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비싼 음향기기라는 이미지 탓에 실제로는 써볼 기회가 잘 없던, 뱅앤올룹슨의 제품들. 이번에 4종류의 이어폰을 받아 들어볼 기회가 생겼다. 개인적으로 오래 전에 ‘A8’ 이어폰을 몇 차례 들어보긴 했지만 다이내믹하고 펑펑 울리는 저음과 강렬한 Rock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에는 조금 맞지 않아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기억의 저 편에 묻어두었었다. 물론 쉽게 구매 결정을 내리기 힘든 가격대도 한 몫 했고. 어쨌든 하늘은 높고 아침 저녁으로 시원 쌀쌀한 게, 화사한 음색으로 소문이 자자한 뱅앤올룹슨에 입문하기 딱 좋은 날씨다.

 

 

 

Earset 3i

일단 제일 친숙해보이는 이 오픈형 이어폰으로 시작한다. 베스트 겸 스테디셀러라고 할 수 있는 ‘A8’을 닮은 이 녀석. 디자인은 지금 봐도 아주 멋지다. 알루미늄 재질에 영롱한 컬러도 인상적이고. 이어 가이드를 귀에 걸치고 자유자재로 조이고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어쩐지 나에게는 착용감이 편하지가 않았다. 수년 전만 해도 오픈형 이어폰을 더 선호했던 내가 이미 커널형에 익숙해져 버린 탓인 것 같다.

 

음질은 다소 의아했다. A8을 들었을 때 느꼈었던 ‘플랫’하고 담백한 그 느낌이 아니었다. 전체적인 톤이 단단해져 있고, 중음역대에 살짝 착색이 되어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특유의 맑고 쨍한 사운드가 아니라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A8의 디자인을 너무도 사랑하고 있거나, 오픈형 이어폰이라는 희소성에 가치를 둔다면 괜찮은 선택이 될 것 같지만 음질이나 가격을 생각하면 딱히 감동적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가격은 인터넷 최저가 기준으로 199,000원.

 

특이사항
무게 22g, 케이블 길이 1m, MFi 3버튼 리모컨, 다이나믹 드라이버 탑재, 주파수 응답 50 – 20000Hz
장점
– B&O A8의 멋진 디자인 DNA를 그대로 간직했다.
– 스마트폰에 물려서 쓰기 편하도록 3버튼 리모컨이 있다.
단점
– 사운드는 A8의 그것과 느낌이 좀 다르다. 화사함이 조금 죽고 착색되어 있는 듯한 느낌.
– 케이블이 다소 약해 보인다.
– 어색하고 불안한 피트감. 커널형 인이어 제품의 착용감에 익숙해진 탓인 듯하다.

 

 

 

Beoplay H3

H3은 뱅앤올룹슨의 커널형 이어폰 중에 가장 기본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특별할 건 없는 디자인이고 이 가격대의 제품이 으레 케이블에 패브릭을 감싼 것과는 다르게 그냥 평범한 재질의 가느다란 케이블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만듦새나 완성도 자체는 매우 높다. 정교하게 제작된 유닛, 헤어라인, 고급스러운 B&O의 로고가 조화롭고 멋지다. 착용감도 적당하고.

 

음질은 어떨까. 저음에는 부스트가 살짝 되어 있지만 고음역대가 훨씬 더 강조된 듯한 인상이다. 청량하게 뻗으며 가슴을 시원하게 울린다. 시원함을 넘어 약간의 차가운 느낌도 든다. 이게 바로 뱅앤올룹슨의 음질일까. 꽤 여러 장르에 잘 어울린다. 시끄럽고 정신 없는 메탈에도, 조용하고 나긋한 어쿠스틱에도, 리드미컬한 네오 소울에도.

 

뱅앤올룹슨 사운드 입문을 시작해보고 싶을 때 적절하다. 정가는 22만 원. pick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특이사항
무게 16g, 케이블 길이 1.2m, 3버튼 리모컨, 다이나믹 드라이버 탑재, 주파수 응답 20 – 16000Hz
장점
– 꼼꼼하게 마감된 만듦새와 멋진 디자인
–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의 음질
– 스마트폰(특히 아이폰)에 사용하기 편한 기본적인 리모컨
– 이 모든 게 전체적으로 준수한 느낌이다.
단점
– 딱히 고급스럽진 않은 케이블 재질
– 같은 가격이면 다른 업체의 괜찮은 블루투스 이어폰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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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oplay E4

뱅앤올룹슨의 이어폰 중에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들어간 제품. 주위의 소음을 빨아들이고 그에 대응하는 주파수를 쏴서 상쇄시키는 원리다. 유닛의 생김새는 H3와 거의 흡사한데 약간 더 크고, 마이크 구멍이 보인다. 여기로 외부 소리가 들어오는 것이다.

 

이 기능이 작동되기 위해서는 배터리가 필요하다. Beoplay E4에는 그래서 배터리를 아예 포함한 노이즈 캔슬링 모듈이 플러그 쪽에 달려있다. 큼지막한 B&O 로고와 함께. 손으로 들어보면 가볍긴 한데, 이게 스마트폰에 꽂는 순간부터 얘기가 좀 달라진다. 케이블이 덜렁거리는 데에 힘을 더 실어주며 지하철에서 비슷한 시간 동안 웹서핑을 해도 왠지 손목이 금새 더 피로해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하지만 노이즈 캔슬링의 기능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요즘 출시되는 소니나 보스 제품같이 강력한 성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스위치를 켜는 순간 먹먹해지는 그 특유의 조용한 느낌과 웅웅 시끄러운 엔진 소리를 마치 지우개로 지우는 듯한 효과적인 소음 차단 경험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음악을 틀으면 훨씬 집중도 잘 되고 몰입감이 극대화된다. 같은 노래라도 시끄러운 바깥에서 이렇게 깨끗하게 들을 수 있나, 신기해진다. 그리고 언제든 스위치를 위로 슬쩍 올리면 음악 출력 대신 바깥의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는 모드로 바뀐다. 그래서 하이브리드 ANC. 다른 사람과 잠시 대화를 할 때 이어폰을 굳이 빼지 않아도 되니 특히 편하다.

