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많은 음향 기기 제조사들이 완전 무선 이어폰을 몇 차례 내놓았다. 그런데 고르기가 꽤 어려웠다. 음질이 괜찮으면 연결이 불안정하다던가, 연결은 잘 되는데 음질이 별로라던가, 둘 다 괜찮으면 디자인이 별로라던가. 그래서인지 뱅앤올룹슨의 등장이 반갑다. 그들이 만든 완전 무선 이어폰, 베오플레이 E8이 출시된 것이다. 다른 업체들에 비해서는 꽤나 늦게 세상에 나왔지만, B&O의 제품에는 항상 특유의 감성이 묻어나오니까. 잘 만드니까.

 

 

일단 보관 겸 충전 케이스부터. 무척 예쁘다. 케이스를 여는 순간부터 그들만의 감성을 전하려고 애쓴 것 같은 흔적이 느껴진다. 두께감이 좀 있어서 슬림하진 않아도, 고급 가죽으로 마감된 덕분에 손에 쥘 때 느낌이 부드럽다. 따뜻하고 편안하다. 적당한 힘으로 턱턱 닫히는 뚜껑까지도 경박스럽지 않다. 부피 때문에 휴대성 자체는 좀 떨어지지만 스트랩이 있어서 안정감은 잘 느껴진다. 비싸니까 소중히 갖고 다니라고 무언의 압박을 하는 듯이 고고하다. 녀석 참.

 

 

베오플레이 E8은 오른쪽 이어버드가 중심적인 마스터 역할을 한다. 전원 ON/OFF, 그리고 왼쪽 이어버드와 스마트폰 사이에서 중간 연결을 책임진다. 스마트폰에 처음 연결할 때는 두 이어버드를 길게 터치해 전원을 켠 후 LED에 파란 불이 들어올 때까지 다시 길게 터치해주면 쉽게 페어링 된다. 만약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라면 간혹 연결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는데, 그럴 때는 B&O Play 앱을 설치한 후 앱에서 페어링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이어버드가 작은 편은 아니지만, 부담스러운 크기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생긴 것도 깔끔하고 B&O의 로고 덕분인지 고급스럽다. 디자인만 본다면 단연 베오플레이 E8을 최고로 꼽고 싶다.

 

그러나 착용감은 다소 애매한 편이다. 자브라 엘리트 스포츠에서 볼 수 있던 이어 가이드가 없고, 귀에 꽂으면 그 주변 부위를 팽창시키는 듯한 힘으로 버티기 때문에 귀가 작다면 오래 착용하고 있을 때 조금 아플 수도 있다.

 

 

대부분의 동작을 양쪽 이어버드 터치로 할 수 있다. 오른쪽을 짧게 터치해서 재생이나 정지, 전화 수신, 더블탭으로 트랙 이동, 왼쪽을 길게 누르면 볼륨 감소, 오른쪽을 길게 누르면 볼륨 증가 등. 터치 인식률은 좋지만, 아무래도 눈으로 보지 못하고 느껴야 하니 버튼보다는 조작 편의성이 다소 떨어진다. 인식을 시키기 위해 정확하고 힘 있게 꼬옥 꼬옥 누르다 보니 귀를 압박하는 것 같기도 하고.

 

왼쪽 이어버드를 톡 터치하면 트랜스패런시(Transparency) 모드로 진입한다. 트랜스패런시는 주위 소리를 들려주는 모드다. 언제든 외부 소리를 듣고 재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록 요즘 핫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은 없지만, 차음성 자체가 워낙 훌륭해서 음악에 수월하게 집중할 수 있으니 트랜스패런시 모드가 오히려 적절한 기능인 것 같다.

 

 

베오플레이 앱의 설정에서 트랜스패런시 모드를 3가지 중 하나로 설정할 수 있다. Ambient는 음악 볼륨을 완전히 OFF하는 대신 완전히 외부 소리를 모아서 들려준다. 이게 성능이 굉장하다. 5m 거리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증폭을 해주는데, 매우 생생하다. 사무실에서 작동해보면 옆 사람들끼리 소곤거리는 잡담도 상당히 잘 들을 수 있을 정도.

