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의 장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제가 지금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아이폰 6s입니다.
그것도 산지 무려 2년이 넘었죠.
2년 할부가 끝난 그 다음달에는 기분이 좋아서 소고기도 한 차례 사먹었습니다.
명색이 얼리어답터라면서 왜 아이폰 신제품이 두 번이나 더 나올 동안 새 걸로 바꾸지 않았냐고 물으신다면,
미미한 성능 향상 폭에 감동하지 못할 만큼 그 숭고한 뜻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저의 문제일 것입니다.
딱히 3.5mm 오디오 단자를 삭제했기 때문임은 아닙니다.
물론 이어폰과 헤드폰만 10개가 넘는 제품을 쓰고 있을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는 저이지만,
첨단 무선 이어폰이 대세인 요즘 시대에 아날로그의 산물에 불과한 3.5mm 오디오 단자 대신 무선 환경으로 인류의 편의성을 향상시키고 싶어하시는 애플님의 깊은 뜻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어쨌든 이런 시점에서도 어서 빨리 에어팟을 더 널리 온 지구에 공급하려는 애플님의 심기를 거스려는 듯한 이어폰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파이오니아의 레이즈 플러스(Pioneer RAYZ Plus)라는 이어폰이 그 중 하나입니다.

 

 

실로 무척 위대한 이어폰

RAYZ Plus는 아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동시에 충전도 할 수 있게 해줍니다.
애플 제품 전용이고요. 3.5mm 플러그 대신에 라이트닝 플러그커넥터를 갖고 있습니다.
아이폰 7 이상의 스마트폰을 쓰고 있다면 매우 반가운 부분이죠.
왜 음악을 들으면서 충전까지 해야 하냐구요?
휴일에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서 인터넷하고 영상을 보려면 이어폰과 충전기는 필수이기 때문이죠.
충전하는 동시에 음악을 듣는 게 언제부터 이렇게 위대한 일이 되었을까요?
이쯤에서 애플 수장 팀쿡님의 말씀을 되새겨보죠.
‘애플 제품에는 마진이 별로 없다. 제품 가치에 맞는 가격을 매기고, 우수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 이어폰을 보며 새삼 깨달았습니다. 3.5mm 오디오 단자가 없어진 이유를요.
사사로운 마진에 집착하기 보다는 액세서리 서드파티 업체들에게도 상생의 기회를 주시려 했던 자비로운 시도의 일환이겠죠.
음악 감상과 충전을 그저 당연시 여기고 기술의 발전과 혁신을 안일하게 받아들였던 저를 사뭇 반성해봅니다.

 

 

차단이 있으면 허용이 있는 법

리모컨을 보면 4개의 버튼이 있습니다.
위의 3개는 흔히 볼 수 있는 음악 재생과 정지, 통화 수신, 그리고 볼륨 조절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노이즈 캔슬링과 히어스루 기능을 담당하는 중요하고 스마트한 버튼이죠.
한 번 누르면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을 켜고 끕니다.
노이즈 캔슬링은 주위 소음을 싹 지워줍니다.
사람 목소리는 90% 정도 지우고, 통로 안에서의 울림이나 자동차 엔진 소리도 상당 부분 잘 삭제합니다.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하는 출퇴근길, 음악에 몰입하기 너무 좋았습니다.
사무실에서도 사용해보니 청축 키보드 소리가 일부 남는 것 빼고는 만족스럽게 소음을 차단해줬습니다.
스마트 버튼을 두 번 누르면 히어스루 모드가 켜집니다.
주위 소리를 증폭해서 들려주는 기능이죠.
차단이 있으면 허용이 있는 법.
소리가 아주 자연스럽진 않아도, 오픈형 이어폰을 끼운 것처럼 주위의 소리가 잘 들립니다.
소리를 막아버리는 밀폐형 이어폰이 불안했거나 소통이 필요할 때 충분한 도움이 됩니다.
배터리는 아이폰에서 끌어다 쓰니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돼서 안심입니다.
소모가 심각하게 빠르지도 않네요.