 

컴플라이 폼팁도 들어있어서 좀 더 확실한 차음을 원한다면 이걸로 갈아끼우면 된다. 물론, 폼팁의 특성상 저음역의 양이 좀 더 증대하고 고음역대가 살짝 죽는 음색으로 변하는 건 감수해야 한다. Beoplay E4의 음질은 플랫하거나 화창한 느낌이라기 보다는 중저음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린 듯하다. 아웃도어에서 사용하기에 좋도록 튜닝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고 특유의 쨍한 느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B&O만의 음색을 생각한다면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굳이 무선 블루투스 이어폰이 필요 없거나, 손목의 힘이 강한 자, 그리고 시끄러운 바깥에서 음악을 자주 듣는다면 추천한다. 가격은 35만 원.

 

특이사항
무게 50g, 노이즈 캔슬링 모듈 탑재, 모듈 배터리 350mAh, 20시간 지속, 3버튼 리모컨, 다이나믹 드라이버 탑재, 주파수 응답 20 – 16000Hz
장점
– 노이즈 캔슬링으로 주변 소음을 지워버릴 수 있다.
– 혹은 이어폰을 귀에서 빼지 않고도 외부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다.
– 그 조작이 매우 쉽고 간단하다.
– 뱅앤올룹슨 음색이 가진 원래의 이미지보다 중저음에 좀 더 무게감이 실려 있다.
단점
– 노이즈 캔슬링 모듈의 무게와 부피 때문에 이동 시에는 꽤 불편하다.
– 모듈의 정확한 배터리 잔량을 알 수가 없다.
– 버스 뒷자리 등 연속적으로 심한 흔들림이 있을 때는 사운드도 같이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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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oplay H5

뱅앤올룹슨이 만든 그들 최초의 블루투스 이어폰인 Beoplay H5. 출시된 지는 1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그만큼 좋은 제품이라는 뜻이겠지. 우선 디자인이 그들답게 심플하고 고급스럽다. 이번에는 케이블에 패브릭도 감겨있다. 컬러도 다양하다. 획일적이었던 블랙을 벗어나 핑크, 모스그린 등 선택지가 늘었다. 며칠 전 노원구의 길거리에서 핑크색 H5를 쓰는 아리따운 여성분을 본 적이 있는데, 확실히 디자인의 분위기가 엘레강스해 보였다. 유닛은 좀 큰 편이지만.

 

음색의 느낌은 청아하고 화사하고 차갑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깨끗하고 눈부시게 재생해주긴 하는데, 저음이 부웅부웅 울리는 부스트를 좋아하는 내게는 좀 냉혹한 현실이었다.

 

다행인 점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음색을 조금씩 바꿀 수 있다는 것. 흔히 볼 수 있는 이퀄라이저 조정이 아니라 그래프처럼 만들어진 영역을 터치하는 방식이다. 따뜻한, 뭉글뭉글한, 강력한, 화사한 음색 사이로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어느 주파수를 어느 정도 낮추고 높이는 수치적인 EQ만 보다가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직관적인 설정을 경험하니 재미있다. 따뜻한 쪽으로 세팅하니 날카로웠던 고음이 조금 다듬어지고 전체적인 톤이 말랑말랑 부드러워졌다. 심신이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배터리는 생각보다 오래 가는 편은 아니다. 스펙 상으로 5시간인데 체감 상으로는 4시간 정도. 충전할 때 전용 크래들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밖에 나와있을 때면 은근히 불안해졌다. 그래도 디자인이 예뻐서 그런가, 여리여리한 체력임에도 불편할 정도로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Beoplay H5의 정가는 35만원. 뱅앤올룹슨의 사운드를 블루투스로 편리하게 느낄 수 있는, 괜찮은 이어폰이다. 같은 가격이면 하드웨어적으로 더 좋은 이어폰이 많지만, 뱅앤올룹슨이라는 브랜드만이 주는 매력이 분명 있다. 외관에서 흐르는 정갈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나 쨍한 음색 등. 그리고 역시, ‘B&O’니까.

 

특이사항
무게 18g, 케이블 길이 52cm, 블루투스 v4.2, 지원 코덱 AAC/AptX/AptX-LL, 배터리 유닛당 50mAh, 5시간 지속, 3버튼 리모컨, 다이나믹 드라이버 탑재, 주파수 응답 20 – 20000Hz
장점
– 패브릭으로 감싼 케이블, 심플하고 멋진 디자인
– 가볍고 가뿐하다.
– 화사하고 쨍한 음색을 좋아한다면 잘 맞을 것이다.
– 앱에서 음색을 꽤 광범위하게 조절할 수 있다.
– 펌웨어 업그레이드도 지원한다.
단점
– 배터리 타임이 살짝 짧은 편이다.
– 충전하려면 전용 크래들이 꼭 있어야 하는 게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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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환
여러분의 잔고를 보호하거나 혹은 바닥낼 자신으로 글을 씁니다.