 직접 출시한 베개? 그건 아닙니다. 파베는 이탈리아의 베개 브랜드입니다. 그것도 1960년대부터 베개를 전문적으로 만들어온 곳이죠.

 

닥터 파베는 Paulo Verduci 박사의 닥터와 60년 전통의 베개 브랜드인 파베가 합쳐진 이름으로 보입니다. 의사가 처방하는 베개를 시중해서 구입할 수 있게 된 건데요. 닥터 파베는 1985년에 처음 출시됐습니다. 나온 지 30년이 넘은 베개죠. 대체 왜 이제서야 국내에 들어온 걸까요?

 

 

베개처럼 생기지 않은 베개와 베개처럼 생긴 베개

기능성 베개의 가장 큰 특징은 형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베개라고 하면 커다란 쿠션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데요. 기능성 베개는 이런 쿠션의 모습이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이곳에 머리를 넣고, 이곳이 목을 받쳐주는 걸 알 수 있게 생겼습니다.

 

하지만 기능성 베개를 사용하면서 불편했던 점 중 하나는 꼭 그 방향으로만 베야 하는 거였습니다. 베개를 뒤집거나 반대 방향으로 벤다면 기능성 베개의 기능을 체감할 수 없으니까요. 또한 베개는 꼭 잘 때만 베는 게 아닐 수 있는데 기능성 베개는 쿠션처럼 기대는 용도로는 거의 사용이 불가능하죠.

 

문제는 베개가 아니라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기능성 베개가 시키는 대로 머리와 목을 정자세로 고정하고 잠자리에 들었더라도, 일어날 때까지 정자세를 유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사람은 자는 동안 수차례, 수십 차례 몸을 뒤척이죠. 기능성 베개의 기능이 밤새 유지되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닥터 파베는 어떨까요? 일단 겉모습은 기능성 베개가 아닙니다. 일반적인 커다란 쿠션처럼 생겼죠. 그러니까 닥터 파베를 뒤집든 반대 방향으로 베든 닥터 파베의 기능은 그대로입니다. 또한 쿠션처럼 기대는 용도로도 적당해 보입니다. 익숙한 베개처럼 생긴 형태임에도 기능성 베개 본연의 기능은 유지하고 있는 건 닥터 파베의 큰 장점입니다.

 

닥터 파베의 사이즈는 78x48cm. 딱 봐도 크고, 일반 베개는 물론 기능성 베개보다도 큰 사이즈인데요. 베개가 크다고 나쁠 게 없습니다. 오히려 작은 게 불편하죠. 닥터 파베는 넉넉한 사이즈로 똑바로 자든, 옆으로 자든 닥터 파베가 지닌 기능을 유지합니다. 물론 이는 사이즈와 닥터 파베의 내부 구조가 결합된 결과죠.

 

또한 닥터 파베는 높이가 절묘한데요. 일반 베개의 경우 옆으로 누워 자면 어깨가 눌리게 되어 목만이 아니라 어깨에도 통증이 생길 수 있지만, 닥터 파베는 적당한 높이로 목과 어깨를 편안하게 해줍니다. 평소 낮은 베개를 사용했다면 살짝 높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요. 적응되고 나면 다른 베개, 특히 푹신하기만 한 베개는 사용할 수 없을 겁니다.

 

 

파베 박사의 속 사정

닥터 파베의 내부 구조는 위 사진과 같습니다. 베개 속 커버를 분리할 수 없어 직접 확인해 볼 수는 없었지만 손으로 만져지긴 하는데요. 듀얼 C-CURVE TECH 코어라는 엄청난 이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납작한 부분이 머리를, 동그란 부분이 목뒤를 받쳐주는 구조인데요. 손으로 만지면 살짝 말랑말랑한 게 유연한 느낌이지만, 베고 누우면 목뒤를 단단하지만 딱딱하지 않게 안정적으로 받쳐주죠. 코어는 폴리우레탄 폼 재질이라 변형되지 않는데요. 15,000시간 형태를 유지한다고 합니다. 15,000시간이면 하루 8시간 잔다고 했을 때 5년이 넘는 시간이죠.

 

닥터 파베의 가장 차별적인 부분은 이 코어의 위치입니다. 코어가 베개 일부분이 아닌 양 끝을 제외하고 길게 자리 잡고 있죠. 전체 길이 78cm에서 70cm 이상은 코어가 들어가 있는 셈인데요. 정자세를 강요하는 다른 기능성 베개와 달리 닥터 파베는 사용자를 배려합니다. 어떻게든 베기만 해도 목뒤에서 코어를 느낄 수 있죠. 자다가 몸을 뒤척이더라도 마찬가지. 똑바로 누우면 경추의 건강을 위한 곡선 그대로, 옆으로 누워도 경추와 척추를 일직선으로 유지해줍니다.

