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인 기계식 시계 붐은 2014년에도 여전했다. 스마트 워치는 시계로서, 웨어러블 기기로서 모두 아직은 독자적인 매력을 드러내지 못했다. 기계식 시계 애호가의 손목을 스마트 워치가 차지할 때까지는 여러 모로 시간이 꽤 필요할 것 같다. 저명한 시계 제작자 카리 보틸라이넨은 <더갤러리아> 1월호에 게재 예정인 인터뷰에서 “기계식 시계는 정열을 불러 일으키고, 잘 만들어졌다면 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을 만큼 수명이 길다. 현대 사회에 그런 물건은 흔치 않다”며 기계식 시계의 미래를 긍정했다. 하지만 애초에 낡은 기술인 기계식 시계의 매혹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 어쨌든 그 안에서 나름의 ‘혁신’을 이룩한, 2014년을 대표할만한 기계식 시계 다섯 가지를 골랐다.

 

1. 스와치, 시스템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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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바젤월드에서 발표되었지만 실제 판매된 건 올해부터. 스와치가 만든 19만3천 원짜리 오토매틱 기계식 시계, 게다가 새로 개발한 인하우스 무브먼트가 장착된다. 앞의 문장 만으로 올해의 시계로 꼽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스와치 30주년을 기념, 처음으로 출시된 스와치 쿼츠 시계의 부품 수와 똑같은 51개의 부품으로 기계식 무브먼트를 완성했다. 네 가지 색상의 수려한 디자인에 뒷면을 통해 무브먼트가 작동하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런데 재미 있는 건 스와치 시계답게 분해할 수 없도록 만들어 졌다는 것. 기계식 시계는 3~5년에 한 번씩 부품을 분해 세척하고 윤활유를 새로 주입하는 오버홀(overhaul) 과정이 필요한데, 분해가 되지 않는다? 스와치 측은 자사의 ‘시스템 51’에 오버홀이 필요하지 않다고 발표했다. 여기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 영국인 시계수리공이 자신의 블로그에 시스템 51의 케이스를 뜯어내 분해하는 리뷰(watchguy.co.uk/review-a-trip-inside-the-swatch-sistem51-eta-c10111)를 올렸는데, 핵심부품인 팰릿 포크와 이스케이프 휠이 플라스틱으로 제작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이 시계수리공은 “중국산 싸구려 무브먼트에서도 본 적이 없다. 자부심이 있는 엔지니어라면 이런 걸 시계 무브먼트에 넣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물론 별 문제 없다는 시각도 있다. 오버홀 없이 오랜 기간 작동할 수 있도록 플라스틱을 사용했을 수도 있는 일. ‘기계식’ 보다는 ‘스와치’ 쪽에 더 방점이 찍혀 있는 물건, 대대손손 물려줄 계획만 아니라면 사용하는 데 문제는 없겠다.

 

2. 피아제, 알티플라노 9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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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기계식 시계. 수많은 부품을 결합해 작동하는 기계식 시계에서 무브먼트의 두께를 줄이는 건 그 자체로 엄청난 기술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초박형(ultra-thin) 시계는 아무런 기능 없이 얇다는 것 하나로 투르비용, 퍼페추얼 캘린더 등 정교한 컴플리케이션 메커니즘과 동일한 선상에서 취급될 정도. 피아제는 ‘알티플라노 900P’의 케이스와 무브먼트를 일체화, 3.65mm라는 두께를 달성해 시계 역사에 뚜렷한 획을 그었다. 일반적으로 초박형(ultra-thin) 이라고 불리는 기계식 시계의 기준이 7mm 이하, 너무 얇아 휘어진다는 애플 ‘아이폰6’의 두께가 6.9mm. 시계 다이얼에 밸런스 휠과 톱니바퀴, 나사, 루비 등 무브먼트를 구성하는 주요 부품이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피아제 알티플라노 컬렉션 특유의 단순한 미감을 잘 살렸다. 손으로 크라운을 돌려 태엽을 감아야 작동 하는 수동식 시계. <몽트레 패션> <크로노스> 등 세계 여러 시계 전문지에서 ‘올해의 시계’로 선정되었다. 48시간 파워 리저브 등 시계로서의 기능도 충실하다. 가격은 27,800$(약 3천 만원)

 