 

 

앱 꼭 설치하세요

스마트 버튼의 기능은 RAYZ 앱에서 변경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앱을 처음 설치하면, 초기 튜토리얼을 한 번 찬찬히 감상하길 권합니다.
애니메이션이 꽤 귀엽거든요. 이해도 쏙쏙 쉽게 되고 말이죠.
그 외에도 EQ 설정이나 마이크 뮤트, 비프음 등
앱에서 설정할 수 있는 항목이 꽤 쏠쏠하게 많아서 보너스 같은 느낌을 줍니다.

 

 

버튼 하나 누르기도 귀찮으니까

편의 기능은 또 있습니다.
음악을 듣다가도 귀에서 빼면 자동으로 정지가 됩니다.
다시 끼우면 알아서 또 재생되죠. 원리가 궁금해지네요.
일부 플래그십 헤드폰에서나 볼 수 있던 이런 기능을 이어폰으로 누릴 수 있다는 게 마냥 신기합니다. 편리한 건 두말할 것도 없고요.

 

 

저음 마니아를 위한 음질

그럼 이제 음질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소니의 클리어 베이스 음장 기술을 매우 좋아합니다.
파워가 넘치는 저음역 부스트의 패기와 다른 음역대를 결코 가리지 않는 깨끗함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죠.
한 마디로 저는 양감 많은 박력의 저음에 화사한 고음역과 청명한 톤을 함께 느끼고 싶어하는 욕심쟁이인 것입니다.
RAYZ Plus는 딱 저의 취향에 제대로 맞춘 음색을 들려줍니다.
파이오니아의 전성기 시절 출시되었던 음향기기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상당히 유려한 음색을 표현한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그것과 일맥상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이어폰은 저음 위주의 두툼한 부스트 위에 고음역이 맛깔나게 표현됩니다.
야외에서 듣기에 딱 좋은 톤이라고도 할 수 있죠.

 

 

단점도 있습니다

음질도 마음에 들고 편리한 기능들도 좋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케이블이 워낙 뻣뻣해서 그런지 터치 노이즈가 유난히 심합니다.
이건 뭐 고개를 움직일 때만이 아니고 숨만 쉬어도 케이블이 옷에 부딪혀 귀를 끄그그극 긁어댑니다.
Y자 분기점이 짧아서 오버이어 형태로 끼울 수도 없고,
그나마 클립이 하나 있긴 하지만 큰 효과는 없습니다.
그런 와중에 귀에서는 자꾸 빠지려고 하니(탄탄하게 피트되는 착용감은 아니었습니다).
이 점은 좀 불편했네요.

 

 

가격은?

자, 그럼 RAYZ Plus의 가격을 알아보겠습니다.
정가는 209,000원, pick 할인가로는 169,000원이네요.
이 정도면 노캔 라이트닝 이어폰치고는 괜찮은 수준입니다.

 

 

부록 : 선택지 2

참고로 그냥 ‘RAYZ’라는 모델도 있는데,
이건 충전 커넥터가 없는 대신에 119,000원으로 더 쌉니다.
라이트닝 커넥터, 노이즈 캔슬링, 앱 연동, 음질, 디자인 등 다른 부분은 모두 동일하고요.
동시 충전을 버리고 가격을 취할 수 있습니다.

 

 

RAYZ Plus는 분명 좋은 이어폰이 될 수 있습니다.
오디오 단자가 없는 아이폰을 사용하면서, 음악 몰입도를 높여주는 이어폰을 원한다면요.
무선 이어폰 특유의 불안정한 연결성이 신경 쓰일 때도요.

 

 

장점
– 음악을 들으면서 충전도 가능하도록 커넥터를 탑재(마치 애플처럼 매우 혁신적)
– 노이즈 캔슬링 성능이 준수
– 상세한 기능들이 많은 RAYZ 앱
– 묵직하고 찐득한 저음 부스트, 반짝이는 고음역대의 조화
단점
– 케이블이 꽤 뻣뻣
착용감
케이블
저음역
중/고음역
노이즈 캔슬링
가격
박세환
여러분의 잔고를 보호하거나 혹은 바닥낼 자신으로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