 

듀얼 C-CURVE TECH 코어는 폴리에스터 솜이 감싸고 있습니다. 천연 소재가 아니라서 약간 실망스러울 수도 있는데요. 그냥 솜이 아니라 Feather Lite 공법으로 만든 솜입니다. 일반 폴리에스터 솜에 실리콘 처리를 하는 게 Feather Lite 공법이죠. 이름처럼 새 깃털 같은 느낌은 준다고 하는데요. 베고 누워보면 폴리에스터 솜이란 사실을 잊을 만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죠. 마지막으로 커버, 그러니까 분리되지 않는 속 커버는 순면 100%입니다.

 

 

자랑할 게 많은 닥터 파베

닥터 파베 한쪽 옆에 달린 라벨에 뭔가 잔뜩 적혀있습니다. 굳이 이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을 정도인데요. 순서대로 보면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받은 메디컬 클래스 1등급 인증. 그 옆으로는 Oeko-Tex Standard 100 인증 마크가 있습니다. 현존하는 인증 중 가장 까다로운 섬유 제품 인증으로 약 100가지 테스트를 거친다고 하는데요. 제품 소재부터 생산 과정 등 모든 곳에서 인체 유해 물질이 전혀 없고 친환경 인증을 만족했다는 의미입니다.

 

그 아래쪽은 파베는 스위스 L.U.de.S 대학의 임상 실험에서 통증 완화 효과를 입증했다는 인증 마크죠. 이쯤이면 베개를 넘어서 의료 기구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실제로 파베 이탈리아 홈페이지를 보면 닥터 파베의 이름이 Orthopaedic(정형외과)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현재는 이탈리아 정형외과는 물론 유럽 각지의 암 센터나 심장 센터에서도 닥터 파베를 사용한다고 하네요.

 

라벨 가운데에는 100% MADE IN ITALY라고 적혀 있는데요. 그렇습니다. 닥터 파베는 100% 이탈리아 현지에서 생산되는데요. 소재 커팅부터 바느질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직접 만드는 핸드메이드 베개입니다. 예전에 스크릿 가든에서 현빈이 입었던 옷처럼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들었죠.

 

 

병원 베개 또는 호텔 베개

이렇게 만들어진 닥터 파베는 은은한 스트라이프 패턴의 커버를 씌우고 사용합니다. 커버 역시 순면 100%. 그냥 면이 아니라 Percale(퍼케일 또는 페르칼) 면입니다. Percale 면은 올이 촘촘하고 섬세해 부드러운 촉감을 가지고 있으며, 통기성과 내구성이 뛰어나 호텔에서 사용하는 고급 침구에 사용되죠.

 

커버에 지퍼가 없는 점이 독특합니다. 베개 커버를 자주 교체하는 병원이나 호텔에서 이렇게 사용하는데요. 침대 위에 놓으면 물론 병원 느낌은 없습니다. 오히려 모던한 분위기의 호텔 느낌을 연출할 수 있죠.

 

몇 가지 흠을 잡자면 너무 하얗다는 것. 분리할 수 없는 속 커버도 하얀데, 겉 커버까지 하얘서 쉽게 때가 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는 중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이라면 자주 세탁을 해줘야 하죠. 구김이 심한 편인 것도 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친환경 순면 100%라서 안심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잘 구겨집니다. 머리 무게 탓을 해야 할까요? 겉 커버에 지퍼가 없는 것도 흠일 수도 있겠네요. 교체하는 건 쉽지만 세탁할 수 없는 속 커버까지 오염될 까봐 우려되기도 합니다.

 

 

돈과 바꾼 숙면

잠을 잘 못 이루는 사람에게 숙면을 돈으로 사라고 하면 기꺼이 살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잠 아니 숙면은 중요하니까요. 그렇다면 24만8,000원짜리 닥터 파베는 어떨까요? 닥터+파베라는 이름에서 느낄 수 있는 믿음직스러움, 그 믿음에 걸맞게 기존 기능성 베개와는 확실하게 차이를 보여주는 기능, 슈퍼 싱글 침대를 거의 꽉 채우는 넉넉하고도 남는 사이즈, 이탈리아 장인의 손길이 닿은 고급 소재, 닥터 파베는 기능성 베개에서 바랄 수 있는 걸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숙면을 기존 베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인 24만8,000원짜리 닥터 파베로 살 수 있다면 어떨까요? 저는 사겠습니다. 숙면은 중요하니까요.

 

부담 없는 모습, 익숙한 사용
뒹굴고 싶은 사이즈
100% 이탈리아 핸드메이드의 만족감
기능성 베개다운 기능
더럽히고 싶지 않아도 더러워지는 하얀 커버
숙면과 바꿀지 고민하게 되는 가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