3. 반클리프아펠, 미드나이트 플래네타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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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색의 보석을 둥글게 깎아, 다이얼 위에 태양계를 재현한 시계. 그저 보기 좋도록 만든 장식이 아니다. 다이얼 가운데 위치한 태양을 중심으로 가장 가까운 수성은 88일, 지구는 365일, 토성은 무려 29년 동안 공전 주기 그대로 태양계 행성들이 시계 위를 한 바퀴 돈다. 시계 가장자리의 별똥별이 현재 시간을 알리고, 기념일을 미리 맞춰두면 시계를 덮은 유리에 그려진 별이 그 날, 지구와 겹쳐진다. 사소하지만 경이롭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이 순간을 연출하는 건 모두 396개의 부속을 결합한 시계 속의 기계 장치. 기계식 시계의 메커니즘을 서정적으로 재해석하는 반클리프아펠 ‘포에틱 컴플리케이션’ 시리즈의 최신작이다. 그 동안 다이얼 위에서 나비가 날거나, 연인이 키스를 했다면 이번엔 손목 위로 우주를 옮겨왔다. 가격은 약 245,000$(약 3억원)

 

4. 우르베르크, E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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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체적인 시계 업계의 호황과 맞물려 대량생산하는 시계가 채우지 못하는 틈새에서 독자적인 시계를 생산하는 인디펜던트 워치메이커들이 각광받고 있다. 기존엔 수공예 작품으로서 고급 시계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지켜나가는 시계 제작자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엔 새로운 상상력으로 전에 없던 독창적인 시계를 제작하는 워치메이커도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우르베르크(Urwerk)는 후자를 대표하는 브랜드. 그들의 신작인 EMC(Electro Mechanical Control)는 시계 내부에 탑재된 전자 장치로 기계식 무브먼트의 오차를 보정, 1/100초 미만으로 오차를 줄인 하이브리드 기계식 시계다. 브랜드의 공동창립자이자 수석디자이너인 마틴 프레이는 EMC를 “스마트 워치보다 더 영리한(smarter) 시계”라고 자신 있게 표현했다. 시계 마니아가 아닌 당신에겐 어처구니 없는 소리일지 모르겠다. 사실상 EMC의 기능이라곤 현재 시간을 정확하게 표시하는 것 밖에 없으니 말이다. 한편 크고 무겁고 못생긴데다 12만 달러(한화 약 1억 3천만 원)이라는 가격표까지 단 이 시계에 스위스 시계 업계는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 2개 부문 시상으로 화답했다.

 

5. 파텍필립, 그랜드마스터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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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그래프, 투르비용, 퍼페추얼 캘린더, 미니트 리피터 등의 컴플리케이션 메커니즘이 두 개 이상 결합된 시계를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치라 한다. 하나 제대로 제작하기도 힘든 복잡한 메커니즘을 손목 시계 안 한정된 공간에 두 개 이상 넣는 건 그 몇 배 이상의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일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파텍필립이 올해 창립 175주년을 기념해 만든 ‘그랜드마스터 차임’에는 무려 20가지의 컴플리케이션 기능이 들어간다. 더 놀라운 건 무브먼트 두께가 10.7mm에 불과하다는 것. 그 많은 기능을 표시하는 데 다이얼 하나론 부족해서 뒷면까지 아낌없이 사용했다. 러그를 잡아당기면 다이얼이 한 바퀴 돈다. 수많은 월계수 잎을 촘촘하게 새긴 지름 47.4mm 로즈골드 케이스는 감탄으로도 부족하다. 파텍필립은 스케치부터 완성까지 이 시계의 제작과정을 축약한 동영상을 유튜브(www.youtube.com/watch?v=SGPjFFMD3c0)를 통해 공개했는데, 가히 시계 포르노라 할만하다. 무슨 이야기인지 보면 알 거다. 총 7개 제작되고, 파텍필립 소장품을 제외한 6개를 판매한다. 여기 쓰는 게 별 의미야 없겠지만 가격은 250만 스위스프랑(한화 약 27억 8천8백만원)이다.

 

 

얼리어답터의 시계 이야기 연재순서

1. 기계식 시계 입문을 위한 5개의 시계

2. 애플 워치가 두렵지 않은 쿼츠 시계들

3. 연약한 기계식 시계와 그 적들

4. 마이크로 브랜드 시계 베스트 5

5. 얼리어답터의 크리스마스 선물가이드 – 시계매니아들을 위한 선물

 

정규영
갤러리아 매거진 피처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