 

Social은 음악 볼륨과 외부 소리의 비율을 2:8 정도로 조절해준다. 음악도 들으면서 간단한 대화를 하기에 좋다. Commuting도 그와 유사하지만 조금 더 음악 볼륨을 크게 해주는 작은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Ambient 모드 외에 나머지 2가지는 애매하다고 느껴, 외부 소통 시 음악을 잠시 포기한다고 생각하고 Ambient 모드를 설정해 놓았다. 편의점에 들를 때나 다른 사람이 잠시 말을 걸 때 이어버드를 귀에서 뺄 필요가 전혀 없어서 무척 만족스러웠다.

 

 

음질은 감동적이다. 뱅앤올룹슨 특유의 화사함이 그대로 녹아있다. 보컬 중심으로 주변부 악기의 해상력도 매우 뛰어나다. 현악기의 줄을 긁는 소리나 미세한 효과음까지 매우 생생하게 표현한다. 완전 무선 이어폰임을 감안하면 더욱 놀랍다.

 

H5와 비교해보자면 고음역이 좀 더 차분하며, 저음역도 미세하게 강조된 느낌이다. 저음의 양감이 크진 않지만 매우 쫄깃하고 탄력 있게 음악을 받쳐준다. ‘베이스가 웅웅거리는 게 능사가 아니란다 꼬마야’라는 듯 나를 비웃으며 청아하고 상쾌한 고음역의 새로운 세계로 시크하게 인도한다. 오, 믿고 따르겠나이다.

 

 

베오플레이 앱에서 EQ 성향을 조절할 수 있다. 조금 더 따뜻하거나 차갑게, 날카롭거나 뭉글뭉글하게 톤을 바꾸는 게 가능하다. 나는 이것저것 만지다가 결국은 순정 톤으로 복귀했다.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진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아쉬운 점은 통화 품질이 음악 음질만큼은 못하다는 것. 나는 상대방의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었지만 상대방의 경우 내 목소리가 먹먹해진다는 평. 그리고 통화가 시작되는 순간 트랜스패런시 모드가 작동되는데, 그 영향이 있는지 내 목소리보다 주위의 시끄러운 소음이 너무 크게 들린다며 불평을 토로했다.

 

 

완전 무선 이어폰에서 가장 중요한 게 연결의 안정성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음질이 좋아도 연결이 불안정하면 아무 소용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베오플레이 E8은 사용 중 끊김 현상이 발생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매일 50분간의 만원 지하철, 30분간의 만원 버스를 두 번 왕복했을 때도 전혀 사운드가 끊기는 일이 없었다. 다만 대로변에 서 있을 때 매우 간헐적으로 왼쪽 이어버드에서 나는 소리가 0.2초 정도 튀는 현상이 발생했다. 나의 경우 평균적으로 하루 3~4시간 사용 시 1~2회 정도의 왼쪽 소리 튐 현상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완전 무선 이어폰 중에서 가장 안정적인 연결성을 보여줬던 자브라 엘리트 스포츠와 비교했을 때 살짝 아쉽기도 했지만, 이만하면 거의 불편함 없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수준이라 보여진다.

 

 

배터리 타임은 스펙 상으로 4시간이며 케이스를 통해서 2번 더 완충이 가능한데, 실제 사용 시에도 그에 근접한 배터리 타임을 보여줬다. 케이스에 보관하면 항상 충전이 되므로 언제든 든든한 마음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3일에 한 번 정도 케이스를 충전해주니 충분했다. 동봉된 USB 케이블에도 B&O의 로고가 멋지게 새겨져 있는 걸 본 순간, 왠지 모를 작은 뿌듯함이 가슴 한 구석에 피어 올랐다는 말도 덧붙인다.

 

 

어쨌든 결론은, 베오플레이 E8은 상당히 잘 만들어진 완전 무선 이어폰이라는 것이다. 다만 진입 장벽은 가격이다. B&O 제품답게, 39만 원대로 꽤 비싼 편이다. 에어팟의 거의 두 배다. 하지만 매력적인 이어폰임에는 분명하다. 현재까지 출시된 완전 무선 이어폰 제품 중에서 브랜드 이미지, 디자인, 음질, 안정성, 편의성을 모두 고려했을 때 최상위에 포함시켜도 전혀 손색이 없다.

 

 

장점
– 보기만해도 저절로 느껴지는 고급스러움의 극치
– 감성을 불러 일으키는 소재와 탄탄한 만듦새
– 화사하고 깊이 있는 사운드
– 외부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는 트랜스패런시 모드
– 걸을 때의 진동이 귀로 느껴질 정도의 높은 차음성
– 준수한 배터리 시간
단점
– 착용 시에 이물감이 꽤 느껴진다.
– 너무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